SF 생태주의
생태 건설 게임과 오픈 월드 게임의 차이 본문
[자연 생태계를 '조성하고 관리하는' 게임 <타이토 에콜로지>의 한 장면입니다.]
생태 비디오 게임은 이름 그대로 자연 생태계를 구현하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생태 게임은 라이프 시뮬레이션이나 건설 시뮬레이션 장르에 속하고, 비디오 게임 역사 속에서 꾸준한 줄기를 이어왔습니다. 대부분 생태 게임들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 생태 게임들은 교육 소프트웨어에 가깝고, 그래서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요. <심파크> 같은 게임이 아주 어렵다면, 이모와 조카가 나란히 게임을 즐기지 못하겠죠.
저는 이런 생태 게임들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설과 탐험이죠. 건설 게임은 자연 생태계를 만들고, 관리하고, 운영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지형, 기후, 식생, 동물상, 유전자를 비롯한 여러 요소들을 조절합니다. 동물원 게임이나 사파리 게임 역시 이런 종류가 될 수 있겠죠. 자연 생태계를 짓기 때문에 건설 게임은 샌드박스 요소가 강합니다. 탐험 게임은 자연 생태계를 돌아다니는 내용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생태학자나 야생 동물이 되고, 드넓은 대자연을 돌아다니고 관찰합니다. 탐험 게임은 (어렵지 않은) 생존 게임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오픈 월드와 가깝죠.
건설 게임에는 <심라이프>, <오퍼레이션 제네시스>, <벤처 아크틱>, <타이토 에콜로지>, <제노블룸> 등이 있습니다. 탐험 게임에는 <오델 다운 언더>, 1995년 <라이온>, <다이노소어 사파리>, <울프퀘스트>, <쉘터>, <드렁크 온 넥타> 등이 있고요. 이런 구분 방법이 100% 정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태 비디오 게임들을 나눌 수 있고, 이게 의미가 없는 구분 방법은 아닐 겁니다. 생물 다양성을 강조하는 소프트웨어답게 다양한 생태 비디오 게임들은 생명체를 키우거나 돌보는 행위를 강조합니다. 가령, <타이토 에콜로지>는 생물 다양성과 생물량이 풍부할수록 더 많은 점수를 줍니다. 더 많은 점수를 받고 싶다면, 더 많은 식물들과 동물들과 분해자들을 바이오돔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쉘터>는 어미 동물이 새끼들을 보살피는 내용입니다. 새끼가 비명을 지르며 어미에게서 멀어질 때마다 게임 플레이어는 속이 꽤나 쓰릴 겁니다. 생태 비디오 게임에 액션이나 폭력, 싸움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런 게임들은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거나 육식동물들끼리 영역 다툼을 벌이는 상황 역시 묘사해요. 하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생명체들이 서로 어울리고 살아가는 과정이에요.
개인적으로 (<라이온>이나 <쉘터>처럼) 야생 동물이 자연 생태계를 탐험하는 내용을 좋아합니다. 물론 <심라이프>, <오퍼레이션 제네시스>, <벤처 아크틱>, <타이토 에콜로지> 같은 게임들 역시 재미있습니다. 특히, 이런 게임들에서 원하는 대로 게임 플레이어는 자연 생태계를 꾸밀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식물들을 심고, 동물들을 배치하고, 지형을 바꿀 수 있죠. <오퍼레이션 제네시스>에서 각종 초식 동물들로 B 현장을 꾸미고 그 풍경을 바라봤을 때…. 정말 중생대 환경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몇 분 동안 멍하니 그 장면만 바라봤어요.
하지만 저는 건설 게임보다 탐험 게임이 더 마음에 듭니다. 탐험 게임이 훨씬 몰입하기가 좋기 때문입니다. <심파크>, <오퍼레이션 제네시스>, <벤처 아크틱>, <타이토 에콜로지> 같은 게임들은 거시적입니다. 지형, 기후, 식물상과 동물상을 총체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개체 하나에 주목하지 않죠. 반면, <라이온>이나 <쉘터> 같은 게임은 개체 하나에 주목하고, 일개 개체의 시선으로 자연 환경을 둘러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오소리의 시선으로 자연 환경을 봅니다. 이는 미시적인 시선이나, 훨씬 몰입하기에 좋아요.
[게임 <타이토 에콜로지>와 달리, <쉘터 2>는 자연 생태계를 '여행하고 탐험'할 수 있죠.]
이를 문학에 비교한다면, 건설 게임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고, 탐험 게임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일 겁니다. 당연히 1인칭 주인공 시점이 훨씬 몰입하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수필이나 일기 같은 문학은 1인칭 시점이죠. 자신을 그대로 투영하고 몰입할 수 있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타이토 에콜로지>와 <쉘터 2>에는 모두 스라소니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타이토 에콜로지>에서 스라소니는 방대한 자연 환경을 구성하는 일개 포식자에 불과합니다.
<쉘터 2>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직접 스라소니가 되고 토끼들을 사냥하거나 새끼들을 (힘겹게) 키울 수 있습니다. <쉘터 2>는 스라소니의 삶을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포착하고, 덕분에 게임 플레이어는 자연 생태계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대신 <타이토 에콜로지>는 자연 생태계에서 포식자가 무슨 역할을 맡는지 알려줄 수 있습니다. <쉘터 2>는 그렇게 하지 못하죠. 각자 장단점이 있을 테고, 그래서 두 게임을 모두 즐기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쉘터 2>가 훨씬 몰입하기가 좋고, 더 풍부한 감성을 전달할 수 있겠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1994년 <울프>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늑대가 되고 자연 환경을 돌아다닙니다. 늑대는 무리를 짓거나 사슴을 사냥하거나 사냥꾼들에게 쫓깁니다. 저는 늑대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상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야생 동물이 무력하게 총에 맞아죽는 상황을 직접 체험하는 것 같았어요. 배미주가 쓴 <싱커>에서 동물들이 죽을 때 싱커들이 느끼는 충격과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미래에는 싱커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겠죠.) 요즘 오픈 월드와 야생 동물들을 강조하는 비디오 게임들은 흔합니다. 대형 블록버스터 게임들부터 인디 게임들까지, 다들 오픈 월드와 야생 동물들을 강조하죠.
하지만 이런 게임들은 야생 동물을 그저 사냥감으로 바라봅니다. 야생 동물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묘사하지 않죠. 1994년 <울프>에서 늑대가 총에 맞아죽을 때 제가 느꼈던 충격을 <파크라이 3>나 <호라이즌 제로 던>이나 <서브노티카>에서 느끼지 못하겠죠. <파크라이 3>, <호라이즌 제로 던>, <서브노티카> 같은 게임들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울프> 같은 게임을 통해 자연 환경에 생생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파 크라이 3> 같은 게임은 그렇지 못하죠. 애초에 뭔가를 때려죽이기 위한 게임이기 때문에.
그래서 똑같이 오픈 월드와 야생 동물을 강조해도 <파 크라이 3>와 <울프>는 서로 다릅니다. 아마 <파 크라이 3>가 뭔가를 신나게 때려죽이는 게임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커다란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겁니다. <울프>에서 늑대(게임 플레이어) 역시 열심히 사슴을 사냥하나, 본질적인 내용은 학살이 아니라 생태 체험이죠. 저는 이런 게임을 통해 사람들이 진짜 자연 생태계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피터 칸은 기술적 자연에 장점이 있다고 이야기했을지 모르겠군요.
아쉽게도 <울프>나 <울프퀘스트>, <쉘터 2> 같은 비디오 게임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심파크>나 <오퍼레이션 제네시스>나 <타이토 에콜로지>처럼 수많은 생태 비디오 게임들은 건설 게임입니다. 생태 게임들은 오픈 월드보다 샌드박스를 추구하는 것 같아요. 물론 요즘에 야생 동물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아주 흔합니다. 가령, 구글 플레이에는 온갖 여우, 치타, 곰, 악어 시뮬레이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전에 야생 동물 시뮬레이션들은 절대 흔하지 않았어요. <엔들리스 포레스트> 같은 게임을 고려한다고 해도, <울프퀘스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울프> 같은 게임은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생태계 비디오 게임들 중에는 탐험 게임보다 이런 관리/운영 게임들이 많아요.]
그래서 생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오픈 월드보다 샌드박스를 더 자주 접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야생 동물 시뮬레이션들이 많이 쏟아진다고 해도 너무 캐주얼한 액션(사냥)만 강조하는 듯합니다. 정말 뭔가 다른 존재가 되는 느낌을 풍기지 않아요. <라이온>이나 <울프퀘스트>, <쉘터 2>에서 그런 점이 참 좋았습니다. 나 자신이 뭔가 다른 생명체가 되는 느낌. 물론 다른 생명체가 되는 느낌을 전달하는 게임들은 많습니다.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좋은 사례가 되겠군요. 이 게임에서 에일리언이 되었을 때 느꼈던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때 느낀 어지러움이나 멀미 역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가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1인칭 사격 게임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에일리언이나 프레데터는 상상 과학 속에 존재하는, 하드하지 않은 설정일 뿐이죠. 반면, 1994년 <울프>에서 늑대는 우리 곁에 존재하는 생명체이고, 생물 다양성이나 동물 권리를 상징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야생 동물이 되고 동물 권리를 실감하는 그런 특징이 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은 별로 많지 않아요.
<압주> 같은 게임을 <라이온>이나 <울프퀘스트>나 <쉘터 2>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압주>는 그저 잠수부가 되고 해양 풍경을 감상하는 내용입니다. <라이온>이나 <쉘터>와 달리 <압주>에서 잠수부는 다른 동물들과 상호작용하지 않죠. 그저 백상아리와 함께 여행할 뿐이고요. 하지만 드넓은 자연 풍경을 돌아다니고 구경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고, 그렇게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죠. <압주>에서 수장룡과 다른 해양 동물들을 환상적으로 감상하는 것처럼 <쉘터 2>에서 눈발이 휘날리는 툰드라를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파 크라이 3> 같은 게임 역시 드넓은 풍경을 자랑하나, <압주>나 <쉘터 2>와 입장이 너무 다릅니다. <파 크라이 3> 같은 게임에서 자연 풍경은 대량 학살을 위한 배경입니다. 반면, <압주>나 <쉘터>에서 자연 풍경은 게임 주인공이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심파크>나 <오퍼레이션 제네시스>, <타이토 에콜로지> 역시 <압주>나 <쉘터>와 달라요. 직접 거대한 자연 환경 속을 떠돌아다니는 느낌이 많이 부족하다고 할까요.
두서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놨습니다. 결론은 유감스럽게도 생태 오픈 월드 게임들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쉘터 2> 같은 게임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