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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장대한 미생물들과 자연 생태계 보존 본문

감상, 분류, 규정/자연과 문명

장대한 미생물들과 자연 생태계 보존

OneTiger 2017. 5. 21. 20:00

[이런 작은 생명체들은 지구 자연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아주 튼튼하고 중요한 기반일 겁니다.]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는 제프리 베넷이 쓴 우주 생물학 서적입니다. 이 책은 아주 간단하지만 정말 궁금한 것을 하나 묻습니다. 과연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는가? 바로 이 짧지만 엄청난 물음이 책의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외계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답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이 물음에 답하고 싶다면, 그 이전에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생명체는 무엇일까요. 무엇을 생명체라고 불러야 할까요.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동식물이나 포자 정도만 생명체라고 생각하지만,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명체들이 수두룩할 겁니다.


게다가 외계 생명체는 우리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걸 생명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게다가 어떻게 생명체가 등장했을까요. 45억 년 이전, 지구가 처음 태어났을 때,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각종 유기물들은 이런저런 과정을 거쳤고 마침내 생명체로 발현했습니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하지만, 이런 설명은 충분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생명체가 발현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지구는 생명체를 잉태했으나, 그 과정이 다른 외계 행성에서 똑같이 벌어질까요. 생명체 발현은 그저 지구만의 고유한 현상이 아닐까요. 이 넓고 넓은 우주에 사실 지구만이 생명의 유일한 요람은 아닐까요. 수많은 과학자들은 그럴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런 생각은 꽤나 서글프지만, 이 우주에서 지구는 생명체의 유일한 요람일지 모릅니다. 생명체 발현은 아주 극히 드문 현상이고, 인류가 외계 행성에 진출해도 생명체 따위를 전혀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 아주 작은 생명이라도 외계 행성에 살아간다면, 그 생명체들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 생명체들도 진화할까요.


진화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 광신도들은 진화가 거짓말이라고 헛소리를 늘어놓곤 하지만, 광신도들이 개거품을 물든 말든 수많은 생물들은 지금도 꾸준히 진화하는 중입니다. 그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겠으나, 심지어 그 광신도들조차 진화의 대열에 참가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미생물이 고등 생명으로 무조건 진화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어쩌면 행성의 급격한 변화나 가혹한 기후는 미생물의 진화에 제동을 걸 수 있습니다. 미생물들은 아주 가혹한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번성할 수 있으나, 고등 동물은 그렇지 못합니다.



만약 이런 여러 제약이 존재함에도 외계 문명이 출현했다고 가정하죠. 그렇다면 그 외계 문명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왜 그들은 인기척을 드러내지 않을까요. 왜 우리는 그들의 신호를 받지 못하고, 왜 그들은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까요. 정말 뻔하고 엉뚱한 음모론처럼 외계인들은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는 중일까요. 언젠가 우리가 스스로 우주로 진출하고 좀 더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할 때까지 그들은 그저 기다리는 중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전세계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한다면, 외계 문명은 우리를 그들의 대열에 끼워줄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인류 사회는 사회주의 체계로 나가야 합니다, 하하.)


아니면 그저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인류 문명과 외계 문명은 서로 만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거리가 멀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답변 같지만, 이 거리를 줄일 방법은 없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초광속 항해, 웜홀 통과, 초공간 도약 등을 밥 먹듯이 써먹지만, 외계 우주선이나 미래의 인류 우주선이 초공간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순전히 상상의 영역이고, 인류는 영원히 초공간으로 떠나지 못할 수 있어요.



제프리 베넷은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에서 저런 여러 물음들에 답합니다. 그리고 외계인이 정말 존재할 수 있는지 하나씩 알아봅니다. 이 책은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었고, 과학적 상상력, 과학의 의미, 생명체의 개념, 생명 발현, 다른 행성들의 환경, 수많은 항성계들, 문명의 발전 등을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이런 설명들을 들으면, 마치 거대한 우주 서사시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사실 재미있는 과학 서적들은 한 편의 SF 소설처럼 보입니다. 하드 SF 소설이 과학 논문 같은 느낌을 풍기는 것처럼 재미있는 과학 서적들은 SF 소설의 특성을 공유합니다.


물론 하드 SF 소설과 과학 서적은 서로 다릅니다. 이 둘은 정체성도 다르고 목적도 다릅니다. 심지어 SF 소설들은 과학적인 고증 따위를 저 머나먼 우주 너머로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소설들은 아주 흔하고 흔합니다. 그래도 SF 소설과 과학 서적은 어느 정도 공유하는 특성이 있고, <우리는 모두 외계인>은 그런 특성을 잘 드러냅니다. 이 책을 읽으면, 저 자신이 장대하고 하드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관망한다고 착각할 정도입니다. 단순한 과학적 상상으로 시작하지만,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고, 마침내 문명의 발흥까지 다다릅니다. 우주의 역사를 한눈에 들여다본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인상적인 부분은 '4장 생명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특히 생물 다양성의 위대함과 미생물의 엄청난 생존력은 자연 생태계가 무엇인지 반추하곤 합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진짜 과학자들만 아니라 <고지라> 같은 블록버스터도 저런 대사를 읊조립니다. 뭐, 이 세상에는 고지라 같은 거대 괴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지라가 심해에서 깨어나고 도시에 상륙하고 시퍼런 불꽃을 내뿜고…. 이런 것들은 그저 괴수물의 상상력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지구에 고지라는 없어도 고지라만큼 어마어마하고 굉장한 생물들이 살아갑니다. 그런 생물들은 우리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 살았고, 아마 우리가 멸망한 이후에도 오래도록 살아갈지 모릅니다. 우리는 동물이나 식물이나 (눈에 보이는) 포자 정도가 생명체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생태계의 진짜 주인공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일 겁니다. 이들은 지구 환경을 바꿨고 지금도 바꾸는 중이고, 수많은 생태계에 압도적이고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크기는 작지만, 지구 생태계는 결코 미생물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미생물들 덕분에 살아가는 중입니다.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이유는 아주 작은 광합성 세균이 산소를 뿜었기 때문입니다. 미생물들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지만, 우리가 없어도 미생물들은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뭐, 우리 몸 속에서 우리와 공존하는 미생물들은 섭섭하게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사실 생명의 역사를 35억 년이라고 가정한다면, 본격적인 동물들은 대략 5억 년 이전에 출현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진화의 대폭발이라고 부르곤 하죠. 에디아카라 생물군이나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 30억 년 동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물/식물 생태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진화 생물학 서적을 찾아보면, 다양한 동식물들을 소개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차르니오디스쿠스나 스프리기 같은 생명들도 5억 년 이전에 생겼습니다. 신생대 생태계의 역사는 그것보다 훨씬 짧고, 인류의 역사는 그것보다 더 짧고, 거대 문명의 역사는 더욱 짧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인류 문명은 그야말로 별 것 아닙니다. 우리는 인류가 지구 환경을 엄청나게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몇 십 억 년 전부터 미생물들도 그런 작업을 해왔습니다. 네, 우리 인류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죠.



약간 뜬금이 없는 말이지만, 저는 이런 글을 읽으면서 자연 환경 보존이 무엇인지 묻곤 합니다. 자연 환경을 지킨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지구 생태계가 35억 년 동안 변했다면, 자연 생태계가 앞으로 꾸준히 바뀐다면, 우리 인류가 자연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 없다면, 자연 환경 보존은 무엇을 뜻할까요. 저는 그게 '평등한 삶'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 환경 보존은 자연을 고스란히 남기자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생명들과 평등하게 살아가자는 뜻입니다. 인종과 성별과 계급을 넘어서, 무엇보다 생물 종을 넘어서, 모두가 조화롭고 평등하게 살아가자는 뜻입니다.


산업 발전만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주 순수하고 깨끗하고 이상적인 자연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자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연 환경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기 위해, 우리의 감성을 풍부하게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이상적이고 아름답고 순수한 자연은 어디 검마 판타지의 자연 신앙에나 존재할 겁니다. 아니, 검마 판타지의 드루이드나 레인저도 그런 헛소리를 주절거리지 않을 겁니다.



제프리 베넷은 아무리 인류가 노력해도 이 미생물들의 원대하고 끈질긴 세계를 파괴하지 못할 거라고 말합니다. 만약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가 전면 핵전쟁을 벌이고, 그래서 지표면 생태계가 죄다 사라졌다고 가정하죠. 하지만 지하 동굴 속과 심해 열수구와 차가운 빙하 밑의 미생물들은 그냥저냥 살아갈 겁니다. 아무리 우리가 환경을 오염시켜도 지구의 대부분 생물들은 이를 알아차라지 못하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자본주의 체계가 온실 가스를 뿜거나 오존층을 뚫거나 핵 폐기물을 묻어도 미생물들은 열심히 살아갈 겁니다.


비록 이런 미생물들은 너무 작고 단순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나, 생물 다양성은 정말 거대 괴수만큼 대단합니다. 고지라 같은 거대 괴수는 존재하지 않지만, 고지라만큼 신비롭고 장대한 생명 현상은 존재합니다. 물론 미생물들이 대단하다고 해서 외계 행성에 미생물들이 무조건 존재할 거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 장대한 생명의 역사와 생태계의 상호작용은 그 자체로 굉장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미생물들이 대단하다면,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도 조금이나마 올라갈지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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