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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소설 은 위대한 문장들을 남겼습니다. "왕은 임신했다." 같은 문장 역시 그렇죠. 이 문장을 봤을 때, 독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을 겁니다. 어떻게 왕이 임신할 수 있을까요? 왕은 남자이고, 남자는 임신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은 게센이라는 외계 행성을 이야기합니다. 게센 행성에서 원주민들은 성별을 바꿀 수 있습니다. 번식기에 일부 동물들이 성별을 바꾸는 것처럼 게센 사람들 역시 성별을 바꿉니다. 하지만 소설 주인공은 외부인이고, 이런 관습에 쉽게 적응하지 못합니다. 게센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 양쪽 모두 아닙니다. 어떻게 양쪽 성별에 익숙한 사람이 이런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어슐라 르 귄은 놀라운 사변을 펼쳤고, 은 길이길이 남을 명작이 되었습니다. 은 어떻게 사변 소설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 있..
"아마 여러분이 짐작하는 것처럼, 결국 우리는 비디오 게임들을 이용해 '인류의 시간대'를 채우는 야망을 품었습니다. 미래를 포함해서요." 비디오 게임 가 알려졌을 때, 게임 제작진 중 하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는 패러독스 스튜디오가 만든 게임이고, 이전에 패러독스 스튜디오는 , , 같은 거대 전략 게임들을 주로 만들었죠. 아마 게임 제작진은 중세부터 현대를 거치고 미래로 이어지는 거대한 줄기를 그리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SF 세상에서 이런 야심은 낯설지 않습니다. 이미 수많은 SF 작가들은 원시 시대부터 우주 시대까지 인류 역사를 관통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은 원시 인류와 우주 항해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은 평행 세계들을 넘나들고, 우주가 탄생하는 과정부터 아득한 미래까지 둘러봅니다. 는 광대한 우..
존 크리스토퍼가 쓴 은 사람들이 못 먹고 굶주리는 이야기입니다. 소설 제목처럼 온갖 작물들이 시들고, 식량들이 부족해져요. 사람들은 굶주리고, 굶주림은 이성과 문명이라는 가식을 벗기고, 마침내 다들 서로 죽이기 시작합니다. 좀 더 먹기 위해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들을 때리고 짓밟고 죽이고 부려먹습니다. 사회적 안전망 따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정부는 국민들을 버리고, 국민들은 신뢰와 화합을 버리고, 문명 세계는 죽고 죽이는 무법천지가 됩니다. 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미화하거나 왜곡하거나 우회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얼마나 빨리 문명 세계가 무법천지로 타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얼마나 쉽게 사람들이 가식을 집어던질 수 있는지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문명인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
소설 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뭘까요. 저는 주인공 쉐백이 술에 취하고 쓰러지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서 쉐백이 가장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순간은 이른바 필름이 끊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쉐백은 수많은 감성들을 느끼나, 필름이 끊어졌을 때, 쉐백은 아예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후 소설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그래서 저는 이 장면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당신들에게는 벽이 있어!"라는 대사 역시 핵심적이라고 생각해요. 필름이 끊어지기 전에 쉐백은 어떤 여자와 만납니다. 사실 그 여자와 만나지 않았다면, 쉐백은 술에 취하지 않고 필름이 끊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여자였죠. 쉐백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남자였..
[모래벌레, 사막 생태계, 멜란지 스파이스, 스파이스 채취. 이것들은 경제 현상으로 귀결합니다.] "멜란지 스파이스를 지배하는 사람은 우주를 지배한다." 이 문구는 소설 을 가리키는 문구입니다. 에서 귀족들은 아라키스 행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황제 역시 아라키스 행성에 관심이 많고, 하코넨 가문과 아트레이드 가문은 아라키스를 둘러싸고 싸웁니다. 귀족들과 황제가 아라키스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멜란지 스파이스 때문입니다. 아라키스 행성에는 원주민 프레멘들이 살고, 소설 주인공 폴 무앗딥은 프레멘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됩니다. 하코넨 가문이 프레멘들을 부려먹는 이유와 아트레이드 가문이 아라키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다들 여기를 장악하려고 하는 이유 역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멜란지..
가끔 저는 '빼앗긴 자들'이라는 소설 제목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은 사회주의 공동체(무정부적인 노동 조합주의)를 묘사하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서 아나레스 사람들은 소유하려는 욕심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자기 중심적이라거나 소유적이라는 말은 모욕이 됩니다. 아나레스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자기 중심적으로 굴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나레스 사람들은 서로 욕할 때, 소유주의자라고 욕해요. 따라서 저는 이 소설에게 '빼앗긴 자들'보다 '소유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훨씬 소설 내용에 어울려요. 어쨌든 아나레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소유하는 동시에 소유하지 않습니다. 서로 모든 것을 함께 소유하기 때문에 사적인 소유를 최대한 멀리할 수 있죠. 그게 과연 바..
"나는 부분적으로 오도니안입니다. 노동 조합주의자이고, 자유주의자이기도 하죠. 우리는 주체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 노동 조합과 함께 일하지만, 중앙 집권에는 반대해요." "너 같은 자유주의자들이란 마음이 물렁해서 실제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말이지. 자유주의는 현실에서 잘 작동하는 중이지. 자유주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긴 시간 동안 가혹한 노동을 한 후에야 겨우 미약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지. 나디아, 지구는 완벽한 자유주의 세상이야. 그곳의 절반은 지금도 굶주리는 곳이야. 그렇게 자유로운 곳이지." 위의 두 대사는 소설 과 에서 나왔습니다. 전자는 이고, 후자는 입니다. 에서 주인공은 어느 노동 조합주의자와 만나고, 그 사람은 자신을 조합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라고 소개합니다. 에서 다양한 과학자들은 화성에서..
소설 은 아카리스 행성을 둘러싼 음모와 전쟁을 이야기합니다. 특이하게도 이 소설에서 행성의 자연 생태계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라키스는 사막 행성이고, 따라서 생존하기가 매우 힘들어요. 하지만 수많은 귀족 가문들이 이 행성을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멜란지 스파이스를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멜란지 스파이스는 수명을 연장하거나 예지력을 부여하기 때문에 상당히 귀한 물건입니다. 그래서 황제나 힘이 있는 가문은 멜란지를 함부로 매매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행성을 관리하죠. 이 멜란지라는 물질은 모래벌레에게서 비롯합니다. 좀 거칠게 요약한다면, 모래벌레의 배설물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황제나 귀족 가문들이 동물의 배설물에 연연한다는 뜻이죠. 뭐, 현실에서도 향유고래의 토사물은 아주 비싼 향수로 팔리죠. ..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아마 누구나 이런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그만큼 뭔가를 먹는다는 행위는 우리 인류에게 중요합니다. 아니, 저런 문구를 들먹이지 않는다고 해도 뭔가를 입에 집어넣는 행위는 수많은 동물들에게 중요합니다. 영양분을 섭취한다는 행위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중요합니다. 뭔가를 먹지 않으면,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대부분 생명체들은 생존하지 못합니다. 자연 생태계는 수많은 에너지가 흐르는 상호작용이고, 그만큼 수많은 생명체들이 먹고 살기 위해 하나의 체계를 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뭔가를 먹는다는 행위는 다른 행위와 비교되지 못할 겁니다. 옷이 없거나 집이 없는 사람도 우선 뭔가를 먹어야 합니다. 뭔가를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합니다. 이토록 먹고 사는 행위가 중요하기..
[게임 에서 함대와 싸우는 우주 드래곤! 이런 설정 역시 중세 판타지에서 비롯했겠죠.] 예전에 어떤 인터넷 평론을 읽었습니다. 그 평론은 판타지 소설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나열하더군요. 초기 소설부터 전성기 소설을 거치고 던전 크롤링 게임을 설명하고 21세기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기념비적인 판타지 작품들이 줄줄이 등장했습니다. 각종 신화를 제외하고, , , 등은 초기 판타지입니다. (는 초기 SF 소설로 불리기도 하죠.) 3부작이나 시리즈는 현대 서사 판타지를 구축한 장본인이고요. 3부작 역시 빼놓지 못하겠죠. 그 평론은 소설 위주로 이야기했으나, 게임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게임 자체의 영향력도 어마어마하고, 시리즈나 시리즈 같은 걸출한 소설들도 있고요. 는 전형적인 서사 판타지가 아니지만, 21세기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