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SF 작가가 드러내는 세계관 본문
"아마 여러분이 짐작하는 것처럼, 결국 우리는 비디오 게임들을 이용해 '인류의 시간대'를 채우는 야망을 품었습니다. 미래를 포함해서요." 비디오 게임 <스텔라리스>가 알려졌을 때, 게임 제작진 중 하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텔라리스>는 패러독스 스튜디오가 만든 게임이고, <스텔라리스> 이전에 패러독스 스튜디오는 <유로파 유니버셜리스>, <크루세이더 킹즈>, <하트 오브 아이언> 같은 거대 전략 게임들을 주로 만들었죠. 아마 게임 제작진은 중세부터 현대를 거치고 미래로 이어지는 거대한 줄기를 그리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SF 세상에서 이런 야심은 낯설지 않습니다. 이미 수많은 SF 작가들은 원시 시대부터 우주 시대까지 인류 역사를 관통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2001 우주 대장정>은 원시 인류와 우주 항해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타임십>은 평행 세계들을 넘나들고, 우주가 탄생하는 과정부터 아득한 미래까지 둘러봅니다. <스타메이커>는 광대한 우주를 날아가고, 수많은 문명들이 부대끼는 장면을 강조해요. 종종 SF 작가들은 독립적인 작품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로버트 하인라인은 여러 소설들을 엮었고, 미래사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 역시 <파운데이션>을 위주로 여러 시리즈들을 엮었습니다. 그건 무리한 욕심이었고, 덕분에 아시모프는 욕을 많이 먹었으나, 아주 웅장한 연대표를 만들었죠. 어슐라 르 귄은 아예 작정하고, 다양한 원시 문명들과 중세 문명들과 미래 문명들을 보여줍니다. <헤인 연대기>는 원시 시대부터 미래 시대까지 관통하는 인류학 SF 시리즈 같습니다. 킴 스탠리 로빈슨은 <수도 과학> 시리즈부터 <캘리포니아 3부작>을 썼고, <뉴욕 2140>, <2312>, <화성 3부작>과 <오로라> 같은 우주 개척물들이나 우주 탐사물들을 썼습니다. 아, <주술사>와 <쌀과 소금의 시대> 역시 빠지지 못하겠군요.
킴 로빈슨은 정말 원시 시대부터 인류가 우주를 개척하는 시대까지 광대하게 조명하는 것 같아요. 굉장하지 않습니까. 킴 로빈슨은 이런 소설들이 하나의 연대를 이룬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술사>부터 <오로라>까지 연이어 읽는다면, 독자는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아주 장대한 흐름을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분량이 길다고 해도, 서사 판타지에는 이런 장대한 흐름이 없겠죠. 아, <시간의 수레바퀴>가 14권이라고요? 하지만 <시간의 수레바퀴> 시리즈는 원시 시대부터 첨단 미래까지 관통하지 않습니다.
서사 판타지가 SF 소설들보다 못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SF 소설이 장대한 시각을 펼친다는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잠시 서사 판타지와 비교했을 뿐입니다. 이런 웅장한 연대표, 원시 시대부터 첨단 미래까지 관통하는 연대표는 SF 작가들에게 꿈이거나 로망일지 모릅니다. SF 소설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당연히 과거를 돌아볼 수 있고, 과거와 미래를 함께 일정한 연대기로 묶을 수 있겠죠. 원시 인류가 원시적인 공산주의 체계를 이루는 모습부터 미래 복제인간들이 기술적 유토피아를 이루는 모습까지, SF 소설은 거대하게 조명할 수 있겠죠.
어쩌면 그게 SF 소설이 궁극적으로 닿을 수 있는 장기적인 목표일지 모릅니다. 이런 특징을 상상할 때마다, 저는 SF 소설이 정말 아찔한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SF 소설은 그런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매체일 겁니다. 종종 SF 독자들은 다른 환상 소설들과 주류 문학들을 비웃거나 깔봅니다. 다른 환상 소설들과 주류 문학들이 너무 단편적이고 짧은 시각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SF 우월주의에 절대 동의하지 않으나, 분명히 SF 소설은 웅장합니다. 소설 하나가 드러내는 시각이 웅장하고, 연대표가 드러내는 시각이 웅장합니다.
문제는 SF 작가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동물이고, 천재적인 작가 역시 과거와 현대와 미래를 완벽하게 꿰뚫어볼 수 없습니다. SF 작가는 자신의 사상과 세계관을 과거와 미래에 투영할 테고, 따라서 웅장한 연대표는 작가의 사상을 반영할 겁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겁니다. 어떻게 SF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가. 거기에 따라 과거와 미래는 얼마든지 다른 색깔들로 바뀔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계를 긍정하는 작가가 과거와 미래를 그린다면, 거기에는 여전히 억압적인 구조를 반성하지 않는 시각이 남아있을 겁니다. 그걸 웅장한 연대표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규모는 웅장할지 모르나, 연대표를 뒷받침하는 디딤돌은 허약하겠죠.
그래서 SF 소설을 읽을 때, 저는 작가가 드러내는 세계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독자는 소설이 드러내는 세계관, 그러니까 작가가 드러내는 세계관을 살피고, 소설이 무엇을 놓쳤는지 지적해야 할 겁니다. 독자는 작가가 놓치거나 소설이 아직 말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해야 할 겁니다. 아무리 소설이 감동적이라고 해도, 독자는 무엇이 부족한지 날카롭게 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올바른 독서겠죠. 이 블로그에는 SF 소설과 관계없는 경제나 생태 이야기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것들이 SF 소설을 지적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스텔라리스>가 인류의 시간대를 채울 수 있을까요. 게임 개발자는 웅장하게 야심을 품었으나, 솔직히 <스텔라리스>는 진부한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진부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이용해 인류의 시간대 운운하는 개발 일지는 좀…. <스텔라리스>는 분명히 화려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게임과 문명을 날카롭게 진단하는 시각은 서로 다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