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SF 소설에서 기둥과 지붕의 관계 본문
SF 소설은 등장인물을 등한시하는 소설로서 유명합니다. 소설을 이루는 3대 요소가 사건, 배경, 인물이라면, SF 소설은 인물보다 사건과 배경에 훨씬 치중합니다. 특히, SF 소설에서 배경은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겁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설정 놀음을 즐깁니다. 설정 놀음은 배경 설정을 짜맞추는 놀이입니다. 아이들이 레고 블록을 짜맞추는 것처럼 SF 팬들은 배경 설정을 짜맞추고, 가상의 세계가 원활하게 돌아가는지 살핍니다. 심지어 어떤 SF 작가 지망생들은 소설보다 설정 사전에 더 신경을 쏟습니다. 설정 사전은 그저 참고 자료일 뿐이고, 그 자체로서 소설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SF 작가 지망생들은 열심히 설정 사전을 씁니다. 설정 사전을 열심히 쓰느라 그들은 기운을 소모하고, 결국 소설 본편을 쓰지 못하죠. SF 동호회에서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심심하지 않게 들었습니다. 아마 이는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겠죠. 홍인기 같은 SF 고수 평론가 역시 설정 사전에 치중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이는 SF 소설이 등장인물보다 배경을 중시한다는 반증이 될 수 있겠죠. 전문적인 작가들 역시 등장인물보다 배경 설정을 중시합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런 경우죠. 아이작 아시모프는 등장인물들에게 별로 미련을 남기지 않습니다. 아시모프는 웃기고 재미있는 사람이고, 충분히 개성적인 등장인물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개성적인 등장인물을 만든다고 해도, 아시모프는 등장인물의 관념 속으로 깊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시모프 소설들 속에서 등장인물은 일종의 도구로서 작동합니다. 수잔 캘빈 박사처럼 아주 핵심적인 등장인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잔 캘빈 박사는 그저 로봇 3원칙에 얽힌 문제들을 해결할 뿐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수잔 캘빈의 내면을 끄집어내지 않아요.
이는 그저 심리 묘사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아시모프가 등장인물보다 배경 설정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는 뜻입니다. 저는 모든 SF 소설이 등장인물에게 무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SF 울타리 안에는 온갖 소설들이 존재하고, 숱한 소설들은 등장인물의 내면에 관심을 쏟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통적인 SF 소설이 배경 사건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SF 소설이 그런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죠. 시간이 흐를수록 SF 작가들은 배경 설정 이외에 다른 요소들에 시선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SF 소설은 더 이상 배경 설정에 집착하는 소설이 아닙니다.
하지만 SF 소설에게 배경 설정을 중시하는 관습은 남았을 겁니다. 저는 이런 관습이 완전히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SF 소설이 등장인물에게 무심할까요? SF 작가들이 글을 제대로 못 쓰기 때문에? 작문 실력이 엉터리이기 때문에? 뭐, 그런 이유가 아예 없지 않겠죠.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SF 소설은 어떻게 과학 기술이 인류 문명을 바꾸는지 파악합니다. 19세기 이후, 과학 기술은 (서구) 인류 문명을 급격하게 바꿨습니다. (서구)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느꼈고, SF 소설은 그런 충격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전망합니다.
그런 충격은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일지 모릅니다. 부정적인 충격은 디스토피아나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되겠죠. 긍정적인 충격은 유토피아가 되겠고요.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충격을 이끄는 존재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존재입니다. 충격을 유발하는 요소는 과학 기술이고, 과학 기술은 사회를 바꾸고, 그래서 인간은 충격을 느낍니다. 인간은 주도적으로 뭔가를 수행하지 못합니다. 미치광이 과학자가 위험한 로봇이나 괴수를 만든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그런 행위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행위가 사회에 미치는 파장입니다.
이걸 건축 구조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기둥 없이 지붕이 존재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건축가가 지붕을 올리고 싶다면, 먼저 기둥을 세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기둥은 과학 기술이고, 인간이 느끼는 관념은 지붕입니다. 기둥이 지붕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처럼 과학 기술은 인간의 관념보다 먼저 존재합니다. 따라서 SF 작가들은 인간의 관념보다 과학 기술을 중시합니다. 따라서 SF 작가들은 배경 설정을 열심히 짜고, 등장인물에게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등장인물은 배경 설정에게 종속된 역할입니다.
이는 SF 소설이 인간을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묘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SF 소설은 인간이 수동적이라고 주장하지 않아요. 오히려 SF 소설은 인간이 그런 충격과 변화에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위험한 살상 로봇이 사람들을 도살하는 장면을 왜 SF 작가들이 묘사할까요? 사람들이 멍청하게 기계에 맞아죽는다고 SF 작가들이 주장하기 원할까요? 아닙니다. SF 작가들은 그런 사변을 이용해 인간이 과학 기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중점은 그겁니다. 중점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인간상이 아니라 저항하는 인간상입니다. SF 소설은 세상을 향해 경고하는 문학입니다.
사실 19세기에 SF 소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이미 이런 형식을 고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생산 양식(기둥)이 인간의 관념(지붕)을 형성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충격적인 과학 기술이 우리의 관념을 바꾸는 것처럼,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우리의 관념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바꿔야 합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세상을 바라본 것처럼 SF 소설 역시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과학 기술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겠죠. SF 작가들은 의식하지 못하겠으나, 이렇게 마르크스주의는 SF 소설을 분석하는 유용한 관점이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