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듄>의 리에트 카인즈와 <빼앗긴 자들>의 타크베르 본문
소설 <듄>은 아카리스 행성을 둘러싼 음모와 전쟁을 이야기합니다. 특이하게도 이 소설에서 행성의 자연 생태계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라키스는 사막 행성이고, 따라서 생존하기가 매우 힘들어요. 하지만 수많은 귀족 가문들이 이 행성을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멜란지 스파이스를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멜란지 스파이스는 수명을 연장하거나 예지력을 부여하기 때문에 상당히 귀한 물건입니다. 그래서 황제나 힘이 있는 가문은 멜란지를 함부로 매매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행성을 관리하죠.
이 멜란지라는 물질은 모래벌레에게서 비롯합니다. 좀 거칠게 요약한다면, 모래벌레의 배설물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황제나 귀족 가문들이 동물의 배설물에 연연한다는 뜻이죠. 뭐, 현실에서도 향유고래의 토사물은 아주 비싼 향수로 팔리죠.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쨌든 모래벌레는 스파이스를 생산하는 아주 중요한 동물이나, 동시에 아라키스를 사막 행성으로 만든 주범입니다. 물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에 유충인 모래송어들은 물을 감싸고 없앱니다. 덕분에 행성 원주민 프레멘들은 아주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여느 스페이스 오페라와 다르게 이처럼 <듄>은 자연 생태계에 주목합니다. 아라키스는 사막 행성이고, 모래벌레는 사막을 만든 주범이고, 하지만 이 거대한 동물은 귀중한 스파이스를 생산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기후를 함부로 바꾸지 못하고, 게다가 이 어마어마한 모래벌레들은 사람들을 덥썩 집어삼키고…. 이런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혔죠. 자연 생태계 이외에 다른 요소들도 중요합니다. 귀족들이 암투를 벌이거나 오래된 종교가 귀족 가문을 구원자로 둔갑시키거나 기타 등등. 하지만 이 소설이 돋보이는 이유는 역시 독특한 자연 생태계 때문일 겁니다. 누구나 <듄>을 연상할 때, 거대한 모래 사막과 그 사막을 헤엄치는 어마어마한 모래벌레를 떠올리겠죠.
따라서 행성 생태학자가 중요한 등장인물로 등장한다고 해도 그건 하등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리에트 카인즈는 원주민 프레멘들을 이끄는 지도자이고, 동시에 아라키스를 연구하는 행성 생태학자입니다. 그리고 리에트는 뭔가 더 큰 이상을 품었죠. 가난하고 힘겨운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생태학자입니다. 혹독한 자연 환경은 힘이 없는 원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카인즈는 프레멘들과 가까워졌을 겁니다. 아니, 사실 카인즈의 아버지인 파도트부터 생태학자이고 프레멘들과 가까웠죠.
리에트 카인즈를 볼 때, 가끔 저는 타크베르라는 등장인물을 생각합니다. 소설 <빼앗긴 자들>에 등장하는 해양 생태학자입니다. 타크베르는 아나레스 위성에 살아요. 아라키스만큼 가혹한 행성은 아니나, 아나레스는 꽤나 살기 힘든 위성입니다. 모든 것이 삭막하고 황량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힘들게 일해야 합니다. 게다가 대기근이 덮치곤 하고, 사람들은 쫄쫄 굶어야 해요. 아나레스 옆에 우라스라는 행성이 있고, 그 행성은 풍부하고 아름다운 자연 생태계를 자랑하나, 아나레스 사람들은 그런 풍부한 생태계를 구경하지 못합니다. 다들 그저 죽어라 작물들을 키우고, 입에 풀칠할 뿐이죠. 타크베르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다행히 이 위성에는 바다가 있고, 바닷속에는 엄청난 물고기들이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아직 아나레스 사람들은 그 물고기들을 식량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모르나 봅니다. 어쨌든 소설 속에서 타크베르는 수산 자원을 연구하고, 그래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작가 어슐라 르 귄이 여러 인물들 가운데에서 생태학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아나레스 위성이 척박하다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비록 바닷속에는 어마어마한 물고기들이 있으나) 동물들이 없는 위성에 사는 생태학자라니…. 가혹한 환경에서 힘이 약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생태학자라는 관점에서 리에트 카인즈와 타크베르는 비슷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사실 생태학자는 약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비단 SF 소설만 아니라 현실의 생태학자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생태학자는 어떻게 총체적인 에너지가 흐르는지 연구합니다. 그리고 인류 문명은 거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죠. 특히, 산업 혁명 이후, 인류 문명은 자연 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끝내 기후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생태학자는 이를 절대 외면하지 못할 겁니다. 사실 대부분 생태학자들은 그런 사실을 인식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생태학자는 거기에서 한 걸음을 더 나가야 할 겁니다. 왜냐하면 자연 생태계가 수탈을 당하는 것처럼 밑바닥 사람들도 수탈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밑바닥 사람들과 자연 환경은 비슷합니다. 양쪽 모두 지배 계급에게 수탈을 당하죠. 빈민들과 원주민들과 야생 동물들은 모두 비슷한 밑바닥 계급입니다. 따라서 야생 동물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생태학자는 원주민들과 빈민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그리고 왜 그들이 수탈을 당하는지 분석해야 할 겁니다. 문제는 압도적이고 폭력적인 지배 계급이에요. (현대 문명에서는 자본주의가 지배 계급의 역할을 맡았죠.) 따라서 생태학자인 리에트와 타크베르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상황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인즈가 확고한 지도자라면, 타크베르는 그저 사회 구성원일 뿐입니다. 카인즈는 프레멘에게 족장과 비슷하나, 타크베르는 그런 위치가 아닙니다. 타크베르는 상당히 중요한 업무를 맡았으나, 그렇다고 해도 아나레스 사람들을 통제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하지 않습니다. 사람들도 타크베르가 권위적인 인물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나레스 사람들은 그런 권위를 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나레스에는 중앙 지도부가 없고, 위계적인 질서가 없고, 무엇보다 생산 수단을 사유하지 않죠. 물론 아나레스에 저런 것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나레스 사회 역시 상당히 많은 문제들과 모순들을 품었습니다. (타크베르의 연인인) 소설 주인공은 그런 것들에 진절머리를 내고, 아예 아나레스에서 탈출했어요. 하지만 타크베르는 아나레스 사회가 소중하다고 말하고, 아나레스 사회를 긍정합니다. 똑같이 가혹한 환경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생태학자이나, 카인즈가 권위적으로 보이는 반면, 타크베르는 권위를 부정하고 평등하게 보입니다. 물론 카인즈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습니다. 거대 가문들은 아라키스를 주시하고, 그래서 카인즈는 항상 신경이 날카롭습니다.
아라키스에 비해 아나레스는 훨씬 자유롭습니다. 우라스 사람들은 아나레스 사회의 자치를 인정합니다. 함부로 간섭하거나 침략하지 않죠. 사실 아나레스에도 중요한 광물들이 있고, 우라스 사람들은 그런 광물들을 간절하게 원합니다. 하지만 우라스 사람들은 아나레스에 간섭하지 않아요. 아나레스 사람들이 열심히 광물을 캐고 그걸 우주선으로 보내면, 우라스 사람들은 거기에 만족합니다. 아나레스 사람들을 직접 통제하거나 감독하지 않습니다. 아나레스 사람들이 충분한 광물들을 보내기 때문에 우라스 사람들은 거기에 만족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설정이 꽤나 어설프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지배 계급은 항상 자원을 채취하는 약자들을 통제하기 원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유럽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았을 때, 원주민 노동자들을 아주 잔인하게 몰아붙였죠. 포토시 광산에서는 엄청난 원주민들이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죽어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런 일환입니다. 게다가 자본주의 체계는 그런 가혹한 죽음을 더욱 부채질하죠. <빼앗긴 자들> 속에서 우라스 행성에는 거대한 자본주의 체계가 있고, 따라서 우라스 사람들은 더 많은 광물을 얻기 위해 아나레스를 통제하고 수탈해야 합니다.
우라스 사람들이 아나레스 사회를 통제하지 않는 이유는 작가가 탈권위적인 사회에 좀 더 집중하기 원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마 작가도 착취적인 남아메리카 식민지나 폭력적인 자본주의 체계를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같은 작가가 쓴 <세상을 가리키는 말을 숲> 같은 소설은 그런 착취를 이야기하죠.) 하지만 작가는 소설 속에서 평등하고 탈권위적인 사회를 집중적으로 묘사하기 원했고, 그래서 자본주의 체계를 비교적 덜 묘사한 듯합니다. 분량을 적절하게 배분하기 원했겠죠. 저는 이게 <빼앗긴 자들>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탈권위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묘사하고 싶다고 해도 자본주의 체계를 소홀하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역사적으로 지배 계급들은 항상 평등한 사회를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평등한 사회가 이상적이라고 말하나, 사실 평등한 사회는 매우 현실적입니다. 문제는 지배 계급들이, 왕과 귀족과 (이른바) 문명과 강대국과 자본주의가 그런 평등한 사회를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만약 파리 코뮌이나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가 계속 존재했다면, 북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나 남아메리카 사회주의가 계속 존재했다면, 세상은 상당히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왕당파나 자본주의는 그걸 알았고, 그래서 그들을 짓밟았죠.
<빼앗긴 자들>은 그런 과정을 생략했고, 그래서 꽤나 낭만적인 소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타크베르 역시 카인즈보다 자유 분방하게 보일 겁니다. 카인즈는 언제 거대 가문들이 아라키스를 침략할지 전전긍긍하나, 타크베르는 그런 것을 고민하지 않아요. 우라스 군대는 아나레스를 침략하지 않죠. 하지만 그런 설정을 감안한다고 해도 여전히 타크베르는 카인즈보다 훨씬 자유롭고 탈권위적으로 보입니다. 설사 우라스 군대가 아나레스 위성을 침략한다고 해도 타크베르는 평등을 중시하는 사상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타크베르는 모든 인민이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권위적인 지배 계급이 본질적으로 폭력을 휘두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카인즈 역시 힘겹게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돕기 원하고, 거대 가문들보다 이런 약자들을 위하고, 권위적인 귀족 가문들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하지만 카인즈는 거기에서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권위적인 지배 계급을 싫어하나, 계급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카인즈는 귀족들과 어울려야 하기 때문에 속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나, 그렇다고 해도 리에트 카인즈는 계급 차제를 아예 부정하지 않는 듯합니다.
파도트 카인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파도트 역시 지배 계급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프레멘들이 노예처럼 살아가는 상황에 분노합니다. 파도트는 인류가 행성 생태계에 아주 잔인한 상처를 남겼다고 생각해요. 파도트 카인즈는 그런 착취와 수탈을 끝내고 싶어하고, 아라키스 행성에서 행성 공학과 사회 공학을 동시에 추구하면, 그걸 끝장낼 수 있을 거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라키스가 독특한 자연 생태계를 자랑한다고 해도 파도트는 실패했을 겁니다. 계급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최대한 권력을 자잘하게 나누고, 사유 재산을 없애고, 모두가 땅을 공유하는 제도들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파도트와 리에트는 아카리스 행성에서 새로운 생산 방식을 꿈꿨고, 그런 생산 방식이 계급 차별에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지배 계급 자체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또 다른 지배 계급이 되었을 테고, 계속 수탈을 반복했을 겁니다. 프레멘들은 노예에서 벗어났을지 모르나, 또 다른 노예들이 등장했을 테고, 자연 생태계는 수탈을 당했겠죠. 타크베르는 그런 한계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생산 수단의 사유화에 반대했고요.
파도트와 리에트 카인즈는 노예들을 없애기 원했고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기 원했습니다. 두 생태학자는 충분히 인상적인 인물들이나, 뻔한 한계를 드러냈어요. 지배 계급을 인정했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타크베르가 진정한 생태학자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