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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사람들은 서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은 이야기하는 동물이 아닐까 싶을 만큼 일상 속에서도 여러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물론 사람만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지만, 사람들은 창조적으로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즐깁니다. 덕분에 소설가라는 업종까지 생겼죠. 심지어 소설가들은 아주 환상적인 이야기까지 짓습니다. 사무엘 콜리지는 이걸 가리켜 불신의 유예라고 불렀고요. 그런데 수많은 시, 소설, 희곡, 대본 등을 보면, 그건 대부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이야기의 주제나 소재가 전부 인간 중심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줄창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만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이 사람과 만나고, 사람이 사람과 싸웠고,..
배미주의 는 사이버펑크 소설입니다. 여느 사이버펑크 소설처럼 의 주인공들은 다른 대상에 접속하죠. 그 대상은 야생 동물들입니다. 사람들은 야생 동물들에 접속하고, 동물들의 삶과 자연 생태계를 생생하게 만끽합니다. 결국 이런 접속은 자연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고요. 저는 이 소설을 읽고, 일종의 가상 동물원을 떠올렸습니다. 가상 현실 기술을 이용해 사파리를 만들고, 관람객들은 그 가상의 사파리를 체험합니다. 이런 가상 동물원은 크게 두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동물들을 착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동물원은 감옥입니다. 동물들이 갇힌 감옥이죠. 동물들은 비좁은 우리 안에서 평생 지내야 하고, 그 때문에 종종 병에 걸리거나 정신병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죽기까지 합니다. 하..
애니메이션 는 여타 디즈니 장편들처럼 주인공의 동경을 이야기합니다. 주인공은 외부 세계를 동경하고, 끝내 그 세계로 진출합니다. 의 아리엘이 지상으로 나가거나 의 벨이 작은 마을을 벗어나거나 의 자스민이 왕궁에서 도망친 것처럼요. 모아나 역시 섬을 벗어났고 바다를 항해했고 부족을 구할 수 있었죠. 하지만 모아나의 행보는 아리엘이나 벨, 자스민과 많이 다릅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동기로 외부 세계를 그리워했습니다. 하지만 모아나는 (개인적인 동기와 함께) 사회적인 동기로 움직였습니다. 개인의 모험심만 아니라 부족의 정체성과 섬의 환경 오염을 해결하려고 했죠.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모아나의 장애는 그저 개인적인 장애가 아니라 부족의 위기와도 맞닿았습니다. 사실 모투누이 부족은 환경 오염(검은 물질과 바다 괴수..
소설 은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의 '빨갱이 SF'(…)입니다. 사회주의 SF 소설은 많지만, 보그다노프는 러시아 혁명에 참가한 볼셰비키 당원이죠. 블라드미르 레닌과도 가까운 사이였고요. 그러니까 은 정말 빨갱이 SF 소설인 셈입니다. 그만큼 고전적인 사상을 보여주는데, 이 소설의 공산주의 화성인들은 개발과 발전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역사는 꾸준히 진보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라도 개발과 발전과 확장을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소설 속의 화성인들은 유토피아를 이룩했으나 커다란 난관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지구인 주인공은 화성인들에게 잠시 물러나라고 조언합니다. 계속 앞으로 나가면 벽에 부딪히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라고 말합니다. 화성인들은 이미 충분한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잠시 쉬거나 뒤로 물러나도 하등..
소설 은 애스시 사람들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소설 속에서 지구 인류는 자원을 무분별하게 소모한 나머지 더 이상 충분히 나무를 벨 수 없었습니다. 인류는 목재를 얻기 위해 다른 행성을 침공했고, 그 행성은 바로 애스시였죠. 하지만 이 행성에는 원주민들이 살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인류는 그들의 보금자리를 처들어가고 숲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원주민들마저 노예로 삼습니다. 본래 애스시 사람들은 폭력을 모르고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는 그들을 쉽게 통제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런 노예 통제는 영원히 이어지지 못합니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애스시 사람들은 인류에게 항거하기 시작했고, 끝내 독립 혁명으로 발전합니다. 사실 이것 자체는 뻔하고 뻔한 줄거리입니다. 강대국의 침략, 약소국의 저항, 독립 혁명은 딱히 특별..
소설 는 어니스트 칼렌바흐의 책입니다. 일종의 유토피아 소설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생존자 정당'이라는 집단입니다. 이 정당은 생태적이고 지속 가능하고 다양성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좋아하고, 자연 친화적인 사업을 꾸리고, 재생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원주민들과 유대하고, 성별을 가리지 않고, 동물 권리를 챙깁니다. 아울러 거대 자본주의를 타파하려고 애쓰죠. 이들이 만든 강령을 살펴보면, 저런 사상들을 엿볼 수 있어요. 물론 이 생존자 정당도 모순이 없지 않습니다. 방어적인 폭력마저 너무 부정한다거나 기술 진보를 거부한다거나 등등…. 하지만 이런 정당이 존재한다면, 힘 내라고 응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아니, 현실에도 엄연히 이런 정당이 존재합니다. 바로 녹색당이 현실의 생존자..
유전 공학은 종종 SF 같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작금의 여러 과학 프로젝트 중에서 유전자 조작이나 생명 설계만큼 논란을 일으키는 사항도 드물 듯합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유전 공학으로 멸종된 동물을 되살리면, 생물 다양성을 늘리고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다고 꿈꾸는가 봅니다. 심지어 매머드를 복원하겠다고 나서는 과학자도 있군요.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런 의견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일단 매머드 복원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생명 설계는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게다가 멸종된 동물을 복원한다고 해도 그게 생태계 보존에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멸종 동물 복원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그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 현재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솔직히 관련 지식이 없..
[이런 드루이드가 보여주는 모습은 우드 엘프가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크게 거리가 있습니다.] 검마 판타지에는 다양한 종족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종족들은 전형적인 특성을 보이죠. 가령, 사람들은 드워프를 보고 든든한 방패 전사와 노련한 기술자를 떠올립니다. 드워프들은 판금 갑옷과 철벽 방패를 두르고, 적의 공격을 단단하게 막아냅니다. 아니면 깊고 깊은 광산 속에서 다양한 금속들을 채굴하고 증기 기관들을 작동시킵니다. 드워프는 검마 판타지에 증기 기관을 도입할 수 있는 유용한 종족이죠. 호비트는 유쾌하고 발랄하고 호기심이 많습니다. 호비트를 보고 단단한 판금 전사와 능숙한 공학자를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호비트는 뛰어난 도적이나 쾌활한 음유 시인이 될 수 있고, 행복한 정원사나 농부가 될..
소설 의 주인공은 인간과 돌고래입니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그냥 돌고래가 아니라 유전자 조작을 거친 신종 돌고래입니다. 인간처럼 똑똑하기 때문에 우주선을 조종하거나 다양한 학문을 연구할 수 있죠. 하지만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이 동물적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신종 돌고래들은 고래 특유의 성격을 버리지 못합니다. 소설은 이런 돌고래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핍니다. 돌고래마다 내면의 본능에 각자 다르게 이끌리는데, 어떤 돌고래들은 굉장히 폭력적으로 행동합니다. 누군가는 인간과 협력하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인간을 뛰어넘고 싶어하죠. 저는 이 소설을 보면서 신종 돌고래들이 천연적인 돌고래들을 어떻게 여길지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천연 돌고래를 그냥 우둔한 친척 정도로 여길지 모릅니다. 우리 인간은 고릴라..
소설 을 보면, 주인공이 웬 수달을 보는 순간 고향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은 무정부주의자인데, 자본주의 사회를 탐구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상태였죠. 하필 이 사람이 수달을 보고 고향을 떠올린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주인공은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벽이 있다'고 외치고, 그 누구와도 제대로 속내를 털어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보다 동물에게 마음을 열었겠죠. 한편으로 주인공은 동물을 볼 때마다 연인을 떠올리는데, 그 연인은 생태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자연 환경이나 동물을 볼 때마다 생태학자 연인을 기억하곤 하죠. 주인공의 연인이 하필 생태학자인 이유는 아마 작가 어슐라 르 귄이 무정부주의와 함께 생태주의를 언급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