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빼앗긴 자들>의 수달 한 마리 본문
소설 <빼앗긴 자들>을 보면, 주인공이 웬 수달을 보는 순간 고향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은 무정부주의자인데, 자본주의 사회를 탐구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상태였죠. 하필 이 사람이 수달을 보고 고향을 떠올린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주인공은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벽이 있다'고 외치고, 그 누구와도 제대로 속내를 털어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보다 동물에게 마음을 열었겠죠. 한편으로 주인공은 동물을 볼 때마다 연인을 떠올리는데, 그 연인은 생태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자연 환경이나 동물을 볼 때마다 생태학자 연인을 기억하곤 하죠. 주인공의 연인이 하필 생태학자인 이유는 아마 작가 어슐라 르 귄이 무정부주의와 함께 생태주의를 언급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생태주의를 전면에 강조하는 책은 아니지만, 생태학자 설정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슐라 르 귄은 생태주의로 유명한 작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 같은 책은 얼마든지 생태주의 담론에 들어갈 수 있겠죠.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린 사람들은 나무를 더 얻기 위해 다른 행성을 침공하고, 그 행성의 원주민들까지 노예로 부립니다. <세상을…숲>은 베트남 침공의 은유로 볼 수 있지만, 한편 자원 고갈이라는 생태적 위기로 볼 수 있습니다. 르 귄이 생태적 위기를 완전히 외면하는 작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더군다나 <빼앗긴 자들>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의 공동체 위성은 아주 황량한 곳입니다. 생태계가 그리 풍부하다고 할 수 없고, 그래서 무정부주의자들은 기근을 겪거나 이런저런 고생을 거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연 생태학자는 자연계의 순환을 강조하고요. 모든 요소들은 모두 사슬처럼 이어본다면, <빼앗긴 자들> 역시 어느 정도 생태학이나 생태주의를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태학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김에 그런 면모를 좀 더 부각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