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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악당 늑대와 위대한 독수리 본문

생태/동물들을 향하는 관점

악당 늑대와 위대한 독수리

OneTiger 2017. 6. 26. 20:00

[거대 수리는 자유민 세력의 최종 병기입니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에는 선악이 없죠.]



<호빗>, <반지 전쟁>, <실마릴리온> 등의 소설을 보면, 늑대는 굉장히 사악한 동물로 등장합니다. <빨간 두건>이나 <아기 돼지 3형제>의 동화들에서 늑대는 악당 역할인데, 저런 검마 판타지 소설에서도 역시 늑대는 악당 역할을 맡습니다. <호빗>에서 고블린의 늑대 기수들은 소린의 원정대를 습격했고 다섯 군대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반지 원정대>에서 늑대들은 반지 원정대를 포위했고 공격했죠. <실마릴리온>에는 늑대인간이 나오고, 악의 군주는 사악하고 거대한 늑대를 사육합니다. 이 놈은 실마릴 보석을 삼키는가 하면, 발라의 사냥개와 혈투를 벌이거나 영웅을 물어죽입니다.


사실 이런 검마 판타지 소설만이 아니라 다른 판타지 소설, 영화, 게임 등에서 늑대는 항상 악당으로 출현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판타지 소설이 늑대를 천하의 몹쓸 짐승으로 취급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드래곤과 조지>에서 늑대는 말하는 지적인 동물이고 주인공을 도와 세계의 평화(?)를 지킵니다. 이렇게 착한 늑대들도 있으나, 대부분 판타지 속의 늑대는 악당 혐의가 짙습니다.



반면, 독수리는 선하고 위대한 동물로 등장합니다. 존 로널드 톨킨의 판타지에서 독수리는 영광스러운 동물이고 발라의 사자입니다. 영웅들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독수리들은 항상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독수리들은 간달프와 소린 일행을 구해줬고, 다섯 군대 전투를 마무리했고, 사루만에게서 간달프를 구했고, 다시 반지 전쟁을 마무리했고, 고대에는 날아다니는 화룡들까지 물리쳤습니다. 독수리들과 화룡들의 공중전은 정말 장대했을 겁니다. 고대 독수리와 화룡은 아주 거대했다고 하죠.


이처럼 작가는 독수리와 늑대를 전혀 다르게 대접합니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에서 독수리와 늑대는 악당도 아니고 구원자도 아닙니다. 그냥 둘 다 육식동물이고, 자기 나름대로 역할이 있습니다. 물론 늑대들은 독수리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인간에게 끼쳤습니다. <늑대 토템>이나 <늑대왕 로보> 같은 소설들은 늑대가 얼마나 영악하고 위험한지 알려줍니다. 물론 이게 늑대의 진면목은 아닙니다. <울지 않는 늑대>처럼 인간들과 충돌하지 않는 늑대를 그리는 다큐멘터리도 있죠.



하지만 어쨌든 문명 사회는 늑대를 배척했고, 덕분에 검마 판타지들은 늑대를 악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늑대들은 온갖 소설이나 비디오 게임 속에서 신나게 두들겨 맞습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고상한 존재이고, 엘프처럼 우아하고 선한 종족과 어울립니다. 판타지 게임들은 <반지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독수리를 선한 진영의 최종 결전 병기로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워해머: 토탈 워>를 보면, 거대한 독수리들은 (삼림 드래곤과 함께) 우드 엘프들의 최종 병기입니다.


만약 독수리가 늑대들만큼 목축 사회나 농경 사회에 해악을 끼쳤다면, 검마 판타지는 독수리를 절대 고상한 영웅으로 대접하지 않았겠죠. 그러니까 늑대 악당이나 위대한 독수리는 상당히 인간 중심적인 설정들입니다. 검마 판타지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등장하지만, 결국 저런 악당 늑대나 위대한 독수리는 인간/서구/문명 중심적인 발상에 불과합니다. 저는 현대의 판타지 소설들이 늑대를 그만 놔줬으면 싶지만, 그건 쉽지 않을 겁니다. 일단 판타지 창작물들은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삼기 때문에 늑대들의 공격을 계속 묘사할 겁니다. 당연히 늑대들은 못되먹은 짐승들로 등장하겠죠. 그런 못되먹은 이미지는 악마로 이어질 수 있고요.



뭐, 오늘날의 현실을 돌아보면, 늑대는 악마도 아니고 그냥 피해를 입는 야생 동물일 뿐입니다. 생물 다양성 위기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할 동물에 불과합니다. (독수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늑대는 호랑이처럼 희귀 동물은 아니지만, 늑대들도 많은 하위 부류로 나뉘고, 일부 늑대들은 심각한 멸종 위기에 몰렸죠. 아마 늑대들에게 지성이 있다면, 늑대들은 자본주의 산업 체계가 더 지독한 악마라고 생각할 겁니다.


판타지는 판타지이고 현실은 현실이지만, 가끔 저는 검마 판타지 속의 늑대들을 볼 때마다 현실과 판타지는 참 다르게 흘러간다 싶습니다. 사이언스 픽션들도 자주 이런 편견 속에 빠지곤 하지만, 검마 판타지는 신화나 과거에 얽매이기 때문에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한 것 같습니다. 음, 판타지 속에서 뭔가를 때려잡고 싶다면, 늑대보다 언데드들이 훨씬 나을 겁니다. 그야말로 언데드는 상상 속의 존재일 뿐이니까요. (설마 판타지 모험가들이 흡혈귀를 때려잡는다고 해도 루마니아 사람들이 불쾌하게 느끼거나 그러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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