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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이런 데이노니쿠스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중세 판타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검마 판타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저는 가끔 그런 경우를 봤습니다. 가령, 마이클 크라이튼은 을 쓸 때, 벨로시랩터를 주연으로 등장시켰습니다. 이 소설에서 벨로시랩터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만큼 인상적인 활약을 펼칩니다. 아니, 사실 티-렉스보다 벨로시랩터가 더욱 무섭게 나오는 듯합니다. 은 영화로도 나왔고, 이 영화는 선풍적인 공룡 열기를 일으켰습니다. 덕분에 벨로시랩터는 티-렉스와 함께 육식공룡 세계의 인기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알로사우루스처럼 전통적인 육식공룡 스타는 벨로시랩터에게 확실히 밀려난 듯합니다. 아마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육식공룡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사람들은 알로사우루스보다 벨..
[만약 이게 생체 잠수함이라면, 이건 생태계 변화, 생물 다양성, 생체 개조와 쉽게 이어질 수 있겠죠.] SF 소설은 흔히 '발상의 문학'이라고 불립니다. 파격적인 발상이 SF 소설의 밑거름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유명한 SF 소설들은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발판으로 삼습니다. 뻔하고 뻔한 발상으로도 재미있는 SF 소설을 쓸 수 있으나, 위대한 사이언스 픽션은 혁신적인 설정을 대동하곤 합니다. 심지어 문학적인 완성도가 미흡해도 설정이 파격적이라면 그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의 본질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앤디 위어의 같은 소설은 뭐 엄청난 문학성 때문에 인기를 끌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엄중하고 기발한 과학 실험 덕분에 하드 SF 소설의 대..
유토피아 소설과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은 서로 정반대입니다. 하나는 풍요롭고 평등한 세상을 노래하고, 다른 하나는 비참하고 폭력적인 지옥을 보여줍니다. 흔히 디스토피아가 유토피아의 반대라고 생각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야말로 유토피아의 극단일지 모릅니다. 디스토피아에서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끝나니까요. 물론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해서 무조건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문명의 끝을 이야기할 뿐이고, 그 자체는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작품에 따라 긍정적인 멸망도 많습니다. 이나 은 분명히 대규모 멸망을 이야기하지만, 그리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건하고 신비롭죠. 반면, 디스토피아는 예외 없이 부정적입니다. 애초에 디스..
을 보면, 온갖 차원의 별별 희한한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작가는 소설 속의 도시를 수많은 존재들이 복잡하게 어울리는 곳으로 설정했습니다. 그 중에 외계 거미(?)도 있는데, 이 거미는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나열합니다. 이 거미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밑도 끝도 없이 웅얼거립니다. 그래서 외계 거미의 대사는 다른 인물들의 대사와 다릅니다. 아니, 그냥 설정만 다르지 않고, 아예 문장 부호와 글자체까지 다릅니다. 다른 인물들은 이야기를 할 때 큰 따옴표("")를 사용하지만, 외계 거미는 말줄임표(……)를 사용합니다. 다른 인물들은 명조체를 사용하지만, 외계 거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글꼴인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평범한 명조체를 사용하지 않아요. 그리고 을 보면, 유전자 개..
[게임 처럼, 스팀펑크는 비교적 시대 고증에서 자유롭습니다.] SF 장르는 시대상에 민감한 장르입니다. 모든 문학은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다른 장르 소설들도 시대상에 민감하겠지만, SF 장르만큼 민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SF 소설은 논리적으로 가능성을 상상해야 하고, 덕분에 자주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SF 소설의 상상력은 틀릴 경우가 많고, 그래서 곧잘 퇴물이 되곤 합니다. SF 소설가들은 예언자가 아니고, 그 당시의 과학적 식견을 이용해 미래를 가늠할 뿐입니다. 아마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고 불리는 작가들도 오늘날처럼 스마트폰이 엄청나게 퍼졌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들은 분명히 첨단 통신 장비가 등장할 거라고 예견했으나, 그 구체적인 모습까지 그릴 수 없었죠. SF 소설이 그리..
는 청소년 교양 잡지입니다. 이런저런 사회 문제들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잡지죠. 이번 4월호의 기사 중 하나는 영화 더군요. 드니 빌뇌브 감독이 테드 창의 소설을 영화화했죠. 해당 기사는 영화를 설명하면서 사이언스 픽션을 함께 이야기하는데…. 사이언스 픽션의 인기 요인을 '보편성'으로 꼽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이언스 픽션이 아무리 외계인과 우주와 낯선 시대를 묘사한다고 해도 그 안에 인간들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인기를 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볼 여지가 있겠으나, 저는 왜 사이언스 픽션에서 결국 인간의 이야기를 강조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웹진 알트 SF가 지적했듯 사이언스 픽션은 유일하게 인간 이외의 존재를 이야기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에는 수많은 외계인, 인공지능, 돌연변이 등이 등장합..
여느 장르처럼 SF 장르는 소설에서 출발했습니다. 그야말로 고전적인 토마스 모어, 초기 작가들인 메리 셸리와 쥘 베른과 허버트 웰즈, 휴고 건즈백과 에드거 앨런 포와 하워드 러브크래프트 등등 SF 계보는 소설 쪽으로 계속 이어졌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SF 분야에서 제일 유명한 상은 휴고나 네뷸러, 로커스일 겁니다. 사람들은 '휴고 수상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소설을 떠올리곤 합니다. 영화나 게임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그런 사람들보다 소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다른 소설들처럼 SF 소설에는 큰 장벽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언어의 문제입니다. 소설은 텍스트 매체이고, 따라서 글을 모르면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영화나 게임은 다릅니다. 영화는 영상과 음향이 있기 때문에 관..
예전에 어떤 팟캐스트를 듣던 중이었습니다. 팟캐스트 진행자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몇몇 SF 창작물을 늘어놓는데, 하필 죄다 블록버스터 영화였습니다. 그 중에 소설은 하나도 없었어요. 어차피 그 팟캐스트는 사이언스 픽션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진행자가 아주 짧게 언급했을 뿐이지만, 왜 하필 블록버스터 영화들만 늘어놨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진행자는 '블록버스터 영화 =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는 아니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만으로 SF 장르를 평가하는 경우가 왕왕 있죠. 예전에 그런 기사를 봤습니다. 나 가 크게 흥행하자 어떤 기자는 우리나라 관객들이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
"액션이나 SF 장르가 아닌 고작 드라마 장르의 162분을 졸지 않고 버티기란 얼마나 버거운가." 잡지 에서 어떤 영화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드라마 장르의 영화가 세 시간 가량 상영한다면, 그걸 참고 보기 지루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저 말은 뭔가 좀 이상합니다. 드라마 장르를 액션이나 SF 장르와 대조했기 때문입니다. 즉, 액션이나 SF 장르는 신나게 볼 수 있다는 뜻이죠. 사실 액션 영화의 목적은 그겁니다. 흥분, 쾌감, 스릴 등이죠. 하지만 왜 SF 장르가 액션 장르와 함께 묶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SF 장르가 액션 장르와 똑같나요? SF 장르가 액션 장르처럼 흥분과 쾌감과 스릴을 추구하나요? 물론 SF 장르는 화려하고 현란한 블록버스터 영화로 자주 나옵니다. 같은 초인 영웅 영화나..
소설 에는 "아아트르의 젖가슴 같으니!"라는 문구가 자주 나옵니다. 이건 욕설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 씨X, X 같네."라고 말하는 욕설과 비슷하죠. 외설적인 부위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현실의 욕과 다를 바 없어요. 뭐, 젖가슴이 무조건 외설적인 부위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젖가슴은 (이른바 문명 사회에서) 중요한 성적 상징이고, 그래서 저 소설의 인간들은 젖가슴 운운하며 욕할 겁니다. 어쩌면 아아트르의 사타구니를 운운하는 욕설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젖가슴이 욕설이 될 수 있다면, 아랫도리도 얼마든지 욕설이 될 수 있겠죠. 한 가지 희한한 점은 저 소설에서 남녀 가리지 않고 누구나 젖가슴 운운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소설은 성별을 상당히 모호하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주인공은 물론이고 다른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