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이런, 아아트르의 젖가슴 같으니! 본문
소설 <사소한 정의>에는 "아아트르의 젖가슴 같으니!"라는 문구가 자주 나옵니다. 이건 욕설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 씨X, X 같네."라고 말하는 욕설과 비슷하죠. 외설적인 부위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현실의 욕과 다를 바 없어요. 뭐, 젖가슴이 무조건 외설적인 부위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젖가슴은 (이른바 문명 사회에서) 중요한 성적 상징이고, 그래서 저 소설의 인간들은 젖가슴 운운하며 욕할 겁니다. 어쩌면 아아트르의 사타구니를 운운하는 욕설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젖가슴이 욕설이 될 수 있다면, 아랫도리도 얼마든지 욕설이 될 수 있겠죠. 한 가지 희한한 점은 저 소설에서 남녀 가리지 않고 누구나 젖가슴 운운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소설은 성별을 상당히 모호하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주인공은 물론이고 다른 중요 인물들의 성별도 알 수 없어요. 게다가 인칭 대명사는 모두 '그녀'입니다. 여자와 남자, 그 밖에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그녀라고 통칭해요. 아마 현실에서 남자가 인간의 상징인 것을 차별화하려는 의도겠죠.
<사소한 정의> 이외에도 인칭 대명사를 희한하게 이용한 SF 소설들이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어둠의 왼손>도 그런 종류입니다. 문제는 이 소설의 인칭 대명사가 남자라는 것…. 어슐라 르 귄은 (소설의 외계인들이 양성임에도) 인칭 대명사를 남자로 사용했기 때문에 욕을 먹었다고 합니다. 르 귄 본인도 그 점을 좀 후회하는 것 같더군요. 어쩌면 르 귄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그랬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대명사를 남자로 여깁니다. '인간은 남자'입니다. 여자는 부수적인 존재죠. 인간을 나타내는 여러 상징이나 그림을 찾아보면, 남자일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제가 그런 통계 자료를 잘 안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쩌면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할 수 있죠. 사실 여자를 인간의 대명사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제가 그걸 알지 못할 수 있죠. 그래서 '인간의 진화(휴먼 에볼루션)'라는 항목으로 구글링 이미지를 검색해봤습니다. 남자들 그림만 줄줄이 뜨는군요. 뭐…, 이것도 개인적인 경험이겠죠.
저는 주류적이고 지배적인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 SF 장르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남자를 인간의 상징으로 여기기 때문에 여자를 인칭 대명사로 사용한다면 지배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겠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사소한 정의>는 꽤나 신통하고 사이언스 픽션다운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