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감상, 분류, 규정/소설을 읽다 (79)
SF 생태주의
만약 21세기 현대인이 몇 만 년 전의 인류를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요. 아마 격세지감을 느낄 겁니다. 그 시절, 인류는 육식동물들의 위협에서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질병이 퍼져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죠. 식량이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었고, 그들은 어떻게 지진이나 해일이나 폭설을 해석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과거 인류는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을 몰랐고,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현대 문명은 전혀 다릅니다. 인류는 이제 육식동물을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육식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몰렸습니다. 질병은 여전히 인류를 괴롭히지만, 그래도 인류는 천연두 같은 질병을 지구에서 추방했습니다. 인류는 자연 재해를 분석할 수 있고,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은 생산량이 넘쳐나기 때..
소설 는 폐선을 해체하는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입니다. 폐선 해체는 상당히 위험한 작업입니다. 낡은 배가 해안에서 좌초하면, 빈민들이 거기에서 각종 부품이나 금속을 뜯고, 그걸 시장에 내다팔죠. 당연히 별별 사고가 벌어집니다. 배 안으로 들어간 '아동' 노동자들은 유독한 가스를 들이마시거나, 좁은 틈에 끼이거나, 물에 빠지거나, 부품에 머리를 두들겨 맞는 등등 각종 사고를 당합니다. 사실 폐선 해체 작업은 정상적인 노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저 빈민들이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행위에 불과하죠. 그래서 대부분 폐선 해체 작업은 이른바 제3세계에서 벌어지거나 아주 가난한 이들의 작업이 되기도 합니다. 의 주인공 아이도 그렇게 아주 가난한 계급이죠. 그런데 이 소설은 제3세계의 비극을 고발하..
과 은 존 발리의 단편 소설 모음집입니다. 이런 단편 모음집을 보면, 그 작가의 일관된 특성이나 공통점이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작가가 좋아하는 소재, 자주 사용하는 설정 등이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작가들은 수많은 소재에 골고루 관심을 보이지만, 어떤 작가들은 특정한 소재를 계속 변주합니다. 존 발리는 후자 같습니다. 적어도 과 에 실린 단편 소설들은 비슷한 소재들을 다양하게 변주합니다. 그런 소재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바이오펑크가 눈에 뜨이더군요. 정확히 말하면, 신체 개조라고 해야 하겠죠. 단편 소설들 속에서 신체 개조는 여러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유전자 조작 수준이 있는가 하면, 그냥 겉모습을 변장하는 수준이 있습니다. 얼굴에 플라스틱 가면을 쓰고, 이 가면이 녹고, 얼굴에 들러붙고,..
[보드 게임 의 표지 그림은 비경 탐험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 것 같습니다.] 소설 은 우주적 공포 소설입니다. 인류 이전에 각종 외계인들이 지구에 정착했고, 인류는 그들의 피조물에 불과하고, 그들은 언젠가 인류를 날려버릴지 모릅니다. 이 무한하고 영원불멸한 우주에서 인류는 그저 한 순간의 먼지에 지나지 않아요. 이런 감수성은 하워드 러브크래프트의 여러 소설들을 관통하고, 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은 비경 탐험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남극 탐사대 소속이고, 탐사대는 극지방에서 외계인의 유골을 발굴하거나 고산 지대에서 외계 유적지를 찾습니다. 은 남극 탐사대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주인공은 외계인의 광대한 도시와 유적지를 방황합니다. 마치 처럼. 그래서 쇼거스는 "테켈리 리!"라고 외치겠죠. 사실 ..
존 발리의 은 독특한 유토피아 소설입니다. 유토피아 구성원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죠. 소설 속에서 전세계는 경제적인 디스토피아에 빠집니다. 실업률이 치솟고, 불황이 사람들을 덮치고, 모두 빈곤과 비탄과 절망에 빠집니다. 공동체 운동은 이럴 때 힘을 얻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 다양한 공동체들이 번성합니다. 각 공동체들은 서로 다른 목표를 지향하고, 자신만의 이상을 추구합니다. 누군가는 신에게 매달리고, 누군가는 난교를 벌이고, 누군가는 산업 문명을 거부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그런 공동체들을 떠도는 나그네입니다. 실업과 불황은 주인공을 사회에서 쫓아냈고 주인공은 마음을 붙일 곳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돕니다. 주인공은 어떤 공동체들이 번성하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지만, 독자는 그야말로 ..
은 11번째 불새 걸작선이고, 존 발리의 소설 모음집입니다. , , , 의 4개 소설이 실렸습니다. 불새 출판사가 내놓은 존 발리의 또 다른 소설들, 이나 , 처럼 이 모음집에도 생체 개조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 , 은 모두 생체 개조 이야기입니다. 의 주인공은 생체 개조를 잘못 했기 때문에 곤경에 처하죠. 인류는 외계 행성들에 개척지를 세웠고, 소설의 배경은 금성입니다. 모종의 사정 때문에 주인공은 금성에 들립니다. 문제는 주인공이 금성에 들리기 전에 인공 안구를 구입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건 사기이자 바가지였고, 주인공은 낯선 개척지에서 앞이 안 보이는 곤경에 처합니다. 게다가 이 개척지는 워낙 초라하고 작기 때문에 변변한 병원이 없습니다. 심지어 의사마저 없습니다. 유일무이한 의술 전문가는 어..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 은 시간 여행물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인공은 타임 슬립 능력이 있고 20세기에서 19세기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능력이 주인공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도때도 없이 발동이 된다는 점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하필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는 장소가 미국 남부 농장이라는 점이고요. 아, 더욱 큰 문제는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점이죠. 난데없이 과거로 추락한 흑인 주인공은 19세기 미국 남부 농장에서 지옥 같은 현실과 맞닥뜨립니다. 자신이 미래에서 온 자유인이라고 주장해봤자 그 말을 믿어줄 사람은 없습니다. 좋든 싫든 주인공은 흑인 노예로서, 노예들의 가혹한 삶을 일상처럼 바라보면서 농장에서 죽도록 일해야 합니다. 채찍질이나 고문이나 폭행, 신체 절단, 강간 등은 예사이고, ..
※ 이 글은 의 세 번째 소감문입니다. ※ 첫 번째 소감문: http://sfecology.tistory.com/68 ※ 두 번째 소감문: http://sfecology.tistory.com/72 소설 은 과 비슷합니다. 연작 단편 소설이고, 독자가 아서 클라크에게 기대하는 과학적 고증과 장엄한 시각이 담겼습니다. 주인공은 우주 정거장에 근무하는 과학자이고, 우주 정거장의 여러 일상을 들려줍니다. 사실 그런 일상들은 말 그대로 일상에 불과하지만, 소설 배경은 다름아닌 우주 정거장입니다. 일상의 사소한 사고도 흥미로운 과학적 화제가 될 수 있죠. 여러 연작 중에서 '깃털 달린 친구'는 제목처럼 애완동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애완동물은 카나리아죠. 폐쇄적인 우주 정거장과 카나리아. 뭔가 딱 떠오르지 않습..
※ 이 글은 의 두 번째 소감문입니다. ※ 첫 번째 소감문: http://sfecology.tistory.com/68 ※ 세 번째 소감문: http://sfecology.tistory.com/80 소설 은 여러 모로 아서 클라크다운 작품입니다. 은 연작 단편인데, 영국과 소련과 미국 우주 승무원들이 지구를 출발하고 달에 착륙하고 여러 실험을 거치고 마침내 귀환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유머와 재치, 반전이 돋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진중하고 경외적인 분위기를 내뿜습니다. 인류가 외계 위성으로 진출했다는 벅찬 기쁨, 우주를 바라보는 경건한 마음, 낯선 세계의 놀라움과 신비스러움이 잘 드러납니다. 지구와 달이 물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심리적으로 얼마나 먼지 강조하고, 그런 물리적·문화적·심리적 차이가 소설의 주된..
※ 이 글은 의 첫 번째 소감문입니다. ※ 두 번째 소감문: http://sfecology.tistory.com/72 ※ 세 번째 소감문: http://sfecology.tistory.com/80 , , …. 이런 소설들만 보면, 아서 클라크가 굉장히 진지한 작가처럼 보입니다. 농담이나 개그나 잡담을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아요. 항상 경외적이고 심각하고 장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으니까요. 하지만 진지한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해서 웃기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스타니스와프 렘도 를 썼고, 한편으로 를 썼습니다. 두 소설의 분위기나 주제는 사뭇 다르죠. 아서 클라크도 얼마든지 웃기거나 배꼽 잡는 이야기를 쓸 수 있어요. 썰렁한 영국 유머가 아니라 진짜 웃기는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SF 감성을 전혀 놓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