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감상, 분류, 규정/소설을 읽다 (79)
SF 생태주의
옥타비아 버틀러의 은 갑갑한 소설입니다. 네, 아주 갑갑하죠. 배경은 19세기 미국 남부 농장이고, 당연히 노예들의 참혹하고 끔찍한 삶이 과감없이 드러납니다. 아, 물론 이 세상에 노예가 나오는 창작물은 많고 많습니다. 은 그런 수많은 소설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아마 이것보다 훨씬 슬프고 처절한 소설이나 드라마가 넘쳐날 겁니다. 문제는 그런 작품들과 달리 은 시간 여행물,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타임 슬립입니다. 주인공은 사실 19세기 사람이 아니라 20세기 사람입니다. 1960년대의 흑인 여자입니다. 아직 인종 차별이 극심하게 남아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흑인이 (공식적으로) 노예처럼 취급을 받지 않았죠. 적어도 (공식적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피부색은 차별 대상이 아닙니다. 당연히 주인공은 이런 개..
은 제임스 팁트리의 소설 모음집의 제목이자 소설 제목입니다. 모두 11개 작품이 실렸고, 대부분 SF 소설에 가깝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크게 1장 '사랑은 운명'과 2장 '운명은 죽음'으로 나뉩니다. 아마 1장에는 존재들이 서로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고, 2장에는 그 존재들이 사랑이나 집착 때문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기 때문인가 봅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크게 흥미가 땡기는 작품은 역시 대표 작품인 이었습니다. 도 좋았고, 은 충격적이로군요. 아니, 오히려 이 대표작 보다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는 비교적 짧은 분량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 거대한 서사시를 본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는 괴수물로서도 독특했고 한 인간이 바라보는 종족의 영속성도 그럴 듯했습..
소설 에는 므벤 마스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우주 연구소 소장을 맡을 만큼 중요한 인물이고, 이름처럼 아프리카계 흑인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므벤 마스를 묘사할 때마다 아프리카인, 흑인, 건장하고 야성적인 체격 등을 자꾸 강조합니다. 다른 남자 캐릭터들은 그렇지 않지만, 유독 므벤 마스만 그 육체적인 야성을 강조해요. 이와 비슷한 인물이 차라입니다. 므벤 마스가 남자들 중에서 야성적으로 돋보인다면, 차라는 여자들 중에서 이질적인 미모를 자랑합니다. 짙은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와 풍만한 가슴 등등. 다른 여자들, 가령, 니자는 빨강 머리의 발랄한 아가씨로 나오고 베다는 자애롭고 우아한 여자로 나올 뿐이지만, 차라는 등장할 때마다 그 이질적인 용모에서 광휘를 내뿜습니다. 베다는 차라를 보고 인도계가 분명하다고..
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SF 개론서입니다. 고장원님이 쓰시는 'SF 가이드 총서' 중에 하나죠.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또 다른 명칭은 포스트 홀로코스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종말 문학, 재난 소설이라고 불립니다. 메리 셸리의 , 허버트 웰즈의 , 리처드 매드슨의 , 월터 밀러의 등등이 이 장르에 속합니다. 운석 충돌, 핵전쟁, 전염병, 기후 변화 등으로 인류 문명이 멸망하고, 사람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여주죠. 하지만 똑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해도 다양한 종류가 있고, 각 창작물들이 걸어온 역사는 서로 다릅니다. 운석이 충돌하는 소설과 전염병이 번지는 소설은 주제, 분위기, 연출, 줄거리 측면에서 다를 수 밖에 없겠죠. 는 인류 문명이 멸망하는 다양한 이유를 살펴보고, 작가와 ..
은 이반 예프레모프가 쓴 유토피아 소설입니다. 소설 속의 인류는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이룩했고, 모두 잘 먹고 잘 삽니다. 한두 국가가 아니라 전세계가 모두 공산주의 공동체가 되었죠. 더 이상 인종, 국경, 성별, 직업, 빈부 차이는 사람들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습니다. 인류는 이런 장벽들을 훌쩍 뛰어넘고, 그야말로 인터내셔널하게 연합하고, 인류 그 자체의 번영을 위해 일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공동체를 벗어나기 원하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끼리 자신만의 공동체를 이루지만, 대부분 인류는 국제적인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유토피아라고 해서 불만이나 갈등이나 욕구가 없을 리 없죠. (사실 그런 불만이나 갈등이 없다면, 소설을 쓸 이유도 없을 테고요.) 그렇다면 그 욕구가 무엇인고 하니, 바로 우..
소설 은 애스시 사람들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소설 속에서 지구 인류는 자원을 무분별하게 소모한 나머지 더 이상 충분히 나무를 벨 수 없었습니다. 인류는 목재를 얻기 위해 다른 행성을 침공했고, 그 행성은 바로 애스시였죠. 하지만 이 행성에는 원주민들이 살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인류는 그들의 보금자리를 처들어가고 숲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원주민들마저 노예로 삼습니다. 본래 애스시 사람들은 폭력을 모르고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는 그들을 쉽게 통제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런 노예 통제는 영원히 이어지지 못합니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애스시 사람들은 인류에게 항거하기 시작했고, 끝내 독립 혁명으로 발전합니다. 사실 이것 자체는 뻔하고 뻔한 줄거리입니다. 강대국의 침략, 약소국의 저항, 독립 혁명은 딱히 특별..
은 단편 소설 모음집입니다. 제목처럼 성 평등에 관련된 작품들만 모였습니다. 모두 15개 소설이 있는데, 영어 판본에는 좀 더 많은 소설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아작 출판사는 그 중에서 좀 더 SF에 가까운 작품들만 골랐고, 이미 번역 출판된 소설을 뺐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구석이 많더군요. 저는 뭔가 SF 소설을 읽고 싶었거든요. 전형적인 SF 소설이요. 그런데 이 모음집의 소설들은 대부분 풍자 소설에 가깝습니다. SF 설정을 살짝 가미했지만, 대부분 풍자 성격이 짙습니다. 애초에 작가들이 성 평등을 부각하기 원했기 때문에 그 점에만 치중한 것 같습니다. 논리적으로 설정을 짜고 그 설정에 의거해 사건을 전개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풍자와 해학, 상징..
소설 는 디스토피아인 동시에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디스토피아와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뒤섞였다고 할까요. 결과적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가깝지만, 그 본질은 디스토피아와 많이 닮았죠. 일반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재난 이후를 주목합니다. 거대한 재난이 벌어지고, 인류 문명이 망하고,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고, 온갖 아귀다툼과 비극이 벌어지죠. 대부분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이런 모습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는 재난 이후만큼 재난 이전에도 주목합니다. 이 소설의 거대한 재난은 이미 한창 깽판을 치는 산업 자본주의 속에서 도사렸기 때문입니다. 산업주의는 수많은 병폐를 낳았고, 사람들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병폐에 저항했으나,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저항의 결과가 인류 문명의 ..
흔히 SF 소설은 가상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외계 행성은 가상 세계의 대표적인 상징이죠. 외계 행성 이외에 사이버 공간, 초거대 우주선, 지구 공동, 해저 도시, 극지의 유적, 미래 도시 등은 독자에게 현실에서 비롯했지만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현실과 인연이 있지만) 현실과 전혀 다른 법칙이 그 세계를 지배합니다. 그건 과학적 법칙일 수도 있고, 사회적 법칙일 수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좋은 SF 소설은 그 두 가지를 전부 말해야 하겠죠. 만약 우주 승무원들이 초거대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으로 떠난다고 가정하죠. 그렇다면 창작가는 어떻게 그 우주선이 생겼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생존 장치를 구비했는지 설명해야 할 겁니다. 또한 창작가는 어떻게 승무원들이 살아가는지, 어떤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