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감상, 분류, 규정/소설을 읽다 (79)
SF 생태주의
소설 은 파올로 바치갈루피가 쓴 디스토피아입니다. 아니,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할까요. 무지막지한 질병이 전세계를 휩쓸었고, 그래서 소설 속의 세계는 대재앙을 겪었습니다. 이 질병은 수많은 작물과 가축을 죽였고, 인류는 새로운 작물과 가축을 만들어야 했어요. 유전자 조작 기술 덕분에 인류는 질병에 맞설 수 있는 종자를 만들었으나, 상황은 그리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인류는 질병을 추방하지 못했고, 게다가 다국적 식량 기업들은 이게 노다지가 된다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국적 식량 기업들은 유전자 해커를 고용하고, 다른 작물이나 가축의 유전자를 해킹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종자에 저작권을 걸었죠. 따라서 사람들이 (병에 걸리지 않는)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다면, 식량 기업들이 조작한 작물과 ..
지리학자 데이빗 하비는 현대 산업 문명이 어떻게 도시를 재편하는지 이야기하곤 합니다. 데이빗 하비는 상당히 좌파적인 학자이고 그래서 도시라는 공간을 빈부 격차와 환경 오염이라는 시각으로 관찰하죠. 하비에 따르면, 도시는 부자와 빈민의 터전을 가르고, 다양한 생산물을 빨아들이고, 엄청난 폐기물을 쏟아놓는 공간입니다. (당연히 그 배후에는 자본주의 체계가 존재합니다.) 도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현대 문명의 빈곤 문제와 환경 문제를 절대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죠. 그래서 삼림 도시처럼 도시의 해악을 줄이려는 시도들이 많고요. 그렇다면 이런 빈부 격차나 환경 오염과 함께 미래의 도시는 어떻게 변할까요. 사실 수많은 SF 소설들이 미래 도시라는 공간적/문화적/사회적 요소에 주목합니다. 그걸 집중적으로 살피는 작품..
로버트 소여의 은 멋진 소설입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이 책은 오멜라스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행복한 책읽기가 이라는 개정판을 냈죠. 사실 의 번역자 후기가 '공룡과 춤을'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이 책은 공룡 SF 소설입니다. 어느 날 인류는 타임 머신을 개발하고, 두 명의 과학자가 머나먼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타임 머신에 탑승합니다. 한 명은 뼛속까지 공룡을 사랑하는 고생물학자이고, 다른 한 명은 지질학자입니다. 하지만 이 두 명의 관계는 그저 고대 탐사대의 동료 관계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애증스러운 관계로 얽혔죠. 당연히 그들이 고대에서 학술 탐사하는 동안 이 점은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과학자들이 더 이상 공룡의 생태나 고대 지질 구조에만 신경을 쓸 수 없다는 점입니..
외계 행성 개척은 SF 소설의 흔한 소재 중 하나입니다. 19세기부터 SF 소설은 머나먼 우주를 바라봤고, 어떻게 인류가 그 우주에서 새로운 삶을 꾸릴 수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아니, 19세기 이전부터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문명을 꿈구곤 했죠. 19세기 이후 과학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그런 고민들은 보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바뀌었고, SF 소설들은 외계 행성과 인류 개척자들을 묘사했습니다. 이런 창작물들을 살펴보면, 개척자들이 낯선 세상에서 안락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꾸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창작물들은 외계 개척자들을 통해 문명이라는 것이 어떻게 꽃을 피우고 여물어가고 쇠락하는지 보여줍니다. 처럼 SF 소설은 구태여 외계 행성으로 진출하지 않아도 이런 문명의 개화..
예전에 브라이언 싱어가 각본을 집필한다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싱어가 영화 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요즘에 관련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계속 추진 중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작이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기 때문에 영화화가 계속 추진 중인 것 같습니다. 는 상당히 유명한 소설이고, 그래서 각색물이나 리메이크 역시 상당히 많습니다. 아마 디즈니 실사 영화가 제일 널리 알려졌겠으나, 그 외에 다른 리메이크들도 많죠. 하지만 (디즈니 실사 영화는 물론이고) 이런 리메이크들이 정말 소설의 정수를 담았는지 의문입니다. 저는 의 리메이크물을 많이 보지 못했으나, 줄거리나 관련 소감을 읽어보면, 이런 리메이크들이 소설의 정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듯합니다. 저는 이 소설의 가장 큰..
"두 단어로 말하겠다. 쥐라기 상어." 소설 의 뒷표지에 박힌 홍보 문구입니다. 물론 의 주연은 메갈로돈이고, 메갈로돈은 쥐라기에 서식하지 않았습니다. 이 거대한 상어는 백악기 이후에 등장했죠. 아예 소설 첫머리는 백악기 후기이고, 메갈로돈이 바다에 빠진 티라노사우루스를 덮칩니다. '쥐라기 상어'라는 두 단어는 메갈로돈이 쥐라기에 서식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홍보 문구는 명백하게 을 가리킬 겁니다. 소설 는 영화 이 공전의 히트를 친 이후 출간되었습니다. 은 공룡을 내세운 영화이고, 사람들은 모두 고대의 거대한 야생 동물들에게 열광했어요. 그 이전에 공룡을 내세우는 영화가 없지 않았습니다. 레이 해리하우젠이 시각 효과를 맡은 작품들이 제일 유명할 테고, 도 있었고, 그 이전에 같은 영화가 있었습니다. ..
은 페미니즘 장르 소설 모음집입니다. 여러 중편과 단편 소설들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죠. 이 소설 모음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 중 하나는 '여자들만의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에는 남자가 없고 여자들만 존재합니다. 어쩌면 이걸 여자들만의 유토피아, 페미니즘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 있겠죠. 페미니즘은 성 평등 사상이지만, 성 평등을 이룩하고 싶다면 우선 약자(여자)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은 약자에게 초점을 맞춰야 하고, 그래서 여자들만의 공동체는 페미니즘 유토피아 설정이 될 수 있겠죠. 실제 페미니즘 전문가들이 이런 설정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전문가들은 여자들만의 공동체가 페미니즘 사상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말할지 몰라요. 하지만 페미니즘 운동은 '남자에 의존하지 않는 여자..
제프 밴더미어의 는 서던 리치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 에 이은 세 번째 소설이고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소설이죠. 에서 12차 탐사대는 X 구역이라는 원시적이고 기이한 야생을 떠돌아 다닙니다. 은 누가 탐사대를 조직했고 왜 탐사대를 그 기이한 야생 지역으로 보냈는지 설명합니다. 물론 아무리 이 열심히 설명한다고 해도 모든 의문이 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문은 더욱 높이 쌓입니다. 는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그 모든 것들을 망라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뭔가를 제시하는 대신 전작의 여러 인물들을 불러옵니다. 에서 주인공은 생물학자였습니다. 에서 주인공은 신임 국장이었습니다. 반면, 에서 특정한 주인공은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이전 소설들의 여러 인물들이 번갈아 등장하고,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
소설 은 서던 리치 시리즈의 두 번째 책입니다. 이야기는 전작에서 이어지고, 여전히 X 구역의 비밀을 다루죠. 전작 에서 12차 탐사대는 X 구역의 적막한 자연 환경을 떠돌았습니다. 이 소설의 장점은 기이하고 고요하고 인적이 없는 분위기와 거대하고 낯선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된 듯한 느낌일 겁니다. 그래서 주인공 생물학자는 바위투성이 해안가에서, 사람들이 없는 뒷골목에서, X 구역의 공허한 자연 속에서 뭔지 모를 친밀감을 느꼈을 겁니다. 복잡하고 산만하고 빽빽하고 시끄러운 현대 문명인에게 저런 해안가와 뒷골목과 자연은 꽤나 낯선 공간으로 다가오고, 은 그런 느낌을 시종일관 유지합니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지와 무지를 이어가는 여정 또한 매력적입니다. 이 소설은 명확한..
SF 소설들은 비일상적인 요소를 다루곤 합니다. 당연히 이런 현상들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 겁니다. 만약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거나 갑자기 돌연변이 괴물들이 인류를 습격하거나 식물들이 수정으로 변한다면, 거기에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겠죠. 수많은 SF 소설들은 (상상 과학이라는 이름답게) 그런 이유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애씁니다. 왜 죽은 사람들이 살아났는지, 왜 돌연변이 괴물들이 탄생했는지, 왜 식물들이 수정으로 변하는지…. 하지만 모든 SF 소설들이 그런 해명에 충실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소설들은 논리와 합리를 최대한 강조하지만, 어떤 소설들은 중요한 부분에서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 은근슬쩍 넘어갑니다. 이런 소설들은 설정을 자세히 밝히지 않고, 그저 전문 용어 몇 가지를 나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