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멸종> - 고생물학과 파격적인 상상력의 만남 본문
로버트 소여의 <멸종>은 멋진 소설입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이 책은 오멜라스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행복한 책읽기가 <공룡과 춤을>이라는 개정판을 냈죠. 사실 <멸종>의 번역자 후기가 '공룡과 춤을'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이 책은 공룡 SF 소설입니다. 어느 날 인류는 타임 머신을 개발하고, 두 명의 과학자가 머나먼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타임 머신에 탑승합니다. 한 명은 뼛속까지 공룡을 사랑하는 고생물학자이고, 다른 한 명은 지질학자입니다.
하지만 이 두 명의 관계는 그저 고대 탐사대의 동료 관계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애증스러운 관계로 얽혔죠. 당연히 그들이 고대에서 학술 탐사하는 동안 이 점은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과학자들이 더 이상 공룡의 생태나 고대 지질 구조에만 신경을 쓸 수 없다는 점입니다. 태고의 시간 여행은 두 과학자들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어떤 지점으로 끌고 가고, 하필 이들은 문명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 원시 시대에서 중차대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게다가 그걸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어요.
<멸종>의 이야기는 처음에 전형적인 시간 여행물이나 공룡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인류가 타임 머신을 발명하고, 과학자들이 고대를 여행하고, 각종 공룡들이 나타나고…. 당연히 독자들은 공룡들이 과학자들을 위협하거나 과학자들이 고대의 자연 환경에서 각종 위기를 겪는 사건 전개를 기대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로버트 소여는 이런 예상을 보기 좋게 깨부수고, 예상 외의 이야기를 펼칩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언급하는 행위 자체가 중대한 내용 누설일 겁니다.
따라서 줄거리를 일일이 말할 수 없고, <멸종>이 어떤 소설인지 설명하기 곤란합니다. 분명한 점은 이 소설이 그 모든 것들을 짜릿하고 흥미진진하게 끌고 간다는 점입니다. 아쉽게도 이 소설은 공룡 소설의 껍데기를 뒤집어썼을 뿐입니다. 주인공 과학자는 공룡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고생물학자이나, 주인공이 고생물학자라고 해서 이 소설이 자동적으로 공룡 소설이 되지 않습니다.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가 공룡 소설처럼 보이지만, 원시 문명이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멸종>은 최고의 공룡 소설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공룡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겁니다. <멸종>은 전형적인 공룡 소설에서 벗어났고, 덕분에 공룡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공룡에 관한 고증은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하게 변했고, 오늘날의 공룡은 절대 과거의 공룡과 똑같지 않습니다. 20세기 초반에 공룡은 무식하고 꿈뜨고 엉거주춤한 파충류 괴수였습니다. 과학 서적부터 흥행을 노리는 액션 영화까지, 공룡을 이렇게 묘사했죠. 원시인과 공룡이 함께 지내는 장면 역시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20세기 후반에 크게 달라집니다. 이제 과학자들은 공공연하게 공룡이 새의 조상이거나 새가 현대의 공룡이라고 말합니다. 공룡은 더 이상 엉거주춤하지 않습니다. 꼬리를 수평으로 펴고 당당하고 활기차게 걸어다닙니다. 일부 소형 공룡들은 훨씬 날렵합니다. 이제 대형 공룡만 아니라 소형 공룡들도 사람들의 관심을 이끕니다. 21세기에 이르러 공룡에 관한 고증은 훨씬 폭넓게 변했습니다. 과거 사람들은 깃털 달린 티라노사우루스를 절대 상상하지 못했죠. 그 귀여운(?) 모습이라니.
아마 앞으로 공룡에 관한 고증은 계속 변할 것 같습니다. 22세기나 23세기의 고증은 21세기와 다를 겁니다. 21세기의 공룡 고증이 19세기의 공룡 고증과 다른 것처럼. 21세기 초반 인류는 아직 공룡의 피부 색을 잘 모르지만, 어쩌면 22세기 인류는 알 수 있을 겁니다. 21세기 초반 인류는 아직 공룡의 피부 질감을 잘 모르지만, 어쩌면 22세기 인류는 알 수 있을 겁니다. 공룡은 과거에 사라진 동물이기 때문에 현대 인류는 공룡을 막연하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고생물학자들은 상상력을 발휘하고 탐정이 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동물학자는 자연 생태계 속에서 동물을 관찰할 수 있으나, 고생물학자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고생물학자들은 최대한 많은 화석을 수집하고, 화석을 기반으로 공룡의 생태를 추론해야 합니다. 고생물학은 추론의 과학입니다. 아마 틀린 표현은 아닐 겁니다. 사실 고생물학자 본인들도 자신들이 탐정에 가깝다고 인정해요. 고생물학에는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고, 그래서 고대 생태계를 그리는 화가들은 놀라운 상상력을 뽐내곤 합니다. 이런 고대 생태계는 외계 생태계만큼 경이롭고 신비롭습니다.
로버트 소여는 바로 이 점을 열심히 파고 듭니다. 현생 조류를 제외한다면, 아무도 공룡을 본 적이 없습니다. 현대 인류는 왜 (조류를 제외한) 공룡들이 멸종했는지 잘 모릅니다. 정말 운석이 충돌했기 때문일까요? 그게 전부일까요? 그 이론에 다른 헛점은 없을까요? 모든 고생물학자들이나 천문학자들이 그 이론에 동의할까요? 사람들은 수학 공식처럼 자연 과학이 정확한 답을 찾아낸다고 생각하지만, 자연 과학 역시 모호한 안개 속을 방황하곤 합니다.
사실 과학은 한계가 있고, 그래서 자연 과학은 세상의 모든 진리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고생물학은 훨씬 모호한 학문입니다. 근거가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한적인 화석과 지층으로 고대 동물들의 생태를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 미치광이들은 이 점을 이용해 열심히 진화론을 부정해요.) 로버트 소여는 고생물학이 상상력의 학문임을 간파했고, 아주 신나게 상상력을 쏟아 붓습니다. 그런 상상력은 꽤나 파격적이고, <멸종>의 흥미진진함은 그런 파격적인 상상력에서 나옵니다. 페이지들이 아주 팍팍 신나게 넘어갑니다.
요약한다면 이렇습니다. 고생물학은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많습니다. 로버트 소여는 그 점을 간파했고,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집어넣습니다. 그런 상상력이 <멸종>을 빛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로버트 소여가 상상력에만 매달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소여는 하드 SF 작가다운 수완을 발휘하고, 비일상적이고 황당한 요소에 논리적인 발판을 매답니다. 그래서 독자는 온갖 황당하고 엉뚱한 사건들을 접하지만, 거기에서 쉽게 눈을 돌릴 수 없습니다. 작가가 이미 논리적인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독자는 작가가 어떤 황당한 사건을 전개할지, 그 사건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해할 겁니다. 그게 바로 이 소설의 추진력입니다. 소설을 천천히 음미할 시간이 없습니다. 손가락은 어서 페이지를 넘기고 싶어하고, 책은 독자의 호기심을 왕성하게 흡수합니다. 황당한 사건들은 꼬리를 물고, 결국 이것들은 세상을 전복합니다. 그때의 짜릿함과 흥분은 '인식의 지평선이 넓어지는' SF 소설의 고유한 재미를 드러냅니다. 공룡 매니아는 이 책을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고, 공룡 매니아가 아닌 사람 역시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겠죠.
그런 전복적인 시각이 현대 문명 비판으로 이어진다면 훨씬 좋겠지만, 이 책은 그런 수준까지 나가지 않습니다. 그게 이 책의 단점은 아닐 겁니다. 로버트 소여는 그런 부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대 문명을 깊게 비판하는 것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에요. 게다가 하드 SF 소설들은 거시적인 전복을 바라보기 때문에 현대 문명을 너무 평면적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이런 문제는 여러 하드 SF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멸종>만의 단점은 아니죠.
코난 도일이 신나는 모험을 그리기 위해 <잃어버린 세계>를 쓴 것처럼 로버트 소여도 신나는 고대 생태계 탐사를 묘사하기 위해 <멸종>을 쓴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 이 소설의 진짜 단점은 설명이 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너무 황당한 사건들이 많이 벌어지기 때문에 몇몇 부분은 설명이 모자랍니다. 작가는 어떤 부분에서 얼렁뚱땅 넘어갑니다. 시간 여행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간대의 간섭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작가는 그 부분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요. 대충 학술 용어 몇 가지로 누더기를 기운 듯합니다.
로버트 소여는 하드 SF 작가다운 솜씨를 뽐내지만, 그런 솜씨는 공룡들을 띄워줄 뿐입니다. 저는 이 소설의 분량이 좀 더 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그만큼 더 많은 것들을 설명하거나 보여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단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멸종>은 신나고 재미있고 멋진 소설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있는 공룡 소설 중에서 이만큼 신나는 소설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비록 이 소설은 전형적인 공룡 소설이 아니지만, 공룡에게 끊임없이 하트를 날립니다. 과학자들이 고대 생태계를 탐험하고 거대한 육식동물을 만나는 순간은 정말 로망입니다.
로버트 소여는 공룡 이외에 다른 것들에게 더 많은 비중을 할당했고, 공룡 매니아는 그 점을 아쉽게 생각하겠으나, 그럼에도 이 소설은 공룡에게 무한한 애정을 뿜습니다. 로버트 소여 본인도 무더운 밀림을 헤쳐나가고 티라노사우루스를 마주하는 그 로망과 경이를 누구보다 즐기는 것 같습니다. 시간대의 개입이나 세상의 전복 같은 요소들도 놀랍지만, 결국 그런 로망과 경이가 이 책의 중심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