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감상, 분류, 규정/소설을 읽다 (79)
SF 생태주의
[유감스럽게도 19세기 비경 탐험 소설들에는 이런 여자 탐사 대원들이 없었습니다.] SF 평론가들은 메리 셸리가 사이언티픽 로망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평가합니다. 은 그런 결과물이고요. 메리 셸리가 사이언스 픽션을 쓴다는 자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테크노 스릴러 작가처럼 메리 셸리는 인조인간 이야기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장르를 쓴다는 자각이 없었을 겁니다. 나중에 쥘 베른이나 허버트 웰즈나 에드워드 벨라미 등은 자신들이 장르 작가임을 자각했으나, 메리 셸리는 그저 으스스한 소설을 썼을 뿐이죠. 그렇다고 해도 메리 셸리가 사이언티픽 로망스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장본인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메리 셸리는 여자죠. 흔히 사..
[이런 개척 사회에는 시장 경제가 없고 계획 경제가 있어요. 시장 경제는 절대 당연하지 않습니다.] 쥘 베른은 어딘가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 , , , 같은 소설들은 모두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이야기들입니다. 어떤 소설은 일상적인 여행을 넘어 심해와 지저와 우주로 뻗었고, SF 소설이 되었죠. 쥘 베른은 낯선 곳에서 표류하고 생존하는 이야기 역시 여행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 같은 소설들을 썼을 겁니다. 에 비해 은 별로 유명하지 않죠. 게다가 은 너무 낭만적입니다. 생존자들은 절대 서로 반목하거나 갈등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연대합니다. 천재 지도자가 모든 것을 파악하기 때문에 생존자들은 커다란 장애를 겪지 않습니다. 생존자들은 논리와 과학, 이성, 단결된 노동..
사이언스 판타지 소설들은 숱한 외계 종족들을 선보입니다. 어떤 외계 종족들은 우화에 가깝고, 어떤 외계 종족들은 색깔이 다른 인간에 불과합니다. 사이언스 판타지 작가들은 머나먼 행성에서 무슨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아요. 개성적인 외계 종족이 소설에 생동감을 더하기 때문에 그저 여러 종족들을 창작할 뿐이죠. 사이언스 판타지의 외계 종족이 모두 고리타분한 상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 수작 소설들은 정말 독특하고 기발한 종족들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 다소 전형적인 종족들 역시 존재합니다. 양서류 종족은 어떨까요. 개구리, 두꺼비, 도롱뇽…. 우둘투둘한 모습 덕분에 두꺼비 종족은 다소 위협적인 종족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구리 종족은 별로 위협이 되지 못하겠죠. 도롱뇽..
요즘처럼 춥고 눈이 내릴 때, 읽기에 딱 알맞은 소설들이 있습니다. 는 그런 소설들 중 하나일 겁니다. 프랭클린 탐사대를 소재로 삼은 비경 탐험 이야기죠. 프랭클린 탐사대는 북극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영국을 떠났으나, 결국 혹독한 극지방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넜습니다. 영국 해군과 다른 탐사대들은 플랭클린 탐사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조사했으나, 프랭클린 탐사대는 의문 속으로 사라졌고, 여전히 난파와 실종 사건은 전말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여러 증거들이 더 많이 나타났다고 들었기 때문에 어쩌면 전모가 조금 더 밝혀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가혹한 북극에서 사라진 의문의 탐사대는 매력적인 소재이고, 작가 댄 시몬스는 북극 탐사대를 이용해 처절하고 압도적인 탐사 이야기를 펼칩니다. 아니, 는 그저..
다니엘 윌슨이 쓴 는 두 가지 소재를 종합했습니다. 하나는 로봇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즉,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래서 인류 문명이 무너졌고, 세상이 아비규환 속으로 빠졌다는 뜻입니다. 이는 매우 고전적인 내용이나, 동시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술적 특이점을 언급하는 21세기에서 인공 지능과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일 수 있겠죠. 기술적 특이점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많을 것 같고, 작가 역시 자신이 로봇 공학 기술자라고 홍보합니다. 아쉽게도 는 기술적 특이점을 별로 살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소설 속의 기계들은 그저 좀 더 특이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겉모습은 분명히 기계이나, 행동거지와 사고 방식은 인간적인 범주에서 ..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느끼고, 맛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고,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눈과 코와 귀와 피부와 혀는 다양한 정보들을 종합하고, 뇌는 그런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먹거리를 찾거나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 뇌가 인식하는 세상과 다르다면, 우리는 생존하지 못했을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존한다는 뜻은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인식했다는 반증이겠죠. 하지만 이게 완벽한 반증일까요. '통 속의 뇌'는 유명한 사고 실험입니다. SF 소설들 역시 통 속의 뇌를 이용하곤 하죠. 흔한 사이버펑크 소설들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등장..
기독교 문명에서 성탄절은 아주 중요한 축일입니다. 성인이 태어난 날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생일이기 때문에 다른 축일보다 의미가 더 크죠. 게다가 20세기 이후, 성탄절은 연말과 겹쳤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휴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탄절이라는 표현보다 성휴일(해피 홀리데이)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사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기독교 신도가 아닌 사람들 역시 성탄절을 많이 기다릴 겁니다. 나라마다 연말 휴일을 즐기는 방법은 다르겠으나, 어쨌든 사람들은 휴일을 바라겠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대로 놀고 싶다면, 휴일이 유일한 희망이죠, 뭐.)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은 바쁘게 휴일을 준비합니다. 수많은 상점들은 연말 휴일을 대목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축제가 벌어지고,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몰립니다. ..
르네 바르자벨이 쓴 은 소설 내용이 무엇인지 제목으로 드러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죠. 엄청난 재난은 문명을 덮치고, 쓰러지는 문명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문명이라는 안락한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기 원하나, 엄청난 재난은 그들을 계속 문명 밖으로 몰아갑니다. 사람들은 결국 안락한 울타리에서 쫓겨나고, 온갖 가혹한 상황들에 직면합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울타리 안에서 그들이 뒤집어썼던) 가면과 위선과 형식을 벗어던지고 본모습을 드러내죠.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보여주는 여러 특징들 중 하나는 이겁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인류 문명을 무너뜨릴 수 있고, 그래서 다양한 가면과 위선과 형식을 벗길 수 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이른바 문명인을 순식간에 야만인으로 몰..
매드 사이언티스트, 그러니까 미치광이 과학자는 SF 소설 속에서 흔한 소재입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무조건 미친 과학자라고 번역한다면, 그건 오류일 겁니다. 종종 미친 과학자보다 사악한 과학가 더 어울리는 번역 같습니다. 아니면 외골수에 빠진 과학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 방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소설 에 등장하는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조인간의 이름이라고 오해하는, 그 이름으로 불리는 인물이죠. 빅토르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적어도 일반적인 기준에서 '미쳤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겁니다. 그보다 프랑켄슈타인은 너무 한 가지 길에 빠졌고, 그래서 주변을 둘러볼 수 없었죠. 그런 외골수는 결국 프랑켄슈타인을 파멸로 이끌었고요. SF 평론가들은 메리 셸리를..
이른바 주류 소설과 장르 소설이 다른 이유들 중 하나는 비인간적인 존재일 겁니다. 주류 소설들은 인간들만 이야기합니다. 설사 이나 처럼 다른 존재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현실을 넘어가지 못하죠. 사이언스 픽션은 자유롭게 현실을 벗어나고 다른 존재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비인간적인 존재들은 우리 인류를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 있어요. 인간이 아닌 존재를 만난다면, 인간을 훨씬 더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겠죠. 인류를 이야기하기 위해 반드시 외계인이 필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인류를 외계인과 비교할 수 있고, 인류가 누구인지 훨씬 강조할 수 있겠죠. 그래서 크리스 켈빈이 솔라리스 정거장으로 날아갈 필요가 있었고요. 하지만 종종 사이언스 픽션은 외부인이나 이방인이 아니라 내부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