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감상, 분류, 규정/소설을 읽다 (79)
SF 생태주의
존 크리스토퍼가 쓴 은 제목처럼 풀이 죽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풀은 밀이나 호밀, 보리, 귀리 같은 곡물들을 가리킵니다. 치명적인 전염병이 사방으로 퍼지고, 농민들은 더 이상 각종 곡물들을 수확하지 못합니다. 전염병은 다른 식물들 역시 가만히 놔두지 않고, 따라서 소들이나 양들 역시 더 이상 목초지에서 풀을 뜯지 못해요. 이런 상황에서 감자나 비트 같은 뿌리 작물들은 여전히 멀쩡하고, 돼지처럼 뿌리 작물들을 먹고 살 수 있는 가축들 역시 안전합니다. 문제는 모든 농민이 비트나 돼지를 키우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전염병이 퍼지는 동안 국가 정부는 사태에 안일하게 대처하고, 농민들은 그저 습관적으로 계속 농사를 지을 뿐입니다. 치명적인 전염병이 퍼졌음에도 다들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지 않아요. 사태는 ..
로버트 하인라인이 쓴 는 일종의 우주 탐사물입니다. 아니, 우주 탐사보다 우주 개척물이 옳은 표현일 겁니다. 원래 제목은 '하늘의 농민'이고, 소설 주인공은 정말 농민입니다. 소설 주인공이 하늘의 농민인 이유는 주인공이 지구가 아니라 외계 위성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입니다. 왜 외계 위성에서 주인공이 농사를 지을까요. 이는 우주를 개척하기 위한 발판입니다. 인류는 한창 우주로 뻗어나가는 중이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외계 행성들과 외계 위성들을 개척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그들 중 하나이고, 지구를 버리고 다른 위성으로 건너가고,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생존이나 개척을 이야기하는 SF 소설들은 항상 농사를 간과하지 않아요. 고전적인 부터 같은 최신 비디오 게임까지, 새로운 땅이나 새로운 행성에서 살기 위..
페트릭 헤이든이 엮은 는 SF 단편 소설 모음집입니다. 이 모음집은 낸시 크레스, 테리 비슨, 그렉 베어, 코니 윌리스, 데이비드 랭포드 같은 사람들을 담았어요. 모두 17편이죠. 이런 소설 모음집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각자 하위 장르가 다르고, 소재나 분위기 역시 다릅니다. 어떤 것은 엄중하고, 어떤 것은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어떤 것은 웃기고, 어떤 것은 세상을 뒤집을 정도로 심각해요. 어떤 것은 희망을 노래하고, 어떤 것은 멸망한 세상을 보여줍니다. 10대 독자를 위한 소설 모음집이라고 해도, 성인 독자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죠. 첫머리를 장식하는 소설은 테리 비슨이 쓴 입니다. 풍자적인 소설이고, 일반적인 서술 문구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오직 대사들로만 채워졌어요. 소설 제목처럼 외..
※ 소설 의 치명적인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스티븐 백스터가 쓴 은 허버트 웰즈가 쓴 의 속편입니다. 서로 다른 작가가 썼기 때문에 은 을 이어가는 동시에 다른 갈래들로 뻗어나갑니다. 에서 시간 여행자는 미래에 도착하고 엘로이들을 만났을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훨씬 먼 미래로 날아가나, 시간 여행자는 주로 엘로이들과 어울렸죠. 엘로이들은 쇠락한 문명을 간신히 유지하는 중이었고, 덕분에 시간 여행자는 첨단 도시 따위를 절대 구경하지 못합니다. 거시적이고 진화적인 관점에서 허버트 웰즈는 아무리 찬란하게 보이는 인류 문명 역시 쇠락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웰즈는 첨단 미래 사회를 보여주지 않았고, 쇠락한 문명을 보여줬죠. 하지만 스티븐 백스터는 보다 긍정적으로 나가는 것 같습니다. 스티븐 백스터는 다양..
요수타인 가아더가 쓴 를 SF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는 일반적인 SF 소설과 다른 듯합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가 SF 소설이 아니라고 말할지 몰라요. 하지만 전통적으로 타임슬립이나 예지몽은 SF 울타리 안으로 쉽게 들어왔습니다. 고전적인 19세기 작가들은 예지몽을 아무렇지 않게 이용했고, 타임슬립은 여전히 흔한 SF 장치입니다. 따라서 를 SF 소설이라고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겠죠. 게다가 환경 아포칼립스로서 요수타인 가아더는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과 사회 과학적인 상상력을 결합합니다. 가 SF 세상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 책은 주변 부분에 머물 수 있어요. 아무도 이 책을 SF 울타리 밖으로 쫓아내지 않을 겁니다. 상상 과학을 전개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는 흔한 SF 블록버스터..
소설 은 인공지능으로 시작하고, 인공지능으로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미래 시대에 지구인들은 외계인들에게 학술 사절을 파견합니다. 일련의 과학자들은 게이트라는 우주선을 타고 외계 행성으로 향하죠. 하지만 우주를 항해하는 동안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기이하고 불안한 상황이 게이트를 덮치고, 게이트는 만신창이가 됩니다. 우주선 게이트는 어떤 낯선 행성에 불시착하고, 거기에서 지구인들은 인류와 비슷한 외계인을 만납니다. 외계 행성에서 지구인들은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아가나, 외계 행성이 어떤 비밀을 숨겼다고 느껴요. 은 이런 줄거리로 흘러가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이는 이라는 소설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줄거리입니다. 이 소설은 하드 SF 우주 탐사물에 가깝고, 우주선이나 외계인이 ..
소설 는 꽤나 기이한 책입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를 내세우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으나, 이 소설에서 러브크래프트 같은 요소는 별로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사악한 외계인들은 그저 서두를 장식할 뿐이죠. 가 정말 기괴한 이유는 콜린 윌슨이 독특한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콜린 윌슨은 오컬트 책들을 많이 썼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인 각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윌슨은 왜 인간이 소외나 절망, 분노를 느끼는지 주목했고, 정신적인 각성으로 그걸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윌슨은 인간이 자신을 진정으로 세상에 표현하기 원했고,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기 원했고, 그게 정신적인 승천이나 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여겼죠. 인간의 의식에는 상당한 잠재력이 있고, 윌슨은 사람들이 그걸 끄집어내기 ..
다카노 가즈아키의 는 일종의 초인 소설입니다. 모든 인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인간들이 등장하고, 그 새로운 인간들을 위협하는 기득권이 존재하고, 몇몇 사람은 그 기득권에게서 새로운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온갖 복잡한 갈등 속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는 치명적인 위기를 불러옵니다. 이야기의 시점은 크게 세 부분들로 나뉘는데, 우선 일본의 약학 대학원생이 있습니다. 우연히 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를 뒤쫓는 동안 이 학생은 꿈조차 꾸지 못했던 엄청난 진실에 직면하고 일개 대학원생이 감당하지 못할 음모에 빠져듭니다. 또 다른 주연 등장인물은 미국 용병인데, 용병답게 특수부대 출신입니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위험한 임무를 자처하고, 그래서 결국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콩고 작전에 참가합니다...
코맥 매카시가 쓴 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왜 인류 문명이 멸망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죠. 비단 인류 문명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 역시 무너졌습니다. 도시들은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불탔고, 하얀 눈송이들과 검은 잿가루들은 모든 것을 뒤덮습니다. 하늘은 언제나 흐리고, 해를 찾아보기 어렵고, 차가운 바람만 휘몰아칩니다.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지고, 눈은 무릎까지 찹니다. 사방은 어둠이나 희미한 날빛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눈이 내리는 밤에 깊은 숲 속을 헤맨다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사방은 적막하고, 가끔 비명이나 희한한 소리가 들리나, 대부분 침묵을 지킵니다. 귀를 기울여도 천둥이나 바람 소리만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질서를 유지하는 누군가는 없습니다. 질서는..
"결론도 없고, 설명도 없고, 해답도 없고…. 누가 그런 소설을 읽나? 왜 그런 갑갑한 소설을 읽지?" SF 세상에는 이런 평가를 받는 소설들이 있을 겁니다. 솔직히 대부분 SF 소설들은 모든 설정에 명쾌한 설명을 붙이지 못해요. (그래서 SF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SF 소설이 황당하다고 비난하죠.) 요란한 사이언스 판타지부터 묵직한 하드 사이언스 픽션까지, SF 소설들에서 설정은 상상의 영역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 소설에서 작가는 온갖 인공 지능, 로봇, 돌연변이 괴물, 개조 생명체, 외계인을 늘어놓을 수 있으나, 어떻게 그런 것들이 작동하거나 살아있는지 말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 작동 원리가 궁금한 독자는 소설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겠죠. 작가가 어떤 인조인간이나 돌연변이 괴물을 제시하면, 독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