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테메레르>와 <레비아탄>, 생체 항공기의 매력 본문
공군. 만약 사람들이 이 단어를 듣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항공기를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항공기가 정찰기든 수송기든 전투기든, 공군이라는 단어는 항공기로 이어질 겁니다. 공군에서 항공기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공군에서 항공기를 위해 다른 많은 것들은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공군을 이야기할 때, 다른 무엇보다 항공기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일 겁니다. 그래서 육군, 해군, 공군 중에서 공군은 가장 늦게 나타났습니다. 인간이 육상 동물이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육군은 존재했습니다. 커다란 배를 만들기는 힘드나, 이게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해군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하늘을 날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지상을 달리고 배를 건조할 수 있으나, 비행은 너무 어려운 문제입니다. 서구 근대화 이후, 인류 문명은 본격적인 항공기를 만들 수 있었고, 그래서 육군과 해군보다 공군은 훨씬 늦게 나타났습니다. 본격적인 항공기처럼, 서구 근대화 이후, 전차와 잠수함 역시 나타났으나, 그렇다고 해도 이미 오래 전부터 보병과 함선은 존재했습니다. 육군과 해군에게 보병과 함선이 근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육군과 해군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그 자체로서 항공기는 서구 근대적인 산물이고, 그래서 공군은 짧은 역사를 드러냅니다.
공군이 서구 근대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서구 근대화 이전에 사람들은 공군을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문학들은 항공기와 공군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반면, 중세 문학들은 공군을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중세 시대에서 기계 공학은 크게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중세 시대에서 항공기를 만들기 위한 기계 공학은 존재하지 못했습니다. 본격적인 항공기는 진보한 기계 공학을 요구합니다. 항공기는 기계입니다. 폴리카르포프 I-15부터 F-22A 랩터까지, 항공기들은 기계입니다. 사람들이 항공기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은 기계들을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현실 속에서 항공기들이 기계이기 때문에, 많은 소설들, 영화들, 게임들 역시 기계 항공기들을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홈월드>와 <스타 워즈>의 애로우 전투기와 X-윙 전투기 같은 우주 전투기들조차 기계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소설, 영화, 게임이 생체 항공기를 이야기한다면, 생체 항공기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설정이 될 겁니다. 나오미 노빅이 쓴 <테메레르>에는 생체 항공기들이 있습니다. 소설 <테메레르>에서 생체 항공기들은 드래곤들, 용들입니다. <테메레르>는 대체 역사 소설이고, 소설 속에서 주연 등장인물들은 드래곤을 길들이거나 드래곤과 우정을 맺고 드래곤에 탑승합니다.
소설 <테메레르>는 드래곤 라이더, 용기사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드래곤은 중세 유럽 판타지 설정이나, <테메레르>는 중세 유럽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 분위기를 풍깁니다. 적어도 <테메레르>는 사이언스 판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대체 역사가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전, 중세 서구 문명에서 인류는 신의 뜻을 따라야 했습니다. 이미 신은 역사를 결정했습니다. 언젠가 심판의 날은 다가올 테고, 인류는 심판의 날을 피하지 못합니다. 인류는 또 다른 역사를 꿈꾸지 못합니다. 인류는 그 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서구 근대화 이후, 이런 목적론적인 역사 관점은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목적론적인 역사 관점은 당장 사라지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도 서구 근대 문명은 또 다른 역사들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변증법적인 역사 관점이 보여주는 것처럼, 비록 선형적인 역사 관점이 강하다고 해도, 서구 근대 문명은 역사가 계속 바뀐다고 간주하기 시작합니다. 서구 근대화 때문에, (서구 문명에서) 사람들은 자유분방하게 또 다른 역사들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대체 역사는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 서구 근대화를 이용하는 비일상적인 상상력에 속합니다. <테메레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테메레르>가 드래곤 라이더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이 소설은 판타지보다 SF 울타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SF 소설, 대체 역사 소설로서 <테메레르>는 드래곤 라이더를 이야기합니다. 소설 속에서 드래곤들에게는 수많은 품종들이 있고, 거대 품종들은 공중 전함과 비슷합니다. 거대 드래곤은 비행사를 비롯해 많은 공군 승무원들을 태웁니다. 거대 드래곤 등과 배, 옆구리에서 공군 승무원들은 천막을 치거나, 그물을 매달거나, 안장 고리들을 연결합니다. 어떤 승무원은 깃발 신호를 담당하고, 어떤 승무원은 망꾼이 되고, 어떤 승무원은 저격수가 됩니다. 거대 드래곤 위에서 공군 승무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그들은 신호를 보내거나, 주변 창공을 감시하거나, 적군 드래곤에게 총알들을 퍼붓습니다.
이런 치열한 전투 상황에서 비행사와 드래곤의 우정은 커다란 원동력이 됩니다. 공군 비행사에게 드래곤은 단순한 생체 항공기가 아닙니다. 드래곤에게 비행사는 그저 단순한 주인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행사와 드래곤은 연인에 가깝습니다. "그 비행사는 내 것이야! 내 비행사에게서 떨어져!" 이런 대사는 "그 남자는 내 남자야! 내 남자에게서 떨어져!" 같은 대사와 비슷합니다. 소설 <스타십 트루퍼스>에서 군견병과 네오독 탐지견이 깊은 우정을 맺는 것처럼, <테메레르>에서 진한 우정은 비행사와 드래곤을 연결합니다. 이 소설에서 비행사와 드래곤의 우정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현실 속에서 공군 조종사 역시 기계 항공기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계 항공기에게는 감정과 사고가 없습니다. 조종사와 기계 항공기는 연인이 되지 못합니다. SF 소설 속에서 미래 공군 조종사와 인공 지능 항공기는 서로 사랑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인공 지능 항공기가 기계라면, 이런 우정은 비행사-드래곤의 우정과 다를 겁니다. 드래곤이 동물, 생명체이기 때문에, 동물, 생명체로서 인간 비행사는 드래곤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습니다. SF 소설 속에서 미래 공군 조종사가 인공 지능 항공기에게 감정을 이입한다고 해도, 이건 유물론적이지 않습니다. 육체적인 측면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합니다.
비행사와 드래곤에게 육체적인 측면은 공감대가 됩니다. 인간과 드래곤에게는 육체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인간이 먹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드래곤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드래곤이 섹스하고 알을 낳는 것처럼, 인간은 섹스하고 아기를 낳습니다. 반면, 인공 지능 항공기는 유물론적이지 않습니다. 인공 지능 항공기가 육체를 의식한다고 해도, 인간과 기계에게는 똑같은 육체적인 측면이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드래곤은 인간을 잡아먹거나 (만약 덩치가 비슷하다면) 인간과 드래곤은 섹스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육체적인 존재로서 공군 비행사와 기계로서 인공 지능 항공기 사이에서 이런 행위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드래곤, 생체 항공기는 비단 독특하고 인상적일 뿐만 아니라 유물론, 육체적인 측면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독자가 <테메레르>를 읽지 않는다고 해도, 독자는 육체적인 측면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독자가 맛있는 명절 갈비찜을 먹거나, 독자가 연인과 애무하고 섹스하는 동안, 독자는 육체적인 측면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체 항공기가 독특하고 인상적이고 비일상적인 설정이기 때문에, 독자는 SF 소설 <테메레르>를 읽고 육체적인 측면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은 재미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어떤 주제를 새롭게 바라보거나 훨씬 강조할 수 있습니다.
소설 <테메레르>처럼, 스콧 웨스터펠드가 쓴 <레비아탄>은 생체 항공기를 이야기합니다. <테메레르>처럼, 소설 <레비아탄>은 대체 역사 장르이고, 소설 속에서 생체 항공기는 거대한 부유 고래 비행선입니다. 드래곤과 부유 고래 비행선은 똑같이 생체 항공기이나, 드래곤과 부유 고래는 다릅니다. <테메레르>에서 비행사와 드래곤은 진한 우정을 맺으나, <레비아탄>에서 이런 측면은 희미합니다. 하지만 드래곤과 부유 고래가 다르다고 해도, 부유 고래 비행선은 육체적인 측면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레비아탄>에서 다윈주의 과학자들은 여러 개조 생명체들을 만듭니다. <레비아탄>은 바이오펑크입니다.
동시에 <레비아탄>은 스팀펑크입니다. 소설 속에서 이른바 클랭커 진영은 보행 기계 병기를 비롯해 비일상적인 기계 병기들을 만듭니다. 개조 생명체들은 이런 기계들과 싸웁니다. 심지어 거대 바다 괴수 병기와 대(對)괴수 순양 전함은 격렬하게 싸웁니다. 거대 바다 괴수 병기와 대(對)괴수 순양 전함은 생체와 기계를 기이하게 대조하고, 이런 대조는 육체적인 측면을 새롭게 제시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대괴수 순양 전함이 커다란 집게들을 철컥거리고 바다 괴수 촉수들을 자른다고 해도, 거대 바다 괴수는 무시무시한 아가리를 벌리고 순양 전함을 물어뜯습니다. 바다 괴수에게는 아가리가 있습니다.
바다 괴수가 동물, 생명체이기 때문에, 바다 괴수에게는 아가리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동물이고, 동물로서 인간에게 입이 있는 것처럼, 바다 괴수에게는 아가리가 있습니다. 순양 전함에게는 아가리가 없습니다. 순양 전함은 동물, 생명체가 아닙니다. 동물이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인간과 거대 바다 괴수에게는 아가리가 있습니다. 인간, 거대 바다 괴수, 동물은 먹는 존재입니다.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하가 '먹는 존재'를 유물론적으로 강조한 것처럼, 먹는 존재는 육체적인 측면을 향해 이어집니다. 거대 바다 괴수가 순양 전함을 물어뜯는 동안, 독자는 먹는 존재, 육체적인 측면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소설 <레비아탄>에서 주연 공군 승무원은 다윈주의 과학자와 함께 부유 고래 뱃속을 둘러봅니다. 부유 고래 뱃속에서 수많은 꿀벌들은 열심히 꿀을 모으고, 부유 고래는 이것을 소화하고 가스를 생성합니다. 이런 장면은 먹는 존재, 육체적인 측면을 아주 특별하게 강조합니다. 이렇게 <레비아탄>은 육체적인 측면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소설 <레비아탄> 없이, 독자는 육체적인 측면을 인식할 수 있으나, 독자는 <레비아탄>을 읽고 육체적인 측면을 훨씬 강렬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은 재미있습니다. 이건 오직 사이언스 픽션만 육체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드루이드가 자연의 여신을 숭배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검치 호랑이와 우정을 맺고, 자연 환경을 둘러보는 동안, 이런 설정 역시 육체적인 측면을 강조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하가 보여주는 것처럼, 유물론은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에 어울립니다. 오래 전부터 인류 문명은 유물론 철학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마르크스주의 덕분에, 유물론 철학은 새로운 조명을 받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이전에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하가 유물론과 자연을 강조한 것처럼, 오늘날 서구 근대적인 문명에서 유물론과 진보 사이에는 커다란 연결 고리들이 있습니다.
중세 판타지 드루이드보다 <테메레르>는 품종 개량을 이야기하고 육체적인 측면을 훨씬 강조할 수 있습니다. <테메레르>보다 <레비아탄>은 육체적인 측면을 훨씬 강조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테메레르>보다 <레비아탄>은 바이오펑크 생체와 스팀펑크 기계를 훨씬 적극적으로 대조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테메레르>와 <레비아탄>은 똑같이 생체 항공기를 이야기합니다. 현실에서 오직 기계 항공기들만 존재하기 때문에, 생체 항공기는 독특하고 인상적입니다. 인간과 생체 항공기는 똑같이 육체적인 측면에 속하고, 그래서 생체 항공기는 육체적인 측면을 독특하고 인상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어떤 SF 독자들에게 이런 분류는 만족스럽지 않을지 모릅니다. <테메레르>가 나폴레옹 전쟁을 이야기하고, <레비아탄>이 20세기 초반 스팀펑크이기 때문에, <레비아탄>은 <테메레르>보다 <사이쓰> 같은 20세기 초반 스팀펑크와 훨씬 잘 어울립니다. SF 팬들이 <레비아탄>과 <사이쓰> 삽화들을 비교한다면, SF 팬들은 두 삽화들이 비슷하다고 느낄 겁니다. 하지만 <레비아탄>과 달리, <사이쓰>에는 생체 항공기가 없습니다. <사이쓰>에서 스팀펑크 공중 전함은 아주 근사하나, 스팀펑크 공중 전함은 섹스하지 않습니다. 생체 항공기가 기준일 때, <레비아탄>은 <사이쓰>보다 <테메레르>에 가깝습니다.
만약 SF 팬들이 <사이쓰>의 공중 전함보다 <테메레르>의 리갈 코퍼 드래곤과 <레비아탄>의 부유 고래 비행선을 훨씬 좋아한다면, 그 이유는 육체적인 측면인지 모릅니다. <사이쓰>에서 공중 전함이 기계이기 때문에, <테메레르>와 <레비아탄>에서 리갈 코퍼 드래곤과 부유 고래 비행선이 생체, 먹고 섹스하는 존재, 육체적인 측면이기 때문에, SF 팬들은 기계 공중 전함보다 리갈 코퍼 드래곤과 부유 고래 비행선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정신적인 측면이 있으나, 육체적인 측면 없이, 인간은 존재하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 '먹고 섹스하기'는 아주 원초적입니다.
사실 '먹고 섹스하기'는 인류 문명을 원초적으로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먹고 섹스하는 문제를 너무 쉽게 간과합니다. 우리가 먹고 섹스하기를 중시한다고 해도, 우리는 먹고 섹스하기보다 다른 것을 훨씬 중시할지 모릅니다. 자본주의 체계가 우리 사고 방식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섹스는 임신, 출산, 양육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섹스와 돌봄 노동 사회화는 떨어지지 못합니다. 섹스가 인류 문명을 원초적으로 뒷받침하기 때문에, 돌봄 노동 사회화는 원초적인 정책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돌봄 노동을 비롯해) 노동 사회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민영화를 좋아합니다.
자본주의가 민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피지배 계급 노동 사회화를 가로막고 억압합니다. 자본주의는 돌봄 노동 사회화 역시 가로막고 억압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옳다고 믿습니다. 심지어 '자칭' 페미니스트들조차 자본주의를 떠받듭니다. 오히려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서구 제국주의를 추종합니다. 서구 제국주의가 제3세계를 수탈하고, 그래서 자본주의가 부유하다고 해도,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중국이 홍콩을 탄압할 때,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중국이 제국주의라고 힐난합니다.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중국이 서구 제국주의와 대립하기 때문에, 서구 제국주의 앞잡이로서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그저 중국을 힐난할 뿐입니다. 이런 1차원적이고 안락한 페미니즘이 정말 성 해방 운동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어떻게 성 해방 운동이 돌봄 노동 착취를 개무시하고 서구 제국주의를 떠받들 수 있나요? SF 독자들은 <테메레르>와 <레비아탄>, 리갈 코퍼 드래곤과 부유 고래 비행선, 생체 항공기를 읽고 이런 문제(섹스와 돌봄 노동 사회화)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섹스하기 때문에, 부유 고래 비행선은 매력적인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