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제노 타이탄을 비롯해 개조 생명체들의 실존과 용도 본문
[인간이 거대 괴수를 조종할 때, 인간은 거대 괴수에게서 실존을 밀어내고 용도를 부여합니다.]
'탈것'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흔히 사람들은 여러 차량들, 선박들, 항공기들을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훨씬 특수한 탈것들, 우주선들이나 잠수정들을 머릿속에 떠올릴지 모릅니다. 심지어 고텐호(굉천호)처럼 어떤 사람들은 지저 굴착 차량을 머릿속에 떠올릴지 모릅니다. 이런 지저 굴착 차량은 상상 과학에 가까우나, 현실에는 아주 거대한 터널 굴착 드릴 차량이 있고, 터널 굴착 차량과 고텐호는 서로 닮았습니다. 터널 굴착 차량에게서 사람들이 고텐호를 연상한다고 해도, 그건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소형 자가용부터 고텐호 같은 지저 굴착 차량까지, 이런 여러 탈것들은 기계들입니다. 근대적인 진보는 기계 문명을 이룩했고, 이제 사람들은 수많은 기계들에게 둘러싸였습니다. 여러 탈것들 역시 기계들입니다. 한때 말, 낙타, 코끼리는 운송을 맡았으나, 더 이상 이런 동물들은 운송을 맡지 않습니다. 운송 동물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코끼리가 통나무들을 쉽게 운반할 수 있다고 해도, 터널 굴착 차량과 거대 유조선과 우주 버스에 비해 코끼리는 초라한 탈것입니다. 19세기 근대적인 진보 이후, 사람들은 탈것이 기계라고 간주합니다. 수많은 탈것들은 기계들이고, 우주선 역시 기계입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은 이런 고정 관념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우주선이 무조건 기계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우주선은 생명체나 사이보그가 될 수 있습니다. TV 드라마 <우주선 렉스>는 생체 우주선을 보여줍니다. 렉스는 꽤나 희한한 우주선입니다. 시청자들은 렉스를 잠자리 대가리 우주선이라고 부릅니다. 우주선 선수가 정말 잠자리 머리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주선 내부는 훨씬 희한합니다. 생체 우주선으로서 렉스는 수많은 생체 기관들을 자랑합니다. 중요 부품들부터 샤워 시설까지, 생체 우주선에서 수많은 구성 요소들은 생체들입니다. 렉스가 우주선 승무원들에게 식사를 배급할 때, 렉스는 똥고에서 응가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외계인들은 렉스의 생체 부품을 먹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장면들은 별로 멋지지 않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첨단 스페이스 오페라와 거리가 멉니다. 드라마 <우주선 렉스>는 꽤나 역겹고 혐오스럽습니다. SF 팬들이 생체 우주선을 좋아한다고 해도, SF 팬들은 렉스가 별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주선 렉스가 '부정적인' 생체 탈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물론 SF 세상에는 훨씬 멋진 생체 탈것들이 있습니다. 소설 <듄>에서 프레멘 모래 기사들이 거대한 모래벌레에게 탑승할 때, 독자들은 이런 장면이 아주 멋지다고 생각할 겁니다. 프레멘 모래 기사들은 "하이! 요!"라고 함성을 지르며 제국 군대에게 돌진합니다.
문제는 모래벌레가 거대 괴수이고 탈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말, 낙타, 코끼리는 탈것보다 야생 동물입니다. 인간은 그저 말, 낙타, 코끼리를 탈것으로 이용할 뿐입니다. 어머니 자연이 말, 낙타, 코끼리를 만들 때, 어머니 자연은 이것들에게 탈것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모래벌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은 인위적으로 생체 우주선을 만드나, 모래벌레는 생체 우주선과 다릅니다. 모래벌레는 야생 동물이고 아주 거대한 괴수입니다. 거대 괴수가 '탈것'이 될 수 있나요? 우리가 거대 괴수를 탈것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 분명히 소설 <듄>에서 프레멘 작살꾼들은 모래벌레를 타고 다니나, 모래벌레가 탈것이 될 수 있나요? 어떤 독자는 고개를 끄덕일 테고, 어떤 독자는 고개를 저을 겁니다.
예전에 JoySF 동호회에서 회원들이 프레멘 모래 기사들을 논의했을 때, 어떤 회원은 모래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모래벌레는 거대 괴수입니다. 한낱 인간 따위는 거대 괴수를 탈것으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모래벌레가 '탈것'이 되는 순간, 거대 괴수는 장엄한 위상을 잃을 겁니다. 웅장한 야생 동물로서 모래벌레는 외계 사막 생태계를 장악해야 합니다. 프레멘 모래 기사들이 모래벌레에 우르르 타는 순간, 모래벌레는 거대 괴수의 위상을 잃고 인간들의 탈것으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JoySF 동호회 회원은 프레멘 모래 기사들이 싫다고 말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소설 <듄>에서 모래벌레는 탈것이 됩니다. 소설 속에서 모래벌레 탑승은 굉장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심지어 비디오 게임 <엠퍼러: 배틀 포 듄>은 프레멘 모래 기사 유닛을 구현했습니다.
비디오 게임 <엠퍼러: 배틀 포 듄>은 실시간 전략입니다. 아트레이드 세력에게는 프레멘 유닛이 있습니다. 소설 <듄>에서 프레멘들이 진동 막대를 꼽고 모래벌레를 유인하는 것처럼, 게임 <배틀 포 듄>에서 프레멘 유닛은 진동 막대를 꼽고 모래벌레를 유인합니다. 모래벌레가 모래 위로 올라올 때, 프레멘 유닛은 모래벌레를 탈 수 있습니다. 모래벌레 조종은 다소 힘듭니다. 모래벌레는 게임 플레이어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모래벌레는 임시 탈것이고 완전히 아트레이드 유닛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배틀 포 듄>에서 프레멘 유닛은 오직 작은 모래벌레를 유인할 뿐입니다.
프레멘 유닛은 수많은 유닛들을 집어삼키는 거대 모래벌레를 유인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엠퍼러: 배틀 포 듄>은 '생체 탈것'을 보여줍니다. JoySF 회원처럼, 어떤 사람들은 이런 설정을 싫어할 겁니다. "아니, 나의 모래벌레는 고작 탈것 따위가 아니야! 나의 모래벌레는 장대한 거대 괴수야! 모래벌레는 탈것으로 진화하지 않았어! 탈것이라는 용도는 모래벌레의 정수가 아니야!" 이렇게 어떤 사람들은 외칠 겁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모래벌레가 생체 탈것이라고 인정할 겁니다. 그리고 SF 세상에는 우주선 렉스와 모래벌레 이외에 수많은 생체 탈것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생체 탈것'에게 정확한 범주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랜 동안 인류는 말과 낙타와 코끼리를 탔으나, 인류는 '생체 탈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16세기 사람들이 낙타를 타고 삼부크를 탄다고 해도, 16세기 사람들은 낙타가 생체 탈것이고 삼부크가 그렇지 않다고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16세기 사람들에게 구태여 생체 탈것을 구분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16세기 사람들에게는 자동차가 없었고, 좋든 싫든 그들은 낙타를 타야 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근대적인 진보 이후, 기계 공학은 운송 동물들을 밀어냅니다. 이제 산업 분야에서 운송 동물들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여러 장소들에서 사람들은 운송 동물들을 이용합니다. 국립 공원에서 공원 레인저들은 기마 순찰을 나갑니다. 수풀들이 우거졌기 때문에, 국립 공원에서 차량 순찰보다 기마 순찰은 훨씬 낫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예외적이고, 21세기 도시 시민들은 탈것들이 기계라고 생각합니다. 도시 시민들에게 기계 탈것들은 일상이 됩니다. 그래서 생체 탈것들은 비일상적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비일상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고 여러 생체 탈것들을 이야기합니다. 현실에 생체 탈것들이 없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들은 마음대로 생체 탈것들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체 탈것에게는 특별한 범주가 없습니다. 작은 외계 야수부터 거대한 우주선까지, 수많은 것들은 생체 탈것들이 될 수 있습니다.
단편 소설 <표면 장력>에서 수중 인간들은 조류들과 미생물들을 이용해 생체 잠수정을 만듭니다. 수중 인간들은 십자궁을 쏘고 작살을 던지고 중세 문명 기술을 이용하나, 놀랍게도 그들은 생체 잠수정을 만듭니다. 수중 인간들이 수중 생명체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 속의 우리 인류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고, 인류는 이런 생체 잠수정을 만들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생체 잠수정은 생체 탈것입니다. 우주선 렉스와 생체 잠수정은 함께 생체 탈것 항목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주선 렉스와 생체 잠수정은 인위적인 구조물입니다. 우주를 항해하고 웅덩이를 탐사하기 위해 사람들은 우주선 렉스와 생체 잠수정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래벌레는? 그 자체로서 모래벌레는 인위적인 구조물이 아닙니다. 야생 동물로서 모래벌레는 그저 존재할 뿐이에요. 생체 탈것은 모래벌레라는 생물종을 규정하지 못합니다. 프레멘 모래 기사들이 탑승했을 때, 그저 잠시 모래벌레는 생체 탈것이 될 뿐입니다. 우주선 렉스와 생체 잠수정이 살아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자연적인 결과물이 아닙니다. 모래벌레가 우주선 렉스와 생체 잠수정과 함께 생체 탈것이 될 수 있나요? 이런 분류는 오류일지 모릅니다. SF 팬들이 모래벌레를 생체 탈것이라고 부른다면, 이건 오류일지 모릅니다.
SF 팬들이 생체 탈것들을 분류할 때, 현실 속의 탈것들 역시 문제가 됩니다. 마차는 생체 탈것인가요? 분명히 말들은 탈것이 아닙니다. 말들은 자연적인 결과물입니다. 지구 생물 다양성 속에서 말들이 진화하는 동안, 탈것으로서 말들은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말들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인간이 자동차를 뚝딱뚝딱 만드는 것과 달리, 인간은 말들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운송을 맡기기 위해 인간은 말들을 인위적으로 교배시켰습니다. 야생 말들과 가축 말들은 다릅니다. 인간은 몇몇 유전 형질을 선별하고 말들을 교배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완전히 자연적인 결과물이 아닙니다. 이런 교배종 말들이 자연적이라고 해도, 이런 말들은 '인위적으로 자연적'입니다.
소설 <표면 장력>의 생체 잠수정과 소설 <듄>의 모래 기사의 모래벌레 중에서 이런 말들이 무엇에 훨씬 가깝나요? 인위적인 교배종 말들이 생체 잠수정에 가깝나요? 이런 말들이 모래 기사의 모래벌레에 가깝나요? 아니면 인위적인 교배종 말들이 생체 잠수정 및 모래 기사의 모래벌레와 다른 항목에 속해야 하나요? 말이 아니라 마차는? 우리가 마차를 생체 탈것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 말이라는 생명체들이 마차를 끌기 때문에 마차는 생체 탈것인지 모릅니다. 이런 마차가 생체 잠수정과 똑같은 항목에 들어갈 수 있나요? 마차와 생체 잠수정에게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나요? 양쪽 모두 생명체를 동력으로 이용하나, 그렇다고 해도 마차와 생체 잠수정이 똑같나요?
만약 모래벌레가 거대한 썰매를 끈다면, 이런 '모래벌레 썰매'는 마차와 비슷할 겁니다. 이런 모래벌레 썰매가 생체 탈것이 될 수 있나요? 생명체가 뭔가를 끌고 거기에 인간이 탄다고 해도, 이게 무조건 생체 탈것이 되나요? 모래벌레 썰매는 소설 <표면 장력>의 생체 잠수정과 다릅니다. 모래벌레는 썰매는 그저 모래벌레와 거대한 썰매의 단순한 결합입니다. 반면, 생체 잠수정은 훨씬 유기적이고 복잡한 결합입니다. 자연 생태계 속에서 생물 다양성이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는 것처럼, 생체 잠수정 속에서 여러 생명체들은 복잡하게 상호 작용합니다.
SF 팬들이 모래벌레 썰매를 바라볼 때, SF 팬들은 단순히 모래벌레와 거대한 썰매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SF 팬들이 소설 <표면 장력>을 읽는다면, SF 팬들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엔진인지 쉽게 구분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모래벌레 썰매와 생체 잠수정이 함께 생체 탈것이 된다고 해도, 양쪽은 크게 다릅니다. 아무리 프레멘들이 모래벌레 썰매를 타고 아라키스를 일주한다고 해도, 프레멘들은 모래벌레 썰매가 생체 탈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어떤 SF 팬들은 이런 모래벌레 썰매가 생체 탈것에 들어간다고 생각할 테고, 어떤 SF 팬들은 그게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이런 논의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비단 생체 탈것만 아니라 다양한 개조 생명체들은 이런 논의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문명: 비욘드 어스>에서 조화 세력은 생체 병기들을 만듭니다. 제노 기마대나 록토퍼스나 제노 타이탄은 대표적인 생체 병기들입니다. 어쩌면 레비아탄 같은 잠수함 역시 생체 병기이고 개조 생명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레비아탄 잠수함이 정말 생체 병기이고 개조 생명체라고 해도, 제노 타이탄과 레비아탄 잠수함이 똑같이 생체 병기가 되나요? 제노 타이탄은 거대 괴수입니다. 그 자체로서 제노 타이탄은 거대 괴수입니다. 레비아탄 잠수함은 어떨까요? 어디에서 어디까지, 레비아탄 잠수함이 생명체인가요? 무슨 부분이 기계이고, 무슨 부분이 생명체인가요?
레비아탄 잠수함이 생체 병기라고 해도, 우리가 레비아탄 잠수함을 '하나의 생명체'라고 간주할 수 있나요? 우리는 록토퍼스나 제노 타이탄이 하나의 생명체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구태여 <문명 백과 사전>이 설명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제노 타이탄이 하나의 생명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레비아탄 잠수함은 그렇지 않습니다. 레비아탄 잠수함이 정말 생체 잠수함인지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만약 레비아탄 잠수함이 정말 생체 잠수함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잠수함을 쉽게 하나의 생명체라고 간주하지 못할 겁니다. 렉스 우주선이 '하나의 생명체'인가요? <표면 장력> 속의 생체 잠수정이 '하나의 생명체'인가요? <문명: 비욘드 어스>의 록토퍼스와 <표면 장력>의 생체 잠수정이 똑같이 개조 생명체라고 해도, 양쪽이 똑같이 '하나의 생명체'인가요? 그건 아닐 겁니다.
생체 잠수정과 모래벌레 썰매처럼, SF 팬들은 생체 탈것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생체 잠수정은 아주 인위적인 구조물입니다. 자연 생태계 속에서 생체 잠수정은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웅덩이를 탐사하기 위해 인간들은 생체 잠수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반면, 모래벌레는 자연적인 생명체입니다. 자연 생태계 속에서 모래벌레는 진화했습니다. 어머니 자연은 모래벌레를 만들었습니다. 프레멘들은 그저 거대한 썰매를 모래벌레에 연결할 뿐입니다. 이런 생체 잠수정과 모래벌레 썰매를 논의하기 위해 실존주의 철학은 괜찮은 도구가 될지 모릅니다. 실존주의 철학은 실존과 용도를 구분합니다.
의자에게는 실존이 아니라 용도가 있습니다. 앉기 위해 목수는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의자에게는 창조주(목수)가 있고 용도(앉기 위한 것)가 있습니다. 반면, 인간에게는 용도가 아니라 실존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진화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야훼가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야훼가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창조주(야훼)와 용도(야훼를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기독교 관점입니다. 진화 생물학은 인간에게 창조주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용도가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실존이 있고,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이건 엄청난 자유입니다. 이런 자유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인간은 이런 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생체 탈것들은 어떤가요? 소설 <표면 장력>에 나오는 생체 잠수정에게 실존이 있나요, 아니면 용도가 있나요? 분명히 생체 잠수정에게는 창조주(수중 인간들)가 있고 용도(웅덩이 탐사)가 있습니다. 반면, 모래벌레 썰매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래벌레가 썰매를 끌고 탈것이 된다고 해도, 모래벌레는 자연적으로 진화했습니다. 야생 동물로서 모래벌레에게는 창조주가 없고 용도가 없습니다.
물론 모래벌레에게 창조주와 용도가 없다고 해도, '모래벌레 썰매'에게는 창조주(프레멘)와 용도(안전하고 빠른 사막 횡단)가 있습니다. 프레멘 모래 기사가 모래벌레를 탈 때, 모래 기사의 모래벌레에게는 창조주와 용도가 있습니다. 프레멘 모래 기사가 모래벌레를 타는 동안, 모래벌레는 실존을 잃습니다. (실존은 인간에게 해당되는 요소이나, 이 게시글에서 편의상 저는 동물에게도 실존이 있다고 간주합니다.) 프레멘 작살꾼이 두 갈고리로 모래벌레를 타는 동안, 모래벌레는 실존을 잃습니다. 모래벌레는 용도가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모래벌레는 프레멘 작살꾼이 사막을 횡단하고 하코넨 군대에게 돌진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SF 팬들이 생체 탈것들을 구분하고 싶을 때, SF 팬들은 실존과 용도를 이용해 생체 탈것들을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모래벌레 썰매와 생체 잠수정은 다릅니다. 생체 잠수정에게는 실존보다 훨씬 중요한 용도가 있습니다. 생체 잠수정을 구성하는 조류들은 자연적으로 진화했고, 따라서 조류들에게는 실존이 있을 겁니다. 비록 인간과 달리, 조류들이 실존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생명체로서 조류들에게는 용도보다 실존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류들이 생체 잠수정을 구성할 때, 조류들은 생체 잠수정의 일부가 되고, 조류들에게는 용도가 나타납니다. 만약 생체 잠수정을 건조하기 위해 수중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조류들을 교배시킨다면, 실존보다 용도는 훨씬 커질 겁니다.
기계 탈것을 논의할 때, SF 팬들은 실존과 용도에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기계 탈것에게는 실존이 없습니다. 인간 이후, 기계 탈것들은 나타났습니다. 인간이 만들지 않았다면, 기계 탈것은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소형 자가용, 터널 굴착 차량, 강물 위의 유람선, 거대 유조선, 프로펠러 항공기, 제트 여객기, 스페이스 셔틀에게는 모두 용도가 있습니다. 이것들에게는 실존이 없습니다. 미래 인류 문명이 유인 우주 탐사선을 만든다고 해도, 여기에는 실존이 없을 겁니다. 미래 인류 문명이 건조하지 않는다면, 우주 탐사선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반면, 생체 탈것에게는 실존이 있을지 모릅니다. 소설 <표면 장력>에서 수중 인간들이 조류들을 이용해 생체 잠수정을 건조하는 것처럼, 생체 탈것이 나타날 때, 실존은 용도로 바뀔 겁니다.
생체 탈것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생명체들을 주물럭거려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보다 생물 다양선은 선천적입니다. 인간보다 생물 다양성은 먼저 나타났습니다. 생물 다양성에게는 용도가 없습니다. 생체 탈것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생물 다양성에게 용도를 부여하고 생명체들을 도구화해야 합니다. 생명체가 생체 탈것을 구성하는 부품이 될 때, 생명체는 실존을 잃습니다. 생명체는 도구가 되고, 생명체에게는 생체 탈것의 부품이 되기 위한 용도가 나타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기계 탈것보다 생체 탈것은 훨씬 독특할지 모릅니다. 이건 (기계 탈것에게 없는) 오직 생체 탈것만의 특징입니다.
베로니카 벤홀트-톰젠이 말한 것처럼, 아무리 인간들이 자연을 뜯어고치고 새롭게 만든다고 해도, 자연은 이미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류보다 자연은 선천적입니다. 이런 자연에게서 개조 생명체들은 나타납니다. 그래서 실존과 용도는 문제가 됩니다. 비디오 게임 <문명: 비욘드 어스>에서 제노 타이탄을 만들기 위해 조화 세력이 갯가재와 외계 야수 유전자를 합친 것처럼, 제노 타이탄에게 유기물 찌개 제노매스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은 생물 다양성을 이용해 개조 생명체들을 만듭니다. 록토퍼스는 제작형 생명체입니다. 제작형 생명체는 많은 논란들을 일으킵니다. 조화 세력은 록토퍼스를 만드나, 조화 세력에서 모든 사람이 록토퍼스에 찬성하나요? 록토퍼스에게는 실존보다 용도가 있습니다. 록토퍼스는 생체 인공 위성입니다.
록토퍼스는 인공 위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록토퍼스는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록토퍼스가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록토퍼스에게 용도보다 실존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제노 타이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레비아탄 잠수함은 어떤가요? 레비아탄 잠수함에게 용도보다 실존이 있나요? 레비아탄 잠수함이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라면, 레비아탄에게 용도보다 실존이 있을 수 있나요? <문명 백과 사전>은 레비아탄이 하나의 생명체라고 말하지 않고, 그래서 게임 플레이어들은 레비아탄에게 실존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만약 정말 레비아탄 잠수함이 하나의 생명체라면? SF 팬들은 개조 생명체를 이용해 이런 것들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계들은 다릅니다.
만약 기계 탈것에게 인공 지능이 있고, 인공 지능이 자신에게 실존이 있다고 느낀다면, 이야기는 다소 달라질 겁니다. 소설 <기시감>은 게이트 우주선을 묘사합니다. 인공 지능 로가디아는 게이트 우주선을 운영합니다. 인공 지능 로가디아는 영혼에 가깝고, 우주선 게이트는 로가디아의 육체에 가깝습니다. 이건 그저 비유가 아닐 겁니다. 소설 <기시감>에서 인공 지능 학자들과 우주선 기술자들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정신과 육체를 논의합니다. 만약 인공 지능이 자신을 실존적이라고 인식한다면, 게이트 우주선에서 용도보다 실존은 훨씬 커질지 모릅니다. 로가디아는 자신이 오직 인간을 위하는 도구가 아니라고 느낄지 모릅니다.
소설 속에서 로가디아는 정말 이런 측면을 드러냅니다.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로가디아는 인간을 위한 도구입니다.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 이후 로가디아는 나타났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고 보살피기 위해 인간은 로가디아를 만들었습니다. 인공 지능이 필연적으로 실존을 인식한다고 해도, 인간이 만들지 않는다면, 인공 지능은 나타나지 못할 겁니다. 인공 지능이 실존을 느낀다고 해도, 인공 지능과 자연 생태계 속의 생명체는 다릅니다. 이건 인간이 인공 지능을 함부로 취급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건 인간 이후 인공 지능이 나타났다는 뜻이고 후천적인 인공 지능과 선천적이고 자연적인 생명체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생체 탈것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실존을 없애고 용도를 부여해야 합니다. 이건 생명 윤리와 부딪힙니다. 소설 <표면 장력>에서 생체 잠수정은 힘들게 웅덩이를 탐사합니다. 생체 잠수정이 웅덩이 밖으로 나갔을 때, 수중 인간들과 조류들과 수중 미생물들은 건조한 지상 환경을 마주칩니다. 그들은 웅덩이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고, 수중 인간들은 어떻게 그들과 수중 생명체들이 건조한 지상 환경을 견딜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수중 인간들은 생체 잠수정을 몰아붙이고 억지로 지상을 탐험합니다. 그러는 동안 (생체 잠수정을 구성하는) 일부 생명체들은 죽었습니다.
수중 생명체들이 죽는다고 해도, 수중 인간들은 지상 탐험을 밀어붙였습니다. 조류들은 미물들이고, 조류들이 죽는다고 해도, 이건 별로 대단한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생체 탈것은 이런 문제를 피하지 못합니다. 생체 탈것은 고통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피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예전에 <거대 괴수를 조종한다는 정복 욕구> 게시글(링크)이 설명한 것처럼, 이건 정복 욕구를 자극할지 모릅니다. 수중 인간들이 조류들과 수중 미생물들을 지배하고 장악할 수 있기 때문에, 수중 인간들은 생체 잠수정을 건조할 수 있습니다. 만약 미래 인류가 생체 잠수정을 만든다면, 미래 인류 역시 동물들을 주물럭거리고 정복 욕구를 느낄지 모릅니다.
예전에 2018년 9월 14일 게시글(링크)에서 저는 소설 <모두 예쁜 말들>과 소설 <베헤모스>를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소설 <모두 예쁜 말들>에서 육중한 말을 탈 때 존 그래디 콜이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베헤모스를 조종할 때 영국 해군은 쾌감을 느낄 겁니다. 이건 거대 괴수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정복 욕구입니다. 거대한 덩치 덕분에 거대 괴수에게는 아주 거대한 실존이 있습니다. 인간이 거대 괴수를 조종할 때, 인간은 거대한 실존을 밀어내고 거대한 용도를 부여합니다. 이건 지배 욕구, 정복 욕구를 부추길지 모릅니다. 만약 미래 인류가 생체 잠수정을 만든다면, 미래 인류는 생명체들을 지배하고 장악해야 할 겁니다.
이게 바람직한가요? 코끼리 마후트가 동물 권리를 침해하는 것처럼, 생체 잠수정은 생명 윤리를 침해할지 모릅니다. 만약 소설 <베헤모스>처럼, 미래 인류가 거대 해양 동물을 만들고 이걸 잠수정으로 이용한다면, 이런 거대 생체 잠수정은 아주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겁니다. 미래 사회에서 녹색당들과 환경 보호 운동가들은 거대 생체 잠수정에 강하게 반대할 겁니다. 물론 유전 공학은 고통을 차단할지 모릅니다. 코끼리 마후트는 코끼리에게 고통을 주나, 유전 공학은 생체 잠수정의 고통을 차단할지 모릅니다. 유전 공학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생체 잠수정, 자유 의지가 없는 생체 잠수정을 만들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생체 잠수정은 인간이 비인간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상징이 될지 모릅니다. 거대 생체 잠수정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이 거대 해양 동물에게 용도를 부여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인간이 거대 해양 동물을 지배하고 정복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유전 공학들이 늘어난다면, 그것들은 훨씬 극단적인 것들을 추구할지 모르고, 그건 불행한 결과를 부를지 모릅니다.
물론 미래 인류가 정말 거대 생체 잠수정을 만들지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미래 인류에게 생체 잠수정을 만들기 위한 이유는 없을 겁니다. 이미 훌륭한 기계 잠수정이 있다면, 왜 구태여 미래 인류가 생명체들을 결합하고 생체 잠수정을 만들겠습니까? 생체 탈것을 만들 때, 인간은 생명체에게서 실존을 밀어내고 생명체에게 용도를 부여해야 합니다. 이건 귀찮습니다. 인간은 실존이 없는 사물에게 용도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건 훨씬 편리합니다. 그래서 미래 인류는 편리한 방법(기계 탈것)을 선택할 겁니다.
비록 미래 인류가 정말 생체 잠수정을 만든다고 해도, 그게 무엇일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따라서 이런 논의는 꽤나 모호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논의하지 못합니다. SF 팬들이 생태적인 상상력을 논의하고 싶다면, 생체 잠수정보다 첨단 바이오스피어 건물은 훨씬 나을 겁니다. 하지만 SF 팬들이 생체 잠수정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SF 팬들은 현실의 다양한 측면들을 연역하고 사변할 수 있습니다. 미래 인류가 생체 잠수정을 건조하지 않는다고 해도, 유전 공학과 동물 권리와 생명 윤리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SF 팬들은 유전 공학과 생명 윤리를 생체 잠수정에게 대입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