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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언클레임드 월드>, 내용과 형식 관계 본문

SF & 판타지/어떻게 읽는가

<언클레임드 월드>, 내용과 형식 관계

OneTiger 2020. 7. 30. 20:33

 

 

"오키도키, 매킨토시, 남양주시, 이다도시~." 이렇게 라디오 방송 <정오의 희망곡>에서 진행자 김신영은 언어 유희를 구사합니다. 이 문장은 네 단어들을 늘어놓으나, 이 단어들은 뭔가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흔히 단어들은 뭔가를 가리키나, 이 문장에서 단어들은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 문장에는 내용이 없습니다. 이 문장은 남양주시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비록 청취자가 남양주시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고 해도, 이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보다 형식입니다. 이 문장은 네 단어들, 네 음절들을 늘어놓고, '~시'를 반복하고, 운율을 맞춥니다.

 

운율, 형식을 위해 이 문장은 오키도키, 매킨토시, 남양주시, 이다도시를 늘어놓습니다. 이 문장은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할 수 있다고 증명합니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 언제나 오직 내용만 전달하기 위해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이 보여주는 것처럼, 내용보다 형식은 중요할 수 있습니다.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공 공장장이다." 이 문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문장에서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아무개입니다. 하지만 이 문장이 강 아무개를 설명하기 원하나요? 강 아무개를 가리키기 위해 이 문장이 존재하나요? 이 문장에게 내용이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내용(강 공장장)을 가리키기 위해 이 문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은 강 아무개가 간장 공장 공장장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비슷한 발음들입니다. 비슷한 발음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문장에서 내용보다 형식은 두드러집니다. 내용보다 형식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이 문장은 다른 언어가 되지 못합니다. 만약 스와힐리어가 이 한국어 문장을 번역한다면, 이 번역은 의의를 잃을 겁니다. 만약 스와힐리어가 의의를 살리기 원한다면, 스와힐리어는 비슷한 발음들을 늘어놓고 이 문장을 직역하기보다 의역해야 합니다. 형식은 번역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The rain in Spain stays mainly in the plain. 스페인에서는 주로 평원에서 비가 내립니다." 이 문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문장은 스페인과 평원과 기후를 말하나, 내용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페인에서 주로 평원에서 비가 정말 내리나요? 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후학자들은 이 문장이 옳거나 틀리다고 동의하거나 반박할 수 있으나, 기후학자들과 상관없이, 이 문장은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것이 형식, 비슷한 발음들이기 때문입니다. rain, Spain, mainly, plain 같은 단어들은 똑같은 '~ain'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이 문장을 발음할 때, 우리는 특정한 형식(운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한국어가 이 영어 문장을 번역한다면, 이 번역은 의의(형식)를 잃을 겁니다. "스페인에서는 주로 평원에서 비가 내립니다." 이 문장에서 '스페인, 주로, 평원, 비'는 똑같은 발음들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이 문장에는 운율이 없습니다. 영어 문장에서 운율(~ain)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어 번역이 운율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이 번역은 의의를 잃습니다. 이 사례들은 말장난에 가까운 것 같으나, 문학 작가들 역시 운율을 중시합니다. 김신영이 '~시'를 연이어 발음하는 것처럼, 알프레드 테니슨은 발음이 중요하다고 인식했습니다. 알프레드 테니슨은 cellar door가 아름다운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cellar door는 ~ar, ~or를 두 번 반복합니다. 게다가 c, l, l, r, r 같은 부드러운 자음들이 연이어 나타나기 때문에, e와 a와 o가 부드러운 자음들을 연결하기 때문에, cellar door는 부드럽게 흘러갑니다. cellar door에는 ~ish 같은 마찰음이 없습니다. snake 같은 단어는 스치고 부딪히나, cellar door는 스치지 않고 부딪히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결처럼, 이 단어는 부드럽게 흘러갑니다. 비단 알프레드 테니슨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이 단어가 아름답다고 느낄 겁니다. 하지만 만약 한국어가 이 단어를 번역한다면, 이 번역은 형식을 잃을 겁니다. cellar door와 달리, '지하 저장실 문'은 부드럽게 흐르지 않습니다.



만약 알프레드 테니슨이 '지하 저장실 문'을 듣는다면, 알프레드 테니슨은 이 단어가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을 겁니다. 김신영의 언어 유희부터 cellar door까지, 이 사례들은 언어에서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할 수 있다고 보여줍니다. 이것들 이외에 다른 사례들 역시 많습니다. 많고 많은 사례들은 언어에서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할 수 있다고 보여줍니다. 시인들은 이 점에 주목합니다. 종종 시인들은 내용보다 형식(운율)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이 상황에서 번역가는 골치를 썩혀야 합니다. cellar door와 지하 저장실 문이 다른 발음인 것처럼, 번역이 형식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언제나 번역은 형식을 가로막지 않습니다. 문학 평론가들은 거트루드 스타인이 반복을 중시했다고 분석합니다. "Rose is a rose is a rose is a rose." 이 문장에서 형식은 두드러지나, 이 문장을 번역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 문장에서 형식은 특정한 발음보다 단어 반복입니다. <Rain in Spain>과 달리, 이 장미 문장을 번역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Rain in Spain>처럼, 이 장미 문장에서도 형식은 두드러집니다. 이렇게 언어에서 형식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종종 사람들이 어떤 문장을 평가할 때, 사람들은 내용보다 형식을 주목합니다. 게다가 비단 언어만 아니라 여러 분야들에서 형식과 내용은 갈등합니다.



만약 형식과 내용이 갈등하지 않는다면, cellar door와 지하 저장실 문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만약 형식과 내용이 갈등하지 않는다면, 'Rain in Spain'은 'Rain in España'가 될 수 있습니다. 스페인과 에스파냐는 똑같은 대상을 가리킵니다. 양쪽 모두 포르투갈 오른쪽의 이베리아 반도 국가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스페인과 달리, 에스파냐에게는 '~에인' 발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레인과 스페인은 어울릴 수 있으나, 레인과 에스파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레인과 에스파냐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형식과 내용은 갈등합니다. 형식과 내용이 갈등하기 때문에, 종종 사람들은 하나를 선택합니다.

 

여자친구 엄지는 노래 <눈의 시간> 작사에 참가했습니다. 엄지는 자신이 가사를 쓰는 동안 자신이 형식과 내용을 고민했다고 설명합니다. 만약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면, 가사와 곡조는 어울려야 합니다. 만약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면, 곡조에서 가사는 (어느 정도) 독립하고, 가사는 내용에게 치중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우선인가요? 가사가 곡조를 살리기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하나요? 아니면 곡조에서 가사가 독립하고 내용을 스스로 전달할 수 있나요? "두 눈을 떴을 땐, 짙은 온기가 날 감싸 안아주고~♬" 이 부분에서 엄지는 부드러운 곡조와 부드러운 발음과 부드러운 내용을 함께 추구합니다.

 

 

 

 

위 노래 영상 02:01~02:12 부분에서 '날 감싸 안아주고'는 '나를 감싸고'가 되지 못합니다. 부드러운 곡조에 맞추기 위해 가사는 '감싸 안아주고'라고 표현합니다. 아무리 '감싸고'와 '감싸 안아주고'가 비슷한 내용을 뜻한다고 해도, 이 가사는 곡조를 따라야 하고, 그래서 '감싸고'는 좋은 가사가 되지 못합니다. 노래 <눈의 시간>에서 엄지가 내용과 형식을 고민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뭔가를 표현할 때, 사람들은 내용과 형식을 고민합니다. 이건 언제나 내용과 형식이 대립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종종 형식은 내용을 강조합니다. 아무리 내용이 똑같다고 해도, 형식이 바뀔 때, 내용 역시 자신을 부각합니다.

 

"해답 같은 것은 없다. 우리는 해답을 찾지 못한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우리는 해답을 찾지 못한다. 해답이 없다는 것이 인생의 해답이다." 이 시(詩)는 인생에서 정석(定石)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인생에서 정석이 없기 때문에, 인생에는 아주 다양한 경로들이 있습니다. 인생과 의자는 다릅니다. 앉기 위해 목수는 의자를 만듭니다. 의자에게는 특정한 목적(앉기)이 있습니다. 만약 의자가 망가진다면, 인간은 의자에 앉지 못할 테고, 의자는 목적을 잃을 겁니다. 반면, 인생에게는 특정한 목적이 없습니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인간이 그저 유전 형질을 퍼뜨리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이 유전 형질을 위한 도구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은 인생에게 훨씬 나은 목적이 있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이게 가시적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정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목적보다 어떤 목적은 낫지 않습니다. 다양한 목적들에게는 다양한 가치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인생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문학은 인생을 반영합니다. 문학이 설명문이 아니기 때문에, 문학이 거울, 반영, 모방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문학을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비(非)문학 역시 다양한 해석들을 제시하나, 문학이 반영이기 때문에, 비문학보다 문학은 훨씬 다양한 해석들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위 시는 '해답이 없다는 것이 인생의 해답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시에게는 특정한 형식이 있습니다. "Rose is a rose is a rose is a rose."처럼, "해답이 없다는 것이 인생의 해답이다."는 '해답'을 (두 번) 반복합니다. "인생에는 정석이 없다."와 "해답이 없다는 것이 인생의 해답이다."는 다릅니다. 전자는 반복하지 않으나, 후자는 반복하고 해답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후자는 인생이 다양해질 수 있다고 강조할 수 있습니다. 두 문장은 인생이 다양해질 수 있다고 똑같이 뜻하나,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전자보다 후자는 내용을 훨씬 강조합니다. 아무리 내용이 똑같다고 해도, 형식은 내용을 강조합니다.



SF 장르 역시 이 논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SF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은 비(非)현실입니다. 만약 우주선 인공 지능이 인간이 된다면, 현실에서 우주선 인공 지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건 SF 설정이 될 겁니다. 하지만 오직 현실에서만 우리는 살아갑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절대 벗어나지 못합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절대 벗어나지 못하나, SF 장르는 우주선 인공 지능 같은 비현실을 이야기합니다. 이건 너무 황당무계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SF 장르가 황당무계하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SF 소설보다 주류 문학이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비현실은 현실을 환기할 수 있습니다.

 

앤 레키는 <사소한 정의>를 썼습니다. 소설 <사소한 정의>에서 은하 제국 사람들은 여자 대명사 '그녀'를 사용합니다. 여자 대명사 '그녀'는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은하 제국 사람들은 남자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은하 제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직 인류 문명은 달을 개척하지 못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은하 제국은 공상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정의>가 황당무계한 공상인가요? 하지만 이 'SF' 소설은 여자 대명사를 강조합니다. 이 소설이 여자 대명사를 강조하기 때문에, 독자는 성별 고정 관념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왜 언제나 남자가 인류를 대표하나요? 이게 편견이 아닌가요?



<사소한 정의>에서 은하 제국 사람들이 '그녀'를 사용하는 것처럼, 여자는 인류를 대표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남자가 인류를 대표한다고 착각하나, 이건 그저 가부장 편견에 불과합니다. 가부장 제도가 여자들을 돌봄 노동들에 억지로 밀어넣고 돌봄 노동들을 착취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여자가 열등하다고 그저 착각할 뿐입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 역시 돌봄 노동들을 착취합니다. 많은 자본주의 사회들에서 돌봄 노동들은 그저 개인적인 괴로움에 불과합니다. 분명히 자본주의 사회와 돌봄 노동 착취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독자는 <사소한 정의>를 읽고 자본주의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정의> 없이, 우리는 가부장 제도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와 여성 해방>에서 주디스 오어는 사이언스 픽션을 본격적으로 논의하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 없이, 주디스 오어는 가부장 제도로서 자본주의를 얼마든지 비판합니다. 가부장 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SF 소설은 필수적인 도구가 아닙니다. 하지만 독자는 어떻게 은하 제국 사람들이 여자 대명사를 사용하는지 읽을 수 있습니다. <사소한 정의>는 비현실 설정(은하 제국 언어 문화)을 제시하고 현실 속의 가부장 편견을 환기합니다. 비현실 설정은 현실 속의 가부장 편견을 환기할 수 있습니다. SF 장르에게는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건 SF 장르가 현실을 필연적으로 환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SF 장르는 비현실 설정을 묘사합니다. 이건 사실 판단입니다. 비현실 설정은 현실을 환기합니다. 이건 가치 판단입니다.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은 다른 위상에 속합니다. 그저께 7월 28일 게시글(링크)이 두 해석(SF 장르는 아주 거대한 분류이다, SF 장르는 표면적인 유사성이다)을 대조했을 때, 이 게시글은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을 대조했습니다.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이 다른 위상에 속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7월 28일 게시글을 비판할지 모릅니다. 이 비판은 타당하나, 사실 판단은 가치 판단을 유발합니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만약 사실 판단으로서 비현실 설정이 가장 폭넓은 분류 기준이 된다면, 사람들은 "왜 우리가 비현실 설정을 읽는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비현실은 가장 폭넓은 기준입니다. 동시에 현실에서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왜 우리가 현실보다 비현실을 읽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대답들이 있고, 환기 역시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비현실은 현실을 환기합니다. 비록 이 장점이 그저 필연보다 잠재력에 불과하다고 해도, 적어도 주류 문학보다 SF 소설은 현실을 환기합니다.

 


"해답이 없다는 것이 인생의 해답이다."에서 형식이 내용을 강조하는 것처럼, <사소한 정의>에서 비현실은 현실을 환기합니다. 형식이 내용을 강조하는 것처럼, 비현실은 현실을 환기합니다. SF 장르는 이 논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형식은 비현실 설정이 되고, 내용은 현실이 됩니다. 비록 형식이 내용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내용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비록 형식이 해답을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인생에게 정석이 없다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식이 해답을 두 번 반복하기 때문에, 이 형식(반복)은 내용(인생은 다양하다)을 강조합니다. 듀나님은 왜 똑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는지 비난한 적이 있으나, 거트루드 스타인은 듀나님이 틀렸다고 지적합니다.


SF 역시 비슷합니다. 비디오 게임 <언클레임드 월드>는 외계 행성에서 생존자들이 새로운 문명을 개척한다고 묘사합니다. 아아아아아니, 이건 너무 황당합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외계 자연 생태계를 찾지 못했습니다. 우주 생물학자들은 태양계 외부 행성이 자연 생태계를 갖추었다고 증명하지 못합니다. 아직 우주 생물학자들은 태양계 내부의 외계 생태계를 찾지 못했습니다. 21세기 초반 우주 생물학은 지구가 유일한 생명의 요람이라고 규정합니다. 만약 우주 생물학이 외계 생태계를 증명한다면, 이건 전대미문의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나, 아직 우주 생물학은 외계 생태계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언클레임드 월드>는 너무 황당무계한 공상입니다. 그래서 SF 설정(외계 자연 환경)에게 아무 가치가 없나요?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강조하는 것처럼, 비현실 설정은 현실을 환기합니다. 외계 행성에서 먹고 살기 위해 생존자들은 자연 환경을 가공합니다. 자연 환경 없이, 생존자들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아무리 외계 행성 생태계가 황당무계하다고 해도, 심지어 이 황당무계한 설정에서조차 인류는 자연 환경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심지어 이 황당무계한 설정에서조차 인류가 자연 환경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이건 자연과 문명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첨단 과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자연 없이, 문명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언클레임드 월드>를 플레이하고 자연과 문명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외계 행성 생태계 없이, 게임 플레이어는 자연과 문명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인터뷰에서 제이슨 무어는 자연과 문명이 별개가 아니라고 주장하나, 제이슨 무어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없이, 우리는 자연과 문명이 별개가 아니라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지어 황당무계한 비현실 설정에서조차 자연에서 문명이 독립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는 문명이 자연에게 의존한다고 훨씬 강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세계화 자본주의입니다. 안드레아스 말름이 인류세 신화를 비판하는 것처럼, 여러 과학자들은 인류 전체가 환경 오염을 저질렀다고 설명합니다.



최근에 엄청난 폭우들은 주된 화제입니다. 심지어 코로나 19 사태보다 엄청난 폭우들은 훨씬 거대한 재앙입니다. 기후 변화는 엄청난 폭우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왜 기후 변화가 나타났나요? 인류 전체가 환경 오염을 저질렀기 때문에? 하지만 산업 자본주의가 화석 연료들을 신나게 태우는 동안, 식민지 민중들은 굶주렸고 병들었습니다. 특히, 식민지 여자들은 훨씬 심각한 고초들을 겪었습니다. 자본주의가 가부장 제도이기 때문에, 식민지 여자들은 이중적인 약자가 됩니다. 모든 인간은 똑같은 인류가 아닙니다. 계급, 성별, 인종은 수직적인 구조가 되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착취합니다.

 

하지만 인류세라는 용어는 이 사실을 은폐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배적이고, 자본주의가 자연과 문명을 분리하고 외부 비용을 떠벌이기 때문에, 심지어 과학자들조차 자연과 문명이 별개라고 믿습니다. 안드레아스 말름은 이게 인류세 신화라고 비판합니다. 'SF' 게임 <언클레임드 월드>가 자연과 문명을 환기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인류세 신화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형식이 내용을 강조하는 것처럼, 비현실 설정이 현실을 환기하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사소한 정의>와 <언클레임드 월드>는 가부장 제도와 인류세 신화를 환기합니다. SF 장르는 이 논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형식과 내용 관계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형식과 내용은 갈등하고, SF 장르는 예외가 아닙니다. <사소한 정의>와 <언클레임드 월드>는 똑같은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하지만 전자는 소설이고, 후자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내용(스페이스 오페라)은 똑같으나, 형식(소설과 게임)은 다릅니다. 만약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면, 스페이스 오페라보다 소설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사소한 정의>와 <언클레임드 월드>는 멀어질 겁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언클레임 월드>보다 '스페이스 오페라' <사소한 정의>는 단편 소설 모음집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게 가까워질 겁니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이 김초엽 작가를 포함하는 것처럼, SF 역시 이 단편 소설 모음집에 속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서 SF 설정은 부차적입니다. 이 모음집은 사이언스 픽션보다 문학을 중시합니다. 아무리 게임 제작자가 훌륭한 보드 게임을 만든다고 해도, 이 보드 게임은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속하지 못합니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은 문학(형식)을 중시하고, <사소한 정의>가 소설이기 때문에,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과 <사소한 정의>는 비슷해질 수 있습니다. 이 기준에서 <사소한 정의>와 <언클레임드 월드>는 비슷하지 않습니다.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할 때, 이 기준이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과 <사소한 정의>를 묶고 <언클레임드 월드>를 밀어내는 것처럼, 형식과 내용은 갈등합니다. 내용과 형식에서 SF 장르는 긍정적인 함의를 끌어내고 스페이스 오페라가 현실 속의 산업 자본주의와 환경 오염을 환기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SF 장르는 대립적인 함의를 끌어내고 형식이 장르를 해체한다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100~200년 이후, 새로운 형식과 매체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묘사할지 모릅니다. 이게 SF 장르에 속할 수 있나요? 그때 또 다시 SF 팬들은 형식과 내용 관계를 고민할 겁니다.

 

 

※ 사진 <Olives Rain Green Tree Spain> 출처: MaliAroestiPhotography,

https://pixabay.com/photos/olives-rain-green-tree-spain-504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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