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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비록 이 예고편이 기후 변화를 묘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것과 솔라펑크는 비슷합니다.] 코로나 19 사태는 많은 것들을 너무 암울하게 바꾸었습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너무 암울하기 때문에, 많고 많은 사람들은 이 사태가 끝나기 기다립니다. 아무도 언제 이 전염병 사태가 끝날지, 어떻게 이게 끝날지, 심지어 이게 진짜 끝날지조차 장담하지 못하나, 아주 간절하게 많고 많은 사람들은 세계적인 전염병 사태가 끝나기 기다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만약 코로나 19 사태가 끝난다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예상합니다. 이게 올바른 예상인가요? 아주 간절하게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처럼, 만약 코로나 19 사태가 끝난다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어쩌면 이건 올바른 예상인지 모릅니다. 아니면 이..
※ 이 게시글은 소설 , 소설 , 비디오 게임 의 대략적인 내용들을 누설합니다. [위쪽과 아래쪽 건물은 모두 바이오 돔입니다. 하지만 아래쪽은 기후 변화를 직접 비판하지 못합니다.] 위 그림은 바이오 돔을 보여줍니다. 위쪽과 아래쪽 모두 바이오 돔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양쪽이 똑같은 바이오 돔이라고 해도, 양쪽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위쪽 바이오 돔은 존재합니다. 위쪽 바이오 돔은 현실에 속합니다. 반면, 아래쪽 바이오 돔은 현실에 속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아래쪽 바이오 돔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여러 바이오 돔 실험들은 존재하고, 과학자들은 이런 실험들에 참가하거나 이런 실험들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드 SF 작가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을 쓰기 원한다면, 하드 SF 작..
[과도한 마나 추출은 불안정한 환경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판타지 설정이 환경 아포칼립스가 될 수 있나요?] 비디오 게임 에는 네더스톰(Netherstorm) 지역이 있습니다. 국내 번역 판본은 네더스톰 지역을 '황천의 폭풍'이라고 부릅니다. 네더스톰 지역은 건조하고 황량하고 기이합니다. 전반적인 색감은 보라색이고, 가파르고 험난한 지면은 황량하고, 부서진 바위들은 둥실둥실 떠다닙니다. 캘타스 선스트라이더 세력이 나루 우주선을 이용해 지면에서 마나를 추출하기 때문입니다. 캘타스 세력이 악마들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곳곳에는 악마들이 있습니다. 과도한 자원 채굴이 자연 환경을 망치는 것처럼, 네더스톰 지역에서 마나 추출은 별로 긍정적인 것 같지 않습니다. 게임 설정은 네더스톰이 무너질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 이 게시글에는 비디오 게임 의 내용 누설(챕터 2 현상금 퀘스트)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삼림 레인저들은 선한 역할입니다. 만약 삼림 레인저들이 과격해진다면, 이게 폭력일까요?] 비디오 게임 는 크게 네 챕터들로 이루어집니다. 챕터 2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항구 도시 포트 라스트에 방문합니다. 포트 라스트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현상금 퀘스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네 수감자들이 도망쳤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가 챕터 2를 진행하는 동안, 여기저기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네 수감자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수감자들과 싸우고, 그들을 체포하고, 현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감자들이 꼭꼭 숨었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사방을 돌아다녀야 합니다. 광활한 숲과 여러 건물들과 깊은 동굴들에서 네 수감..
[생태학 SF들이 환경 오염들을 이야기한다면, 기후 정의는 여자 권리에 주목해야 할 겁니다.] 셸리 스트리비는 산 디에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문학 및 소수 민족 연구자입니다. 문학 연구자와 소수 민족 연구자로서 셸리 스트리비는 생태 유토피아가 오직 백인 남자만을 반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숱한 사이언스 픽션들은 상류층 백인 남자를 반영합니다. 메리 셸리가 SF 장르를 열어젖혔음에도, 여전히 숱한 사이언스 픽션들은 백인 남자 중심주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19세기 서구에서 문학 작가들은 남자들이었고 여자들은 쉽게 철학이나 문학을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여자 철학자들이나 여자 작가들은 없지 않았으나, 그들은 주류가 되지 못했습니다.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
프레데릭 폴과 시릴 콘블루스는 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어쩌면 두 작가는 이 소설에 잘못된 제목을 붙였을지 모르겠어요. 상인은 물건을 파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소설 주인공은 광고업자입니다. 광고 역시 상품이고 광고업자 역시 광고를 파는 상인이나, 일반적인 상인은 아니죠. 소설 주인공이 광고업계에서 나가기 때문에 어쩌면 두 작가는 그런 행보를 염두에 두었을지 모르겠군요. 아울러 두 작가가 광고업자를 소설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를 추측한다면, 자본주의 체계를 비판하기 위해서일지 모릅니다. 소설 속에서 자본주의 체계는 자연 환경을 엄청나게 오염시킵니다. 천연 자원을 낭비하고, 깨끗한 물을 더럽히죠. 자본가들은 이윤만을 위해 막대한 힘을 쏟아붓고, 정치권은 이걸 막지 않습니다.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은 고난에서 ..
소설 은 거대 기업의 횡포와 오염, 수탈을 이야기합니다. 소설 속에서 거대 기업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모든 것들은 이윤을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해요. 거대 기업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의원들을 배정하고, 대통령은 허수아비와 다르지 않습니다. 무분별한 생산과 대규모 소비가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지배하고, 특히 광고는 이런 사고 방식을 더욱 부추깁니다. 상품이 자본주의 체계의 혈액이라면, 광고는 자본주의 체계의 꽃이고 윤활유입니다. 광고는 소비자들을 부추기고, 소비자들은 더 많은 상품을 사고, 그 몫은 모두 기업의 호주머니로 들어가요. 소설 주인공은 광고 회사의 직원이죠. 현대 자본주의 체계와 광고는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관계입니다. 사람들은 같은 책에서 자본의 작동 구조를 배우곤 하나, 19세기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