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오늘의 SF 걸작선 (7)
SF 생태주의
앨릭스 델라모니카가 쓴 는 제목처럼 미술관을 이야기하는 단편 소설입니다. 하지만 이 미술관은 인간들이 지은 미술관이 아닙니다. 여기는 외계인들이 지은 미술관입니다. 당연히 외계인 관람객들을 위해 이 미술관은 여러 편의 시설들과 작품들을 갖추었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인간이고 외계인 안내인과 함께 외계 미술관을 둘러봅니다. 미술관을 둘러보는 동안 소설 주인공은 어떻게 인간과 외계인이 다른지 느끼죠. 는 외계인을 이용해 문화적인 차이를 조명합니다. SF 세상에서 이런 소설들은 드물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나타나기 전부터, 숱한 (원형적인 SF) 작가들은 외계인들을 이용해 문화적인 차이나 사회 구조적인 차이를 강조했습니다. 지구와 다른 곳에서 살기 때문에 외계인은 이방인을 비유하는 문학적인 장..
로버트 셰클리가 쓴 는 꽤나 웃기는 단편 소설입니다. 아니, 는 SF 소설보다 코미디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로버트 셰클리는 재치가 넘치는 글들을 선보이는 작가이고,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우연히 소설 주인공은 구두를 삽니다. 중요한 것은 구두가 아니라 구두의 인공지능입니다. 원래 구두의 인공지능은 착용감을 조절하나, 소설 주인공이 구입한 구두의 인공지능은 아주 똑똑한 시제품입니다. 이 구두는 첨단 다용도 컴퓨터와 똑같고, 그래서 온갖 사건들을 저지릅니다. 물체 투시부터 자연어 대화, 원거리 조망, 음성 변조, 기타 등등 구두는 멋진 기능들을 갖추었습니다. 그런 기능들은 구두 한짝에게 너무 과다한 능력 같습니다. 그래서 첨단 시제품 구두는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재주들을 발휘합니다...
단편 소설 는 폴 디 필리포가 쓴 복수극입니다. 이야기는 다소 전형적입니다. 재벌 가문이 있고, 사생아가 있습니다. 사생아는 막대한 유산을 받을 수 있었으나, 가문은 사생아를 모독하고 추방합니다. 사생아는 가문에게 복수하고 유산을 되찾기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꽤나 흔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기 위해 구태여 독자가 SF 소설을 찾아야 할까요. 물론 는 재미있는 복수극입니다. SF 요소들을 제외한다고 해도, 주인공이 음모를 깨닫고 모략을 꾸미고 복수를 실행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합니다. 언제나 이런 복수극은 살이 떨리는 긴장감을 연출하고 통쾌한 한 방을 선사합니다. 이런 복수극은 소설 주인공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다시 건져올립니다. 그런 과정에서 독자는 추락과 상승이라는 극명한 대조를 겪고, 통쾌함을 느낍..
닐 애셔가 쓴 은 아주 전형적인 서부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황량한 사막, 우글거리는 악당들, 고독한 총잡이, 아름다운 여인, 막판의 총격전. 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런 조건들은 서부 스페이스 오페라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서부 스페이스 오페라는 철이 지난 유행 같으나, 은 별로 촌스러운 소설이 아닙니다. 내용과 구성은 충분히 촌스러울지 모르나, 은 유치한 내리막으로 쉽게 굴러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글쎄요. 어쩌면 소설 주인공이 꽤나 독특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이 단편 소설의 제목이 '사막의 눈'인 이유는 소설 주인공이 알비노이기 때문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멋지거나 잘 생겼다는 느낌을 풍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소설 주인공은 외팔이입니다. 빨간 두 눈과 하얀 피부와 외팔이는 ..
엘리너 아나슨이 쓴 는 에 실린 단편 소설입니다. 제목처럼 은 여러 SF 단편 소설들을 담았습니다. 어떤 소설은 하드 SF 장르이고, 어떤 소설은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은 꽤나 재미있군요.) 어떤 소설은 좀 더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는 미래 사회를 그리지 않습니다. 이 단편 소설에는 첨단 과학 기술이나 우주 항해나 로봇이 나오지 않습니다. 분위기는 중세 판타지와 비슷하고, 소설 주인공(주인공들)은 음유 시인과 비슷합니다. 음유 시인은 대륙을 떠돌고, 어떤 마을에 들리고, 귀족의 성채를 방문하고, 이런저런 모험을 겪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SF 소설보다 중세 판타지 소설에 가깝겠죠. 하지만 은 주저하지 않고 를 실었습니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저는 SF 소설과 판타지 소설의 ..
켄 워턴이 쓴 은 꽤나 흥미로운 단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거시적이거나 장대하거나 세상을 획기적으로 뒤집지 않으나,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생태학 같은 과학을 조명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학문들을 자연 과학이라고 여길 겁니다. 생태학은 그렇게 많은 인기를 끄는 학문이 아니죠. 저는 생태학이 뭔가를 직접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좋아합니다. 과학자들이 항공기나 컴퓨터나 약물을 만든다면, 사람들은 그게 대단하다고 생각할 테고 과학이 위대하다고 여길 겁니다. 하지만 생태학은 그런 가시적인 결과물을 창출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생태학은 자연 환경에서 생물 다양성이 무슨 관계들을 맺었는지 관측합니다. 이건 분명히 자연 과학적인 방법이나, 뭔가를 직접 생산하지..
낸시 크레스가 쓴 는 질병 치료약과 유전자 권리를 둘러싼 소송을 그립니다. 에는 유전 공학이나 개조 생명체가 자세히 나오지 않으나, 질병 치료약을 둘러싼 소송은 그런 분위기를 살짝 풍깁니다. 같은 소설처럼 낸시 크레스는 유전 공학이나 개조 생명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이는 낸시 크레스가 유전 공학 전문 작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 소설들에서 낸시 크레스는 그런 소재를 선보였고, 그런 분야에서 독특한 솜씨를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고요. 하지만 이 단편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유전 공학이나 개조 생명체보다 대기업의 탐욕일 겁니다. 소설 속에서 질병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을 때, 어떤 기업은 질병 치료약을 발표하고 커다란 성공을 거둡니다. 문제는 기업이 치료약을 자체적으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