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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미술관 하루>가 SF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미술관 하루>가 SF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OneTiger 2019. 1. 30. 19:00

앨릭스 델라모니카가 쓴 <미술관에서 보낸 한가한 하루>는 제목처럼 미술관을 이야기하는 단편 소설입니다. 하지만 이 미술관은 인간들이 지은 미술관이 아닙니다. 여기는 외계인들이 지은 미술관입니다. 당연히 외계인 관람객들을 위해 이 미술관은 여러 편의 시설들과 작품들을 갖추었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인간이고 외계인 안내인과 함께 외계 미술관을 둘러봅니다. 미술관을 둘러보는 동안 소설 주인공은 어떻게 인간과 외계인이 다른지 느끼죠. <미술관에서 보낸 한가한 하루>는 외계인을 이용해 문화적인 차이를 조명합니다.


SF 세상에서 이런 소설들은 드물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나타나기 전부터, 숱한 (원형적인 SF) 작가들은 외계인들을 이용해 문화적인 차이나 사회 구조적인 차이를 강조했습니다. 지구와 다른 곳에서 살기 때문에 외계인은 이방인을 비유하는 문학적인 장치가 될 수 있어요. 이런 소설은 쉽게 하드 SF 장르가 되지 못할 겁니다. 만약 이런 소설이 하드 SF 장르가 되기 원한다면, 스타니스와프 렘 같은 작가는 벌컥 화를 내겠죠.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 생명체는 인간과 아주 다를 테고, 문화를 비교하기는 아주 어렵겠죠.



꿀벌들에게는 사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꿀벌이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꿀벌들에게 문화가 있을까요? 벌집 속에서 꿀벌들이 8자 춤을 추거나, 애벌레들을 돌보거나, 서로 꿀을 교환하거나, 집을 수리할 때, 그게 문화가 될 수 있을까요? 꿀벌은 무척추동물이고 곤충이고 절지류입니다. 꿀벌은 우리와 다르죠. 어떤 사람들은 인간과 꿀벌이 아예 다른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꿀벌들과 달리, 돌고래들과 리카온들은 척추동물이고 포유동물입니다. 돌고래들과 리카온들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돌고래들이 해파리를 이용해 '공놀이'하거나 리카온들이 서로 장난을 칠 때, 그게 문화가 될 수 있을까요?


이쪽 지방의 리카온들과 저쪽 지방의 리카온들이 서로 다르게 장난을 칠 때, 그게 문화가 될 수 있을까요? 해안 돌고래 무리와 대양 돌고래 무리는 서로 다르게 행동할 겁니다. 병코돌고래 무리와 더스키 돌고래 무리는 서로 다른 행위들을 보여줄지 모릅니다. 이게 문화적인 차이일까요? 인간 문화, 돌고래 문화, 리카온 문화, 꿀벌 문화가 동등한 위상이 될 수 있을까요? 동물 행동학자들에게는 할 말들이 많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 문화와 리카온 문화와 꿀벌 문화를 대등하게 비교하기는 쉽지 않겠죠. 제이 호슬러가 그린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는 감동적인 생태학 만화입니다. 하지만 이건 의인화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SF 소설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SF 소설들이 외계인을 이용해 문화를 비교하고 싶다면, SF 소설들은 비유가 되어야 합니다.



이건 문화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하드 SF 소설이 아예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게다가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들은 기발한 상상력과 엄중한 과학 고증을 뒤섞고 생리적인 차이를 문화적인 차이로 연결합니다. 그런 결과물들은 드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문화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SF 소설과 하드 SF 장르는 서로 쉽게 어울리지 못할 겁니다. 문화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소설은 스페이스 오페라나 사이언스 판타지나 스팀펑크가 되겠죠. 엘리너 아나슨이 쓴 <방랑자의 시>는 훌륭한 인류학 SF 소설이 될 수 있겠으나, 하드 SF 독자들은 이게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종종 어떤 SF 독자들은 이런 소설들이 사이언스 픽션과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그런 독자들은 사이언스 판타지에 진정한 과학적 상상력이 없고 오직 비유적인 함의들과 상징들만 가득하다고 비판합니다. 비유적인 함의와 과학적 상상력은 서로 다르고, 따라서 문화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사이언스 판타지는 사이언스 픽션이 되지 못합니다. <미술관에서 보낸 한가한 하루>는 외계인의 생김새와 생리를 이야기하나, 그런 어조는 별로 엄중하지 않아요. 아무리 작가가 설정을 구체적으로 짠다고 해도, 이런 소설은 하드 SF 장르와 거리가 멀죠. <미술관에서 보낸 하루>는 첨단 과학을 논의하지 않고, 기발한 최신장비를 보여주지 않고, 인류가 우주를 맞닥뜨리는 충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문화적인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그런 것들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미술관에서 보낸 한가한 하루>에서 중요한 것은 자연 과학 지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미술 작품을 통해 관습을 표현하는 시각을 중시합니다. 이 소설은 어떻게 문화적인 관습이 미술 작품에 반영되는지 이야기합니다. <미술관에서 보낸 한가한 하루>를 쓰기 위해 엄중한 자연 과학은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자연 과학 지식보다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안목은 훨씬 중요하겠죠. 이 소설은 자연 과학보다 인문학을 중시합니다. 독자는 어떻게 똑똑한 달팽이가 조각품을 만드는지 지적하지 못합니다. 과학적 상상력을 중시하는 SF 독자들은 이런 소설이 진짜 SF 소설이 아니라고 비판할 겁니다. 어쩌면 이건 일종의 SF 우월주의일지 모릅니다.


SF 우월주의는 비단 다른 장르 소설들을 차별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하위 SF 장르들을 차별합니다. 제국주의가 외부 식민지를 만들고 동시에 내부 식민지를 만드는 것처럼, SF 우월주의는 다른 소설들을 깔보고 동시에 다른 하위 SF 장르들을 깔볼 수 있겠죠. 사실 SF 우월주의는 하드 SF 우월주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드 SF 소설이 첨단 과학과 어려운 지식과 우주적인 시각을 드러내기 때문에 SF 독자들은 하드 SF 소설이 최고라고 여깁니다. 이런 사고 방식은 판타지, 공포, 추리 소설들을 무시할 수 있고 동시에 스페이스 오페라나 사이언스 판타지나 스팀펑크나 대체 역사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스팀펑크 소설을 밀어주는 SF 우월주의보다 하드 SF 소설을 밀어주는 SF 우월주의는 상대적으로 많을 겁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SF 독자들이 사이언스 픽션을 좁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SF 소설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하드 SF 소설은 분명히 가장 핵심적인 SF 소설입니다. 하지만 하드 SF 소설들이 놓치는 부분들 역시 많습니다. 하드 SF 장르는 핵심적인 SF 장르일 수 있으나, 모든 것을 표현하는 장르가 아닙니다. 그 덕분에 하드 SF 작가들은 여러 실수들을 저지릅니다. 그런 실수들을 바로잡는 작가들은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들, 사이언스 판타지 작가들, 스팀펑크 작가들입니다. 사이버펑크 운동, 뉴 웨이브 운동, 페미니즘 SF 운동, 뉴 위어드 운동은 중요한 SF 문학 사조이고, 이런 것들 덕분에 SF 영역은 훨씬 넓어질 수 있었죠.


아니, 뉴 웨이브 운동은 새로운 문학 사조가 아닐지 모릅니다. 이미 메리 셸리나 허버트 웰즈는 뉴 웨이브를 어느 정도 품었을지 모릅니다. 미국의 하드 SF 소설들은 그것을 잃었고, 그래서 뉴 웨이브는 잃었던 것을 되찾았을 수 있습니다. 뉴 웨이브는 진짜 새로운 물결이 아니라 다시 흘러온 물결일지 모르죠. 사이언스 판타지나 스팀펑크는 엄중한 과학 고증에 관심을 덜 기울이는 대신 문화적이거나 사회 과학적인 부분에 치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조안나 러스 같은 작가가 없었다면, SF 장르는 페미니즘을 배척했을지 모르죠.



"나는 대체 역사가 진짜 SF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체 역사 소설을 쓸 때, 작가는 자연 과학 지식이 아니라 역사학 지식에 기반한다. 그래서 나는 대체 역사가 쉬운 SF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잘못 생각했다." 예전에 이렇게 JoySF 클럽의 표도기님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사고 방식은 드물지 않을 겁니다. 솔직히 저 역시 비슷하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대체 역사 소설 <비잔티움의 첩자>가 SF 소설이 될 수 있나? 그건 아니지. 진정한 SF 소설은 <낙원의 샘> 같은 하드 SF 소설이야." 이렇게 저는 생각한 적이 있고, 여전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생각할 겁니다. 진정한 사이언스 픽션은 엄중하게 자연 과학 지식을 설명해야 합니다. 이게 없다면, 그건 시시하고 밋밋하고 썰렁한 사이언스 픽션이 될 겁니다.


이건 또 다른 SF 우월주의, 하드 SF 우월주의일 겁니다. 물론 사이언스 판타지는 핵심적인 SF 장르가 되지 못할 겁니다. 분명히 SF 세상에서 하드 SF 장르는 꽃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꽃은 혼자 존재하지 못합니다. 뿌리가 수분과 무기질을 흡수하고, 줄기가 물과 영양분을 퍼뜨리고, 잎이 광합성하지 않는다면, 꽃은 피지 못할 겁니다. 하드 SF 주변에서 사이언스 판타지는 하드 SF 작가들이 놓치는 부분을 잡아줄 수 있고 SF 장르의 전체적인 판도를 풍성하게 키울 수 있습니다. 뿌리와 줄기와 잎이 중요한 것처럼, 사이언스 판타지 역시 중요한 역할입니다. 하드 SF 소설과 사이언스 판타지 소설은 서로 적대적이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 서로 의지하고 함께 SF 장르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SF 소설이 자연 과학적인 부분과 문화적인 부분과 사회 과학적인 부분을 동시에 충족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겁니다. SF 세상에는 다양한 작가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드 SF 소설이 핵심적인 장르라고 해도, 사이언스 판타지나 스팀펑크는 중요합니다. 하드 SF 소설은 전부가 아닙니다. 핵심은 전부가 아니죠. 주변부가 그저 주변부에 불과하다고 해도, 주변부가 있기 때문에 핵심은 핵심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핵심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핵심과 함께 주변부를 상정합니다. 양쪽은 전체 판도를 골고루 키울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각종 팬 픽션들이나 비평들이나 SF 모임들은 훨씬 풍성하게 판도를 키울 수 있겠죠. 하드 SF는 고고하게 혼자 떠있는 무인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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