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왕 랄프 2>와 사이버 스페이스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 2>는 게임 등장인물이 인터넷의 사이버 스페이스 속으로 들어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인터넷 속으로'라는 부제처럼, 주연 등장인물 랄프와 바넬로피는 인터넷으로 들어갑니다. 원래 랄프와 바넬로피는 비디오 게임 캐릭터입니다. 랄프는 <다고쳐 펠릭스>라는 아케이드 게임에 속했고, 바넬로피는 자동차 경주 게임에 속했습니다. 랄프와 바넬로피는 비디오 게임 캐릭터이나, 특이하게도 두 캐릭터는 '4차원의 벽'을 뚫을 수 있습니다. 랄프와 바넬로피는 자신이 비디오 게임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고 비디오 게임 속에서 자신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압니다.

비단 랄프와 바넬로피만 아니라 다른 게임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먹왕 랄프 2>에서 고슴도치 소닉은 그저 비디오 게임 캐릭터가 아닙니다. 소닉은 자신이 비디오 게임 캐릭터라는 사실을 압니다. 소닉은 '4차원의 벽'을 뚫고 다른 비디오 게임 캐릭터들과 만나고 수다를 떨거나 달리기 경주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경주 캐릭터로서 바넬로피는 자신이 아주 빠르다고 자부하나, 소닉과 바넬로피가 경주한다면, 소닉은 바넬로피를 순식간에 따돌리지 모르죠. 소닉은 너무 빠르고 심지어 물 위를 달릴 수 있죠.

이렇게 비디오 게임 캐릭터들은 전자 세계를 넘나들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인터넷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랄프와 바넬로피는 어떤 물건을 구하기 원했고, 물건을 구하기 위해 두 캐릭터는 인터넷으로 들어갑니다. 랄프와 바넬로피는 이베이 사이트에 들리거나, Youtube와 비슷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좋아요♡ 표시들을 모으거나, <그랜드 테프트 오토>를 모방한 게임 속에서 폭주족과 자동차 경주를 벌이거나, 온갖 스팸 광고들과 만나거나, 핀터레스트 사이트의 '핀'을 이용해 바이러스 악당을 물리칩니다. <주먹왕 랄프 2>는 각종 인터넷 문화들과 기술들과 게임들을 하나로 엮었습니다.

관객들이 이베이에서 물건을 구입하거나, <그랜드 테프트 오토>를 즐기거나, UCC 사이트에서 좋아요♡ 표시들을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된 적이 있거나, 온갖 스팸 광고들에 시달린 적이 있다면, 관객들은 <주먹왕 랄프 2>에 아주 공감할 겁니다. 인터넷 문화들에 빠삭하다면, 관객은 <주먹왕 랄프 2>에 푹 빠지고 함께 인터넷의 사이버 스페이스를 여행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관객이 인터넷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재미는 줄어들지 모릅니다. 인터넷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관객은 <주먹왕 랄프 2>가 제시하는 농담들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핀터레스트 사이트를 방문한 적이 없다면, 관객은 빨간 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죠.

그렇다고 해도 <주먹왕 랄프 2>는 가족 애니메이션입니다. <주먹왕 랄프 2>는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모두를 위한 애니메이션입니다. 할머니가 어린 손녀와 함께 극장을 찾는다고 해도, <주먹왕 랄프 2>는 할머니와 어린 손녀를 함께 만족시켜야 할 겁니다. 따라서 <주먹왕 랄프 2>는 아주 보편적인 줄거리와 교훈을 깔아놓습니다. 핀터레스트 사이트에서 어린 손녀가 이브닝 드레스 디자인을 고른 적이 없다고 해도, 할머니가 <그랜드 테프트 오토>를 플레이한 적이 없다고 해도, 할머니와 어린 손녀는 재미있게 <주먹왕 랄프 2>를 볼 수 있겠죠.

게다가 <주먹왕 랄프 2>는 비단 인터넷 문화들만 아니라 디즈니 판권 캐릭터들을 뒤섞습니다. 랄프와 바넬로피는 디즈니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고 온갖 디즈니 판권 캐릭터들과 만납니다. 저쪽에는 아이언맨 가면이 있고, 이쪽에는 캡틴 아메리카 방패가 있습니다. 스톰 트루퍼들은 디즈니 사이트 치안 부대이고, 하늘에서 엑스윙과 타이 파이터는 열심히 독파이팅을 벌입니다. 가끔 스톰 트루퍼들은 바넬로피와 엮이고 <새로운 희망>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무엇보다 여기 디즈니 인터넷 사이트에서 가장 압권은 디즈니 공주들이겠죠. 백설 공주부터 엘사와 모아나까지, <주먹왕 랄프 2>는 디즈니 공주들을 총집합했습니다.

백설 공주부터 엘사와 모아나까지, 디즈니 공주들이 총집합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은 온갖 자학 개그들을 던집니다. 디즈니 공주들은 얼마나 자신들이 성 차별적이고 비현실적인지 열심히 깝니다. 디즈니 공주들 중에서 뮬란이나 모아나는 꽤나 진취적이나, 뮬란이나 모아나 역시 디즈니 공식에서 크게 멀어지지 못하죠. 하지만 <주먹왕 랄프 2>에서 아무리 디즈니 공주들이 열심히 자학 개그들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관객들은 계속 디즈니 공주들을 사랑할 겁니다.

디즈니 공주들은 자학 개그들을 늘어놓으나, 그것들은 진짜 자학 개그가 아니죠. 오히려 그것들은 자학 개그를 빙자한 자랑이나 자부심에 가깝습니다. "관객 여러분, 이렇게 우리는 성 차별적이고 비현실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스럽고, 관객 여러분은 계속 우리를 사랑하겠죠." 디즈니 공주들의 자학 개그들 속에는 이런 뉘앙스가 있습니다. 자학 개그는 분노와 슬픔과 절망을 포함해야 하나, 디즈니 공주들의 자학 개그들에는 분노와 슬픔과 절망이 없습니다. 진짜 자학 개그는 패배자에게서 비롯합니다. 가난한 흑인들은 니거를 언급하며 자학 개그를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폭력적인 인종 차별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주먹왕 랄프 2>를 관람한다고 해도, 관객들은 계속 엘사 드레스를 구입하겠죠. 엘사는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이고 진짜 자학 개그들을 늘어놓지 못합니다. 하지만 디즈니 공주들이 다소 성 차별적이라고 해도, <주먹왕 랄프 2>에서 여자 캐릭터들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여자 캐릭터들을 늘어놓습니다. <주먹왕 랄프 2>는 이 세상에 오직 남자만 있다고 주장하거나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애니메이션들과 다릅니다. 할머니와 손녀는 다양한 여자 캐릭터들을 구경할 수 있겠죠.

이렇게 <주먹왕 랄프 2>는 인터넷 문화들과 디즈니 판권 캐릭터들과 디즈니 공주들을 뒤섞고 난장판을 펼칩니다. 이건 신나는 난장판입니다. 디즈니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들 중에서 이런 신나는 난장판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주먹왕 랄프 2>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영리하게 이용했습니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고 수많은 것들을 종합할 수 있습니다. 모아나가 핀터레스트 사이트에서 드레스를 고르고, 아마존 사이트에서 동화책을 읽고, 스팸 광고들과 만담을 나누고, <그랜드 테프트 오토>에서 고대 오세아니아 카누로 현대적인 자동차들과 경주한다고 해도, <주먹왕 랄프 2>는 이런 것들을 능청스럽게 묘사할 겁니다.

인터넷은 모든 것을 종합할 수 있고, <주먹왕 랄프 2>는 이런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사이버 스페이스는 비단 <주먹왕 랄프 2>만의 전유물이 아닐 겁니다. 사실 오래 전부터 사이버펑크 소설들은 사이버 스페이스를 묘사했습니다. 사이버펑크 소설들에서 등장인물들은 사이버 스페이스나 세컨드 라이프나 광역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가고 또 다른 정체성들을 찾습니다. 사이버 스페이스, 세컨드 라이프, 광역 네트워크는 모든 것을 종합할 수 있고, 등장인물들은 거리와 공간을 뛰어넘고 현실적인 제약들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 문화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부터, 사이버펑크는 가상 세계에서 모든 것이 뒤섞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이버펑크 운동은 사라졌으나, 사이버펑크는 SF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실 인터넷 문화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사이버펑크 운동은 더 이상 전복적이지 않습니다. 누구나 인터넷 서핑하는 사회에서 사이버펑크 운동은 더 이상 운동이 되지 못하죠. 중세 봉건 사회에서 자유주의 운동은 혁명적인 운동이 될 수 있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주의 운동은 더 이상 운동이 되지 못하죠. 오직 공산주의 운동만이 혁명적인 운동이 될 수 있겠죠.

인터넷 서핑이 일상이 되었기 때문에, 사이버펑크 운동은 더 이상 운동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이버펑크는 엄청난 파장을 미쳤고, 여전히 수많은 SF 소설들, 만화들, 게임들은 이런 파장을 활용합니다. 소설 <소드 아트 온라인>을 보세요. <소드 아트 온라인>은 사이버펑크가 제시한 여러 공식들을 활용합니다. 아스나는 가상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가상 세계에서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런 관점에서 <소드 아트 온라인>은 SF 장르가 됩니다. 적어도 <소드 아트 온라인>은 SF 장르와 상당히 가깝습니다.

만약 <소드 아트 온라인>이 SF 소설이 된다면, <주먹왕 랄프 2> 역시 SF 애니메이션이 될 수 있을까요? 필립 딕 소설들에서 등장인물들이 가상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소드 아트 온라인>에서 아스나가 증강 현실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주먹왕 랄프 2>에서 바넬로피는 인터넷으로 들어갑니다. 필립 딕 소설들과 <소드 아트 온라인>과 <주먹왕 랄프 2>는 모두 등장인물들이 가상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가상 세계는 광역 네트워크거나 온라인 게임이거나 인터넷 사이트들일 수 있습니다. 모두 비슷한 전자 세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주먹왕 랄프 2>는 SF 애니메이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주먹왕 랄프 2>는 SF 장르와 상당히 가깝습니다. <주먹왕 랄프 2>는 인터넷 속의 가상 세계라는 비일상적인 요소를 보여줍니다. 정보화 혁명이라는 근대적인 진보 없이, <주먹왕 랄프 2>는 비일상적인 요소를 말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