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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셰클리의 <구두>, 요절복통 인공 지능 본문

SF & 판타지/외계인과 이방인

로버트 셰클리의 <구두>, 요절복통 인공 지능

OneTiger 2018. 8. 17. 18:48

로버트 셰클리가 쓴 <구두>는 꽤나 웃기는 단편 소설입니다. 아니, <구두>는 SF 소설보다 코미디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로버트 셰클리는 재치가 넘치는 글들을 선보이는 작가이고, <구두>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우연히 소설 주인공은 구두를 삽니다. 중요한 것은 구두가 아니라 구두의 인공지능입니다. 원래 구두의 인공지능은 착용감을 조절하나, 소설 주인공이 구입한 구두의 인공지능은 아주 똑똑한 시제품입니다. 이 구두는 첨단 다용도 컴퓨터와 똑같고, 그래서 온갖 사건들을 저지릅니다.


물체 투시부터 자연어 대화, 원거리 조망, 음성 변조, 기타 등등 구두는 멋진 기능들을 갖추었습니다. 그런 기능들은 구두 한짝에게 너무 과다한 능력 같습니다. 그래서 첨단 시제품 구두는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재주들을 발휘합니다. 문제는 그게 소설 주인공에게 골칫거리가 된다는 사실이죠. 구두(의 인공지능)는 사고들을 저지르고, 소설 주인공은 그걸 말리고, 소설은 요절복통으로 흘러갑니다. 분량은 꽤나 짧습니다. 사실 이런 꽁트는 길지 않죠. 만약 분량이 훨씬 길어졌다면, 배꼽 잡는 요절복통은 많이 희석되었을 겁니다.



소설을 읽었을 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구두>에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이 나왔다면? 그때 <구두>가 무슨 느낌을 풍겼을까요? 만약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다재다능한 인간 하인이 온갖 사고들을 저지른다면, 그게 <구두>와 똑같은 요절복통으로 흘러갈까요? 다재다능한 인공지능과 다재다능한 인간 하인이 똑같이 독자를 웃길 수 있을까요? 분명히 인간 하인은 어느 정도 인공지능을 대신할 수 있을 겁니다. <구두>에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 하인이 나온다고 해도, 로버트 셰클리가 필력을 발휘한다면, <구두>는 여전히 웃긴 꽁트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인간 하인은 다릅니다. 인공지능이 웃긴 이유는 이게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일상적입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첨단 인공지능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첨단 구두 인공지능이 저지르는 사건들은 독특한 인상을 남깁니다. 구두가 말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말하는 장면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말하는 구두…. 그 자체로서 이건 코미디입니다. 구두와 대화하는 사람은 일상적이지 않습니다. 구두와 대화하는 사람은 이미 상궤를 벗어났죠. <구두>가 웃긴 이유는 그것 때문일 겁니다. 비일상적인 첨단 장비가 요절복통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저는 <드래곤 라자>를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드래곤 라자>에는 프림 블레이드라는 마법검이 나옵니다. 프림 블레이드는 자아가 깃든 에고 소드입니다. 자아가 있기 때문에 프림 블레이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손잡이를 움켜쥔다면, 프림 블레이드와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프림 블레이드의 소유자는 언제나 중얼중얼 떠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이상하게 쳐다보겠으나, 프림 블레이드와 소유자는 대화하는 중입니다. 이것 역시 상궤를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장검과 대화하는 인간.


게다가 프림 블레이드가 텔레파시를 이용하기 때문에 소유자는 혼자 떠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엇보다 프림 블레이드가 자꾸 끼어들기 때문에 소유자는 다른 사람과 제대로 대화하지 못합니다. 저는 이런 코미디가 <구두>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구두>는 SF 소설이고, <드래곤 라자>는 중세 판타지 소설입니다. 하지만 지능적인 물체가 인간의 일상에 끼어들고 사고들을 저지른다는 발상은 비슷합니다. 그래서 저는 양쪽의 웃음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구두>는 SF 소설이고, 따라서 <구두>는 좀 더 현실에 밀착했습니다. 그건 중요한 차이점이겠죠.



<구두>는 데이빗 하트웰이 편집한 <오늘의 SF 걸작선>에 들어있습니다. <오늘의 SF 걸작선>은 여러 소설들을 실었습니다. 매번 소설들마다 이 책은 짧은 안내문을 붙였어요. <구두>를 설명하는 안내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풍자하는 어조가 특징이며, 중심 인물들은 주로 노동자, 게으름뱅이, 사기꾼들이지만, 과학 기술이 문제를 드러낼 때는 어김없이 유용한 통찰력을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이 문구에서 노동자, 게으름뱅이, 사기꾼은 모두 부정적인 인간상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왜 노동자가 부정적인 인간상이 되어야 할까요? 사실 노동자 그 자체는 절대 부정적인 인간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인구의 다수를 차지합니다. SF 소설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과학자는 노동자가 아닐까요? 당연히 과학자 역시 노동자입니다. 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이 얼마나 많나요. 하지만 왜 저 문구에서 노동자가 부정적인 인간상이 되었을까요?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 노동자 계급을 비하하고 왜곡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노동자라는 단어를 부정적이라고 여기죠.



이는 <오늘의 SF 걸작선>이 잘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의 SF 걸작선>은 그저 지배 계급의 관념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을 뿐이겠죠. 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지배적인 관념에 빠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일 겁니다. 아무리 비일상적이고 우주와 외계 문명과 인공 지능을 이야기하는 SF 소설 모음집조차 쉽게 지배적인 관념에 빠지죠. 저는 이런 안내 문구가 좀 아쉽더군요.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구두>는 재미있는 꽁트입니다. 만약 제게 이런 구두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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