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이티>와 <에일리언>이 드러내는 차이점들 본문
[게임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의 컨셉 아트. 이런 디자인은 <에일리언> 시리즈의 커다란 매력이죠.]
여러 평론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티>와 <에일리언>은 서로 대조적인 영화입니다. 다양한 측면들에서 <이티>와 <에일리언>은 반대되는 특징들을 보여줍니다. 왜 평론가들이 구태여 이 두 영화를 서로 대조했을까요. <이티>와 <에일리언>은 가장 유명한 외계인 영화이고, 동시에 가장 상징적인 외계인 영화입니다. 이티는 인간에게 친근하고 인간과 우정을 나누는 외계인을 상징합니다. 인간과 우정을 나누는 외계인을 언급할 때, 대부분 사람들은 이티를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에일리언 제노모프는 정반대입니다. 인간을 공격하는 외계인을 언급할 때, 대부분 사람들은 가장 먼저 제노모프를 머릿속에 떠올리죠. <이티>와 <에일리언>은 각자 인간과 우정을 나누는 외계인과 인간을 공격하는 외계인이라는 전형을 만들었고, 이는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 이외에 두 영화는 여러 대조적인 특징들을 드러냅니다. <이티>의 배경 무대는 지구의 미국 중산층 가정입니다. 주연 등장인물들은 아이들이고, 어른들에게는 특별한 역할이 없죠. 오히려 어른들은 아이들의 우정 어린 세계를 깨뜨리고 침범합니다. <이티>는 아이들의 영화죠.
설정상 이티는 식물학자이고 엄청나게 나이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티는 별로 논리적이거나 어른스럽지 않습니다. 가끔 이티는 엉뚱한 행동들을 일삼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이 관객들이 그걸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티>는 어린이 관객들을 위한 영화이고, 따라서 어른스러움이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에일리언>은 반대입니다. 이 영화에는 아이들이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3편과 4편에서도 아이들은 나오지 않죠.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 코버넌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편에는 아이가 나오고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으나, 시리즈에서 이는 유일한 사례입니다.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레퀴엠>이요? 솔직히 이건 정식 <에일리언> 시리즈가 아니죠. 그래서 제가 <에일리언> 시리즈에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해도, 그건 틀린 주장이 아닐 겁니다. 뭐, <에일리언> 시리즈는 외계 야수가 인간을 물어뜯는 피칠갑 영화입니다. 이런 피칠갑 영화에 자주 아이들이 나온다면, 관객들은 이게 윤리적이지 않다고 느낄지 모르죠. 영화 <죠스>에서 백상아리가 아이를 잡아먹었을 때, 관객들은 꽤나 부정적으로 반응했었습니다. 아무리 공포 영화가 피칠갑의 미덕을 보여준다고 해도, 관객들은 아이들이 죽는 장면을 보고 싶어하지 않아요. <에일리언>은 철저하게 어른들의 영화입니다.
<이티>에서 외계인들은 지구를 방문합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이티와 만날 수 있었죠. <이티>는 미지가 지구를 찾아오는 이야기입니다. 미지와의 조우가 나온다고 해도, 인간은 지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지구 너머를 제대로 상상하지 못하겠죠. 반면, <에일리언>에서 인간들은 외계 행성 LV-426을 방문합니다. 이 영화에는 지구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실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관객들은 지구를 별로 구경하지 못합니다. 우주는 낯선 곳이고, 낯선 곳에서 공포는 훨씬 커지겠죠.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와 <레퀴엠>은 모두 지구를 배경 무대로 삼으나, (이미 말한 것처럼) 저는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가 정식 <에일리언> 시리즈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는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시리즈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티>에서 주연 등장인물은 소년입니다. <에일리언>에서 주연 등장인물은 어른 여자입니다. 소년과 어른 여자는 서로 대조적이죠. 우리는 우정을 이야기할 때, 젊은 남자들의 우정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티>는 소녀보다 소년을 내세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에일리언>은 공포 영화입니다. 인간들은 무조건 도망가야 하고, 그래서 <에일리언>은 싸우는 남자보다 도망치는 여자를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관객들은 리플리가 전사 유형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2편이 만든 결과물이죠. 1편에서 리플리는 오직 합리적인 인간이었을 뿐이고 전사가 아니었어요.
<이티>에는 속편이 없습니다. 리메이크 열풍이 거세게 분다고 해도, 아무도 <이티>를 리메이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티>는 단순한 흥행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티>에게는 속편이 생기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티>를 리메이크한다면, 그 감독은 엄청난 문화 현상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 <죠스>가 그런 것처럼, <에일리언>은 인간들이 싸울 수 있는 적을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죠스>가 그런 것처럼, <에일리언>은 여러 시리즈들을 낳습니다. 게다가 1편을 만든 감독 본인은 계속 이야기를 끌고 가고 싶어합니다.
다행히 솜씨 있는 감독들이 맡았기 때문에 <에일리언> 시리즈는 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계속 독특한 색깔들을 유지했습니다. 3편과 4편은 별로 평가가 좋지 않으나, 3편은 저주 받은 걸작이고, 4편 역시 분명히 인상적인 특징들을 보여줍니다.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 코버넌트> 역시 거장다운 때깔을 보여주고요. 적어도 <에일리언> 시리즈는 <죠스> 시리즈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이티>에서 관객들은 이티를 실컷 구경할 수 있습니다. 반면, <에일리언>에서 제노모프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건 너무 당연한 차이점일 것 같군요. <에일리언>은 보여주지 않는 공포가 정말 무섭다고 주장합니다.
<이티>와 <에일리언>은 모두 서구 문화에 속합니다. 사실 SF 자체는 서구적인 근대화에서 비롯했죠. 하지만 <이티>는 미국 문화이고, <에일리언>의 감독은 유럽(영국)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임스 카메론이 2편을 맡았을 때, 어떤 사람들은 미국 감독이 유럽 예술 영화를 망친다고 투덜거렸죠. (하지만 2편은 가장 유명한 제노모프 영화가 되었죠.) 아, 그리고 3편은 미국 감독이 맡았으나, 4편은 다시 유럽(프랑스) 감독이 맡았군요. <이티>는 아이들의 순수한 우정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에일리언>에는 하급 노동자 문화가 깔렸어요. 이 영화는 자본주의 계급 구조를 비판하거나 흑인 하급 노동자를 주시하는 느낌을 풍기죠. 육체 노동을 담당하는 흑인 하급 노동자는 외계 생명체를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리플리를 제외한) 상급 승무원들은 그걸 무시하죠. 지식인을 상징하는 과학 담당 승무원은 적극적으로 외계 생명체를 받아들이고요. 하지만 다른 <에일리언> 시리즈에는 이런 계급 구조를 비유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3편은 그런 분위기를 어느 정도 풍기나, 3편은 자본주의 사회보다 갑갑한 중세 종교 사회를 비유하고요. (3편에는 아예 성직자, 신도들, 금욕, 악마, 드래곤이 나오죠.) 미국 중산층에 어울리는 영화로서 <이티>는 아예 그런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이것들 이외에 평론가들은 다양한 차이점들을 언급합니다. <이티>와 <에일리언>이 각자 우호적인 외계인과 무시무시한 외계인을 상징하기 때문에 두 영화는 서로 다른 특징들을 보여주겠죠. 가끔 어떤 사람들은 두 영화 중 뭐가 더 좋은 영화인지 논의하나, 그건 해답이 없는 논의일 겁니다. 두 영화가 각자 다른 분야에 속했기 때문에 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도 구태여 하나를 편든다면, 저는 <에일리언>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에일리언>이 우주라는 낯선 곳을 훨씬 많이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티>는 (우주에 상관하지 않는) 동화에 가깝죠. 이티는 팅커벨과 비슷해요. 하지만 <에일리언>은 우주라는 낯선 공간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에일리언>을 관람하는 재미는 우주선이나 우주 기지의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재미로 이어지곤 하죠. <에일리언>이 지구를 배경 무대로 삼았다면, 그렇게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