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사막의 눈>, 우주 서부극 속의 정체 불명의 여인 본문
닐 애셔가 쓴 <사막의 눈>은 아주 전형적인 서부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황량한 사막, 우글거리는 악당들, 고독한 총잡이, 아름다운 여인, 막판의 총격전. 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런 조건들은 서부 스페이스 오페라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서부 스페이스 오페라는 철이 지난 유행 같으나, <사막의 눈>은 별로 촌스러운 소설이 아닙니다. 내용과 구성은 충분히 촌스러울지 모르나, <사막의 눈>은 유치한 내리막으로 쉽게 굴러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글쎄요. 어쩌면 소설 주인공이 꽤나 독특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이 단편 소설의 제목이 '사막의 눈'인 이유는 소설 주인공이 알비노이기 때문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멋지거나 잘 생겼다는 느낌을 풍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소설 주인공은 외팔이입니다. 빨간 두 눈과 하얀 피부와 외팔이는 별로 멋지다는 느낌을 풍기지 않겠죠. 누군가는 이런 모습이 취향이라고 느끼겠으나, 알비노 인간은 전형적인 인간과 많이 다릅니다. <사막의 눈>은 이런 겉모습을 계속 강조하고, 그래서 이 단편 소설이 별로 유치하지 않은지 모릅니다. 시각적인 측면이 강렬하기 때문에.
게다가 소설 주인공이 고독한 총잡이라고 해도, 이 총잡이는 영웅과 거리가 멉니다. 셰인 같은 총잡이 영웅과 달리, 소설 주인공은 약자들을 돌보거나 구하지 않습니다. 사실 소설 주인공은 도망치느라 바쁩니다. 소설 주인공은 꽤나 오랜 수명을 자랑하는 초인입니다. 다들 그런 유전자를 노리고, 유전자를 얻기 위해 다들 소설 주인공을 없애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소설 주인공은 언제나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생각하고, 안정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살기 위해 소설 주인공은 바쁘게 도망쳐야 하고, 멋지게 폼을 잡을 여유는 없습니다. 작가는 소설 주인공을 지나치게 띄워주지 않고, 소설 주인공이 도망치는 과정을 건조하게 설명합니다.
덕분에 <사막의 눈>은 고독한 총잡이가 멋지게 약자를 구하고 멋지게 악당을 물리치고 멋지게 폼을 잡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른 서부 스페이스 오페라, 가령, 마이클 무어콕이 쓴 <침묵하는 성채의 타락한 마녀>를 볼까요. <침묵하는 성채의 타락한 마녀>에서 마이클 무어콕은 소설 주인공 총잡이를 아주 열심히 띄워줍니다. 문단이 바뀔 때마다 작가는 주인공 총잡이를 띄워주는 것 같습니다. <침묵하는 성채의 타락한 마녀>는 작가가 소설 주인공을 멋지게 띄워주는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그런 문장들은 홍수를 이룹니다.
<침묵하는 성채의 타락한 마녀>라는 소설 그 자체는 주인공 총잡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소설은 꾸준히 주인공 총잡이를 띄워줍니다. 저에게는 이런 자화자찬 소설이 다소 거북하더군요. 어떤 독자들은 주인공 총잡이가 멋지다고 느끼겠으나, 저는 이 소설이 다소 거북하다고 느꼈습니다. 반면, <사막의 눈>에는 그런 거북한 자화자찬이 없습니다. 서부극이기 때문에 <사막의 눈> 역시 주인공 총잡이를 어느 정도 띄워줍니다. 하지만 그런 자화자찬은 지나친 홍수를 이루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머뭅니다.
이런 서부극에서 소설 주인공은 이미 영웅이고, 그래서 작가는 조심스럽게 소설 주인공을 띄워줘야 할 겁니다. 작가가 소설 주인공을 밑도 끝도 없이 띄워준다면, 이런 자화자찬은 주화입마에 빠질지 몰라요. 게다가 <사막의 눈>은 오직 고독한 총잡이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두 주인공을 내세우고, 고독한 총잡이와 정체 불명의 여인은 동시에 주인공이 됩니다. 사실 고독한 총잡이는 다소 전형적인 주인공이고, 독자의 호기심을 붙들기에 부족한 등장인물일 겁니다. 하지만 독자는 정체 불명의 여인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이 여인이 누구일까요? 어떻게 여인이 혼자 위험한 사막 지대를 가로지를 수 있을까요? 왜 여인이 그렇게 매혹적이고 아름다울까요?
저는 고독한 총잡이보다 이 여인이 훨씬 인상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고독한 총잡이는 숱한 서부극들이 자랑하는 전형적인 영웅이자 주인공입니다. 반면, 이 여인은 전형적인 서부극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름답고 젊은 여인이 온갖 위험들을 물리치고, 위험한 황야를 혼자 가로지르고, 강렬하게 활약하는 서부극이 있을까요? 흠, 그런 서부극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 겁니다. 서부극은 마초 분위기를 풀풀 충기는 장르이고, 여자는 보조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사막의 눈>에서 정체 불명의 여인은 보조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독자들은 고독한 총잡이보다 정체 불명의 여인이 좀 더 주인공에 가깝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불사 알비노 주인공 역시 사이언스 픽션에 어울리는 존재이나, 정체 불명의 여인은 불사 인간보다 훨씬 사이언스 픽션에 어울릴 겁니다. 작가가 여인이 누구인지 제대로 밝히지 않기 때문에 여인이 활약하는 장면은 다소 부실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전반적인 활약은 부족하지 않고, 여인은 충분히 인상적인 마무리를 짓습니다. 만약 여인이 소설 주인공이었다면, <사막의 눈>은 좀 더 흥미로워졌을지 모르죠. 고독한 남자 총잡이는 좀 식상하죠.
<사막의 눈>은 도덕적인 엘리트가 좋은 세상을 만들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오히려 SF 소설은 그런 도덕적인 엘리트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과학 기술은 계속 발달하고, 기술적인 진보는 도덕적인 엘리트를 만들 수 있겠죠. <사막의 눈>은 그런 전망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는 여러 SF 소설들이 전망하는 미래입니다. 하지만 저는 민중들의 계급 투쟁이 없다면, 그런 도덕적인 엘리트가 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막의 눈>은 그런 점을 지적하지 않아요. 뭐, <사막의 눈>은 그저 재미있는 우주 서부극일 뿐입니다. <사막의 눈>은 자신의 소임에 충실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