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소멸의 땅 (17)
SF 생태주의
[자, 거대 괴수는 여자의 로망이 될 수 있습니다. 왜 거대 괴수가 무조건 파괴적이어야 하죠?] 거대 괴수는 로망입니다. 거대 괴수가 좋습니까? 네, 좋습니다. 비록 현실에 거대 괴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SF 소설들이 필요하죠. 하지만 현실 속에 거대한 생명체들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몇 백 kg이 나가는 아무르 호랑이나 불곰은 충분히 괴수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르 호랑이나 불곰이 별로 크지 않다고요? 몇 톤이 나가는 인도 코끼리나 아프리카 코끼리는 어떨까요. 게다가 육지 동물들만 언급할 이유는 없겠죠. 강이나 바다로 시선을 돌릴 때, 우리는 더욱 거대한 생명체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대 괴수로서 아나콘다나 바다 악어는 손색이 없을 겁니다. 백상아리나 범고래 역시 마찬가지겠죠. 향유 고래나..
[이런 장면은 비경 탐험 소설들과 비슷하나, 는 소설이 아니라 영상 중심적인 매체죠.] 제프 밴더미어가 쓴 은 SF 소설일까요. 흠, 어쩌면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내놓을지 모릅니다. 사실 이 소설에 치밀한 상상 과학은 없습니다. 그런 것을 찾고 싶어도 절대 찾지 못할 겁니다. 아예 작가가 그걸 집어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은 뻔한 사이언스 판타지 소설들과 다릅니다. 이 소설은 외계인 같은 요소들을 함부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소설 속에서 탐사대는 X 구역에 들어가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뿐입니다. 그들은 뭔가를 논의하나,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논의하든, 결론은 허공으로 소멸할 뿐입니다. 탐사대는 수많은 현상들을 목격하나, 논리적인 설명을 전혀 붙이지 못합니다. 탐사대는..
[어쩌면 생물학자는 이런 드넓고 기이한 자연 생태계와 기이한 바다 괴수를 좋아할지 모르겠어요.] 흔히 제프 밴더미어는 뉴 위어드 작가로 불립니다. 따라서 밴더미어가 쓴 은 뉴 위어드 소설이겠죠. 뉴 위어드는 일련의 우주적 공포 소설들을 계승하고,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우주적 공포 소설들을 쓴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하지만 은 러브크래프트 같은 작가들이 쓴 환상 소설들과 다소 다릅니다. 뉴 위어드 작가들은 기존 작가들에게서 머물지 않고 좀 더 넓은 범주를 향해 나갑니다. 어떤 작가는 도시에 집중하고, 어떤 작가는 역사에 집중하고, 어떤 작가는 경제 구조에 집중하죠. 에서 제프 밴더미어는 생태와 환경을 이야기합니다. 작가는 생물학자를 소설 주인공으로 설정했고, 자연 환경이 끊임없이 인류 문명을 집어삼킨다고 묘..
[게임 의 한 장면. 문자 그대로 이건 생물학보다 생태학에 어울리겠죠.] 소설 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자 주인공은 생물학자입니다. 사실 생물학자는 이 소설 시리즈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일 겁니다. 과 에서 생물학자는 주인공이 아니나, 주인공만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죠. 소설 3부작이 전반적으로 생물학자를 이야기한다고 봐도 될 겁니다. 작가 제프 밴더미어가 생물학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는 아마 생물학자가 울창한 야생과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겁니다. 공룡 소설에 고생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울창한 야생을 탐험하는 소설에는 생물학자가 제격일 겁니다. 만약 소설 속에 공룡이 등장한다면, 작가는 그 공룡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등장인물을 배치해야 할 겁니다. 독자들은 그 등장인물을 통해 공룡들에 ..
"오직 현실만이 그 광경이 얼마나 놀랍고 웅장한지 알려줄 수 있다." 1832년 찰스 다윈은 브라질에 도착했습니다. 그 유명한 비글 탐험선은 다윈을 열대 밀림으로 태워줬죠. 찰스 다윈은 열대 밀림을 처음 방문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윈 같은 유럽인은 그 엄청난 생물 다양성과 복잡성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열대 우림은 지구상에서 3% 비중을 차지하나, 우리가 알거나 아직 알지 못하는 동식물들 중 50% 정도가 열대 우림에 산다고 들었습니다. 1년 내내 햇빛은 계속 내리쬐고 비는 주기적으로 쏟아집니다. 게다가 거대한 나무들은 다채로운 수직적 공간을 조성합니다. 이런 장소는 지구상에 달리 없어요. 덕분에 열대 우림에서 온갖 생물들은 신나게 성장할 수 있었고, 그 어느 장소보다 훨씬..
[기이하고 울창한 자연과 적막한 폐허와 위험한 동물들. SF 창작가들은 계속 이런 설정을 사랑하겠죠.] 소설 은 아르카디와 보리스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썼습니다. 장르를 규정하기가 좀 애매하군요. 아마 우주적 공포로 부르면 좋을까요. 하지만 일반적인 우주적 공포와 달리 이 소설에서 공포나 광기보다 비극이나 암울함이 두드러집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 같은 작가는 비슷한 소재를 이용해 공포와 광기를 강조하겠으나, 처럼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종종 유머나 개그를 곁들이지만) 공포보다 무력함이나 비극성을 드러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외계인들이 지구에 방문합니다. 그들은 금방 떠나고,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는 '존'이라고 불립니다. 이 구역 안에서 굉장히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집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기..
SF 소설들은 비일상적인 요소를 다루곤 합니다. 당연히 이런 현상들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 겁니다. 만약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거나 갑자기 돌연변이 괴물들이 인류를 습격하거나 식물들이 수정으로 변한다면, 거기에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겠죠. 수많은 SF 소설들은 (상상 과학이라는 이름답게) 그런 이유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애씁니다. 왜 죽은 사람들이 살아났는지, 왜 돌연변이 괴물들이 탄생했는지, 왜 식물들이 수정으로 변하는지…. 하지만 모든 SF 소설들이 그런 해명에 충실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소설들은 논리와 합리를 최대한 강조하지만, 어떤 소설들은 중요한 부분에서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 은근슬쩍 넘어갑니다. 이런 소설들은 설정을 자세히 밝히지 않고, 그저 전문 용어 몇 가지를 나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