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소멸의 땅>과 압도적인 자연 풍경 본문
"오직 현실만이 그 광경이 얼마나 놀랍고 웅장한지 알려줄 수 있다." 1832년 찰스 다윈은 브라질에 도착했습니다. 그 유명한 비글 탐험선은 다윈을 열대 밀림으로 태워줬죠. 찰스 다윈은 열대 밀림을 처음 방문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윈 같은 유럽인은 그 엄청난 생물 다양성과 복잡성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열대 우림은 지구상에서 3% 비중을 차지하나, 우리가 알거나 아직 알지 못하는 동식물들 중 50% 정도가 열대 우림에 산다고 들었습니다. 1년 내내 햇빛은 계속 내리쬐고 비는 주기적으로 쏟아집니다.
게다가 거대한 나무들은 다채로운 수직적 공간을 조성합니다. 이런 장소는 지구상에 달리 없어요. 덕분에 열대 우림에서 온갖 생물들은 신나게 성장할 수 있었고, 그 어느 장소보다 훨씬 풍부한 만물상을 이뤘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열대 우림을 싫어할지 모릅니다. 기온과 습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우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충격을 받을지 모릅니다. 온 몸은 땀방울들을 비처럼 흘리고, 더운 공기는 몸을 짓누르고, 사방이 빽빽한 식물들이기 때문에 방향을 잃기 쉽고…. 심해에서 잠수부들이 방향을 잃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어떤 탐험가나 과학자는 열대 우림이 자신을 집어삼킨다고 느꼈습니다. 누구나 비슷한 느낌을 받을 듯합니다. 거대하고 울창한 식물들과 각종 균류가 사람을 삽시간에 휘감을 것처럼 보이죠. 이처럼 웅장하고 장대한 자연은 사람을 압도할 수 있고, 정신적 충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비단 열대 우림만이 아닐 겁니다. 누군가는 망망대해에서 깊은 감성을 느낄지 모르고, 누군가는 어둡고 기이한 심해에서 공포를 느낄지 모릅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심해 공포 소설들을 많이 썼다고 알려졌으나,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주요 작품들을 살펴보면, 심해 공포 소설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심지어 <인스머스의 그림자> 같은 소설에는 아예 심해가 나오지 않죠. 해저인들과 잠수함을 언급하나, 그게 전부입니다. 그래도 하워드 러브크래프트가 심해 공포 소설로 유명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만큼 심해를 무섭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지상을 걷는 인간은 심해를 절대 친근하게 여기지 못하겠죠. 만약 누군가가 혼자 심해에 잠수한다면, 그건 정말 충격을 미칠지 모릅니다. 자연은 인간을 압도할 수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을 압도하고, 완전히 뒤바꿀 수 있을지 모릅니다.
당연히 작가들은 이런 소재를 놓치지 않습니다. 위에서 러브크래프트를 언급했으나, 바다를 바라보는 작가들은 많고 많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바다의 노동자>를 썼고, 소설 주인공은 바다 절벽에서 선박을 찾기 위해 애씁니다. 이 바다 절벽은 상당히 험난한 지형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얼마나 그 지형이 험난하고 신비롭고 다채롭고 위험한지 알려주기 위해 온갖 비유들과 상징들과 묘사들을 동원합니다. 자연을 그리는 필력은 마치 SF 소설처럼 상상력을 마구잡이로 자극합니다.
빅토르 위고는 바다를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 고혈을 기울인 것 같습니다. 드높은 벼랑부터 바다 동굴까지, 별 것 아닌 따개비부터 커다란 문어까지, 빅토르 위고는 바다 절벽이라는 공간을 총제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듯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말 압도적입니다. 이 소설은 크게 3부로 나뉘고, 작가는 2부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인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바다의 노동자'라는 제목 역시 2부에서 비롯했을 겁니다. 주인공 혼자 바다 절벽에서 무지막지하게 노동하죠. 당연히 빅토르 위고는 바다라는 공간에 상당한 감명을 받았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소설이 나왔을 겁니다.
아마 이런 '압도적인 자연'을 가장 잘 보여주는 SF 소설들 중 하나는 <물에 잠긴 세계>일 겁니다. 제임스 발라드가 썼죠. 이 소설에서 지구는 말 그대로 물에 잠깁니다. 덕분에 인류는 아직 땅이 남아있는 극지방으로 몰려갑니다. 그저 일부 탐사대들이나 해적들이 바다를 떠돌 뿐이죠. 소설 주인공은 탐사대에 속했고, 그래서 인적이 없는 영국을 방문합니다. 런던 같은 대도시는 이미 예전과 똑같지 않습니다. 대부분 건물들은 물에 잠겼고, 땅에서 무성한 열대 우림이 자랍니다. (흠, 다시 열대 우림이군요.) 그리고 그 열대 우림 속에 바다 악어나 바다 이구나아 같은 파충류들이 득실거립니다.
이런 광경은 탐사대를 압도합니다. 주인공 역시 뭔가 기이하고 아련하다고 느낍니다. 울창한 열대 우림과 온갖 해양 파충류들은 주인공을 문명 세계에서 멀리 데려갑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원시적인 세계에 왔다고 느낍니다. 인간이 없는, 식물들과 야생 동물들만 우글거리는 세상. 대자연에 찬사를 보내는 소설들은 많으나, 저는 <물에 잠긴 세계>가 장르적인 상상력을 빌리고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대자연에 감탄사를 보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물에 잠긴 세계>보다 '대자연에 압도되는 인간'을 더 극단적으로 그리는 SF 소설들도 있습니다. 제프 밴더미어가 쓴 <소멸의 땅> 같은 소설이 그렇죠. 아예 주인공은 (생태학자처럼 보이는) 생물학자이고, X 구역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적막하고 복잡한 자연계에 흠뻑 빠졌어요. 이처럼 여러 주류 소설들이나 SF 소설들은 웅장한 대자연을 그리지만, 안타깝게도 저런 대자연들은 계속 사라지는 중입니다. 자본주의 체계는 끊임없이 자본을 순환하기 위해 시장을 확대하기 때문이죠. <물에 잠긴 세계>나 <소멸의 땅>과 달리 미래 인류는 자연에게서 압도당하기 원해도 그러지 못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저런 대자연을 계속 보존하고 싶다면, 우리에게 다른 방법이 없을 겁니다.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또 다른 체계를 찾는 것. 그것만이 해답이겠죠. 물론 당장 생태적인 혁명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첫걸음을 떼야 할 겁니다. 완전히 보편적인 기본 소득이나 추첨 민주주의 등은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