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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거대 괴수는 여자의 로망이 되지 못하는가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거대 괴수는 여자의 로망이 되지 못하는가

OneTiger 2018. 3. 17. 14:38

[자, 거대 괴수는 여자의 로망이 될 수 있습니다. 왜 거대 괴수가 무조건 파괴적이어야 하죠?]



거대 괴수는 로망입니다. 거대 괴수가 좋습니까? 네, 좋습니다. 비록 현실에 거대 괴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SF 소설들이 필요하죠. 하지만 현실 속에 거대한 생명체들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몇 백 kg이 나가는 아무르 호랑이나 불곰은 충분히 괴수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르 호랑이나 불곰이 별로 크지 않다고요? 몇 톤이 나가는 인도 코끼리나 아프리카 코끼리는 어떨까요. 게다가 육지 동물들만 언급할 이유는 없겠죠. 강이나 바다로 시선을 돌릴 때, 우리는 더욱 거대한 생명체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대 괴수로서 아나콘다나 바다 악어는 손색이 없을 겁니다. 백상아리나 범고래 역시 마찬가지겠죠. 향유 고래나 대왕 오징어는 정말 장대한 야수입니다. 그리고 예전에 지구에는 공룡들이 활보했어요. 비록 (조류 이외에) 공룡들은 사라졌으나, 생명체들이 흐르는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몇 억 년 이후, 거대한 야수들이 다시 활보할지 모릅니다. 게다가 거대한 생명체에게 경탄할 수 있다면, 자이언트 세콰이어 같은 식물에게 경탄할 수 있겠죠. 세콰이어는 움직이지 않으나, 그런 거대한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지 않습니까.



현실 속의 거대 생명체와 SF 속의 거대 생명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히 다릅니다. 저는 두 가지가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고지라 같은 거대 괴수에게 로망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거대 생명체들에게 경탄할 수 있어요. 문제는 이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거대 괴수가 남자의 로망이라고 단정합니다. 이건 상당히 이상한 논리입니다. 왜 거대 괴수가 남자의 로망이죠? 왜 여자는 거대 괴수를 좋아하지 못하나요? 거대 괴수를 좋아하는 여자가 이상한가요? SF 동호회나 모임에서 저는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다들 거대 괴수가 남자의 로망이라고 말합니다. 여자가 거대 괴수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다들 거대 괴수가 남자의 로망이라고 신나게 떠들어요. 마치 거대 괴수가 남자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하죠. 여자와 거대 괴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화석들과 거대 생명체들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이나 생태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생물학자나 생태학자가 모두 남자인가요? 아닙니다. 여자들 역시 생물학자나 생태학자가 되고, 스테고사우루스나 향유 고래나 레드 우드를 연구할 수 있어요. 그건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소설 <소멸의 땅>과 <빛의 세계>에는 자연 생태계와 거대 괴수를 동경하는 여자 생물학자가 등장합니다. 그런 여자 생물학자가 그저 소설에만 등장할까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왜 자꾸 사람들은 거대 괴수가 남자들의 로망이고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 떠들까요. 저는 그게 가부장적인 고정 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SF 창작물에서 거대 괴수들은 무슨 역할을 맡을까요. 숱한 거대 괴수들은 파괴자와 학살자가 됩니다. 고전적인 고지라부터 우주 드래곤(!)에 이르기까지, 거대 괴수들은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습니다. 거대하기 때문에 괴수들은 훨씬 거대하게 때리고 부술 수 있죠.


그리고 숱한 남자들은 때리고 부수는 역할이 남성다운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군대가 남자들을 우대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뭔가를 거창하게 때려부수고 싶다면, 군대를 동원해야 합니다. 군대는 근력이 강한 남자들을 우대했고, 군대는 곧바로 남자입니다. 군대는 남자들이 때리고 부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래서 남자다운 것은 강하게 때리고 부술 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리지 않는 존재, 약한 존재를 계집애 같다고 표현합니다.



이 세상에는 남자다운 것이 강하고 잘 때려부수는 것이라는 공식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남자는 잘 때려부수는 강한 것을 좋아하고, 이런 심리는 거대 괴수로 이어집니다. 비단 거대 괴수만 아니라 초중전차나 공중 전함처럼 뭔가 거대하고 강하고 파괴적인 것은 남자의 로망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모순이 존재합니다. 첫째, 남자답다는 용어는 가부장적인 차별입니다. 생물적으로 남자는 분명히 여자보다 근력이 강합니다. 하지만 남자가 근력이 강하다고 해도, 그게 남자가 무조건 파괴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건 그저 군대 같은 지배 계급이 세뇌한 결과에 불과합니다. 인민을 착취하기 위한 세뇌죠.


둘째, 왜 거대 괴수가 무조건 파괴자가 되어야 합니까. 거대 괴수는 무조건 파괴자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르 호랑이, 바다 악어, 백상아리, 대왕 오징어, 스테고사우루스는 살육 병기가 아닙니다. 그저 그들은 그렇게 진화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보다 그들의 거대한 몸집과 이빨과 가시에만 치중합니다. 쌈박질이 재미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관찰할 수 있어요. <오퍼레이션 제네시스> 같은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공룡들이 서로 어울리고 놀기 때문이죠. 이 게임은 공룡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나, 그건 부수적일 뿐입니다.



거대 괴수는 오직 남자의 로망만이 아닙니다. 숱한 여자 고생물학자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여자 역시 거대 야수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군대와 파괴는 남자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건 지배 계급이 자꾸 세뇌한 결과일 뿐이죠. (SF 세상에는 이런 편견들이 아주 많죠. 저는 정말 거시적이고 전복적인 SF 팬들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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