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거대 괴수 팬과 형이상학적인 분석 본문
[고지라를 근본적으로 논의하고 싶다면, 거대 괴수 팬들은 자본주의와 환경 오염을 논의해야 하겠죠.]
아마 고지라는 핵 발전소를 이야기하는 가장 유명한 거대 괴수일 겁니다. <고지라> 시리즈는 엄청나게 많고, 어떤 창작물들은 핵 발전소나 핵 전쟁과 별로 관계가 없어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고지라는 핵 발전소와 떨어지지 못하는 거대 괴수이고, 그래서 1998년이나 2014년에 등장한 고지라 역시 핵 전쟁이나 핵 발전소와 깊은 관계를 맺었죠. 고지라를 좋아하는 괴수 팬들이 그런 부분을 의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지라가 거대한 골판들을 번쩍거리거나, 멋지게 푸른 방사열선을 뿜거나, 우렁차게 포효하거나, (깡총거리며 춤을 추거나, 몸을 웅크리고 날아가거나) 심해를 헤엄치는 모습은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저는 고지라가 정말 현대적으로 변모한 드래곤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고지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영화 시리즈를 파고들면, 결국 어떤 문제에 부딪힙니다. 원조 본토 시리즈와 해외 시리즈 모두 그렇죠. 왜 2014년 <고지라>가 잔지라 핵 발전소에서 시작했겠어요. <고지라>를 깊이 이야기한다면, 고지라가 헤엄치는 모습이나 무토가 난리법석을 치는 모습만 아니라 핵 발전소 역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 핵 발전소가 존재해야 할까요.
2014년 <고지라> 자체는 핵 발전소를 반대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그저 이윤을 노리는 블록버스터에 불과하고, 핵 발전소는 괴수를 위협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하죠. <고지라>는 아주 표면적으로 문제를 훑어볼 뿐이고, 문제를 자세히 분석하지 않아요. 따라서 <고지라>를 이용해 핵 발전소 문제를 논의한다면, 그건 별로 가치가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창작물은 온전히 창작가의 전유물이 아니고, 독자나 관객이나 플레이어가 소설이나 영화나 게임을 비평할 때, 창작가가 놓친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한 번 따져 볼까요. 현실에 핵 발전소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고지라>라는 영화는 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등장했다고 해도, <고지라>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겠죠. 비록 <고지라>가 그저 블록버스터에 불과하고 문제를 피상적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핵 발전소 문제는 이 영화와 떨어지지 못해요. 그래서 저는 탈핵 운동과 <고지라>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괴수 팬이 <고지라>를 정말 아낀다면, 이 영화를 좀 더 깊게 분석하고 싶다면, 탈핵 운동 같은 사안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겁니다.
2014년 <고지라>를 싫어하는 괴수 팬들 역시 많습니다. 어떤 괴수 팬은 고지라가 가메라를 따라간다고 비난하고, 어떤 괴수 팬은 감독이 괴수 대결을 너무 아낀다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고지라는 중립적인 자연 그 자체이고, 인류를 구원하는 보호자가 아닙니다. 어떻게 고지라와 가메라가 서로 비교될 수 있겠어요. 게다가 괴수 대결이 나오지 않는 대신 고지라는 아주 묵직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얻을 수 있었죠. 공항에서 등장하는 첫 장면은 정말 전율입니다. 저는 거대 괴수들이 때리고 부수는 악당을 넘어섰으면 좋겠어요.
<고지라>는 느리고 우직한 영화이고, 덕분에 핵 발전소 문제 역시 그렇게 보입니다. 사실 후쿠시마 재난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요란하게 때리고 부쉈다면, 그건 별로 어울리지 않았을지 모르겠어요. <고지라>는 절대 <퍼시픽 림> 같은 영화가 아니죠. <퍼시픽 림>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지라>는 후쿠시마 재난 같은 비극을 밑바탕에 까는 영화이고, 그래서 느리고 우직한 분위기가 훨씬 어울린다는 뜻입니다. 감독 가렛 에드워즈가 정말 그걸 의도했는지 저는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지라>와 우직한 분위기는 잘 어울립니다. 괴수 대결들이 많았다면, 분위기가 훨씬 가벼워졌을지 몰라요.
그래서 <고지라>는 후쿠시마 재난이나 탈핵 운동 같은 사안들과 함께 묶였습니다. 비단 <고지라>만 아니라 환경 아포칼립스를 묘사하는 SF 창작물들은 많고 많습니다. 이런 창작물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왜 환경 오염이 일어나는지 물어봐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런 물음은 자본주의 비판이라는 논의로 이어질 테고요. 문제는 자본주의가 퍼뜨리는 왜곡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평화롭다고 주장합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공산주의를 들먹이는 논리는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만 나뉘었다고 전제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다른 운동들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정말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폭력적입니까? 그건 웃기는 헛소리죠.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20세기 최대의 비극일 겁니다. 그런 전쟁이 어디에서 터졌습니까? 자본주의를 생성한 국가들이 어디 국가들입니까?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전쟁을 막기 위해 무슨 고생을 했죠? 심지어 사람들이 비난하는 이오시프 스탈린조차 나치가 위험하다고 경고했어요.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경고를 무시했고, 나치를 편들었죠. 네, 맞아요. 소비에트 연방 같은 공산주의는 아주 억압적입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보다 폭력적이라고요? 역사적인 흐름을 계산한다면, 그런 헛소리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왜 사람들이 이런 단순하고 상식적인 계산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왜곡할까요. 사람들이 멍청하기 때문에? 아닙니다. 그렇게 자본주의 기득권들이 열심히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지배적인 관념과 헤게모니는 단단한 철벽이고, 그걸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걸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환경 오염을 떠들 기반이 없을 겁니다. 환경 오염을 떠들 기반이 없다면, <고지라> 같은 괴수물을 깊게 분석하지 못하겠죠.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고 <고지라> 같은 거대 괴수물을 깊이 분석한다고요?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고, 연출이나 각본이나 시각 효과를 논할 수 있겠죠. 아가미 달린 고지라를 이야기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들먹거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고 좀 더 깊이 들어간다면, 그런 분석은 형이상학적인 함정에 빠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