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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거대 괴수의 골격이 자극하는 상상력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거대 괴수의 골격이 자극하는 상상력

OneTiger 2018. 3. 24. 09:52

[거대 괴수가 직접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골격은 문자 그대로 거대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괴수물로서 영화 <고지라>는 초반부에 아주 거대한 뼈를 보여줍니다. 비록 괴수가 초반에 등장하지 않으나, <고지라>는 아주 거대한 뼈를 보여주고, 거대한 야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하죠. 괴수물에서 이런 거대한 뼈는 아주 요긴한 장치입니다. SF 창작가는 구태여 괴수를 보여줄 필요가 없습니다. SF 창작가는 거대한 뼈를 이용해 괴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할 수 있고, 호기심을 한껏 부각할 수 있습니다. 대놓고 괴수를 보여주는 방법보다 거대한 골격을 강조하는 방법이 훨씬 인상적일지 모르죠.


이런 거대한 뼈는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고,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거대한 설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고지라> 이외에 숱한 SF 창작물들은 이런 거대한 골격을 이용합니다. 비단 괴수물만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 역시 이런 거대한 뼈를 이용할 수 있겠죠.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이나 게임은 거대한 골격을 보여주고, 자신들이 아주 거대한 설정을 만들었다고 암시할 수 있어요. 비록 괴수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거대한 골격 자체는 거대한 설정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에 거대 골격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일 겁니다.



아쉽게도(?) 현실에는 이런 거대 괴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는 100m짜리 초자연적인 괴수가 존재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거대한 고래를 볼 수 있고, 거기에서 뭔가 압도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겠죠. 고지라와 달리 고래는 그렇게 거대하지 않으나, 크기는 상대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인간은 2m를 넘지 않습니다. 향유 고래는 10m 이상 자라고, 심지어 흰긴수염고래는 30m까지 자랄 수 있어요. 만약 흰긴수염고래를 코 앞에서 대면한다면, 인간은 바다 괴수가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과거에 공룡들이 살았고, 공룡들은 아주 거대한 골격들을 남겼습니다. 비록 인간은 거대한 공룡들을 볼 수 없으나, 공룡 뼈들은 아련하고 압도적인 감성을 풍깁니다. 뭔가 거대한 존재가 지상을 활보했다는 암시. 어떤 거대한 존재가 우리와 똑같은 우주를 공유한다는 암시. 저는 공룡 화석이 인간에게 그런 감성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SF 창작물들이 거대 괴수 골격들을 보여주는 이유는 공룡 화석 때문인지 모릅니다. 거대 괴수 골격은 공룡 화석이 우리에게 불어넣는 감성을 재현하고 싶어할지 몰라요.



살아있는 거대 동물을 보는 것과 거대 골격을 보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아무리 향유 고래가 진짜 존재한다고 해도, 살아있는 향유 고래를 보는 것과 향유 고래 골격을 보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왜냐하면 거대 골격은 암시이고,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저에 가라앉은 고래 골격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요. 아마 사람들은 각자 거대한 고래가 깊고 깊은 심해에서 헤엄치는 장면들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그건 비록 추상적인 상상에 불과하나, 때때로 추상적인 상상은 시각적인 측면보다 훨씬 거대할 수 있습니다.


직접 보는 것이 객관적인 행위라면, 상상은 보다 주관적인 행위이고, 주관적인 행위는 밑도 끝도 없이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상상은 비교적 저렴한 행위입니다. 덕분에 상상은 얼마든지 갈래를 뻗고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죠. 저는 시각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고, 당연히 시각적인 측면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상할 수 있고, 상상에 날개를 달 수 있고, 그래서 상상은 시각보다 멀리 나갈 수 있습니다. 향유 고래를 직접 보는 것보다 향유 고래 골격에서 상상력을 유도하는 것이 더욱 멀리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어떤 화가가 춘향을 그렸다고 가정하죠. 춘향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표적인 미인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상상하는 춘향은 서로 다를 겁니다. 그래서 화가가 직접 춘향을 그렸을 때, 누군가는 거기에 환호할지 모르나, 누군가는 실망할 겁니다. 소설이 영상화되었을 때, 사람들은 영상이나 밑그림에 실망하곤 합니다. 소설은 상상력을 유도할 수 있으나, 그림은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배우가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영화가 소설을 살리지 못했다고 비판하죠.


똑같이 스테고사우루스 골격을 관찰한다고 해도, 고생물학자들은 서로 다른 스테고사우루스들을 고증합니다. 스테고사우루스 골격은 서로 다른 상상력들을 유도했어요. 저는 살아있는 괴수와 괴수 골격이 이것과 비슷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괴수 골격을 봤을 때, 사람들은 괴수가 활보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괴수가 직접 활보하는 모습보다 그런 상상력이 더 거대할 수 있어요. 괴수 골격을 집어넣는 각종 SF 창작물들은 그런 상상력을 유도하기 바랄 겁니다. 아마 앞으로 이런 방법은 계속 인기를 끌겠죠. 괴수를 이야기하지 않는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해도, 괴수 골격을 슬쩍 보여주고, 사람들에게서 상상력을 유도하겠죠.



※ 이미지 출처: http://civilization.wikia.com/wiki/File:Monstrous_Alien_Remain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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