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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소멸의 땅>이 야생의 적막함을 사랑하다 본문

SF & 판타지/비경 탐험

<소멸의 땅>이 야생의 적막함을 사랑하다

OneTiger 2017. 10. 27. 20:00

[어쩌면 생물학자는 이런 드넓고 기이한 자연 생태계와 기이한 바다 괴수를 좋아할지 모르겠어요.]



흔히 제프 밴더미어는 뉴 위어드 작가로 불립니다. 따라서 밴더미어가 쓴 <소멸의 땅>은 뉴 위어드 소설이겠죠. 뉴 위어드는 일련의 우주적 공포 소설들을 계승하고,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우주적 공포 소설들을 쓴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하지만 <소멸의 땅>은 러브크래프트 같은 작가들이 쓴 환상 소설들과 다소 다릅니다. 뉴 위어드 작가들은 기존 작가들에게서 머물지 않고 좀 더 넓은 범주를 향해 나갑니다. 어떤 작가는 도시에 집중하고, 어떤 작가는 역사에 집중하고, 어떤 작가는 경제 구조에 집중하죠.


<소멸의 땅>에서 제프 밴더미어는 생태와 환경을 이야기합니다. 작가는 생물학자를 소설 주인공으로 설정했고, 자연 환경이 끊임없이 인류 문명을 집어삼킨다고 묘사했습니다. 자연 환경과 인류 문명을 단적으로 구분하기가 어렵겠으나, 작가는 이 소설에서 생태를 강조하기 위해 자연과 문명을 확연히 대립시킵니다. X 구역이라는 기이한 지역에서 초자연적 현상이 벌어지고, 인간들은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정부는 탐사대들을 파견하나, 탐사대들은 연이어 조사에 실패하고, 마침내 주인공 생물학자가 속한 탐사대가 출발해요.



탐사 대원들은 열심히 X 구역을 돌아다니나, 뭐 하나 제대로 건지지 못합니다. 분명히 이상 현상들은 도처에 널렸으나, 대원들은 그저 겉표면만 바라볼 뿐입니다. 근본적인 원리나 본질적인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죠. 이럴 때, 러브크래프트를 비롯한 일련의 작가들은 공포를 강조했을 겁니다. 하지만 소설 주인공인 생물학자는 별로 공포를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어떤 편안함이나 친근함,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 X 구역에는 울창한 수풀과 커다란 야생 동물들만 존재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문명이 후퇴했기 때문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에서 무성한 수목들과 덤불들이 버려진 도시를 집어삼키는 것처럼 이상 현상은 마을과 건물들을 집어삼켰습니다. 현대 문명이 자랑하는 이기는 이 기이한 구역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군대조차 이 기이한 구역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감히 발을 붙이지 못하는 곳입니다. 다른 탐사 대원들은 이런 환경을 불쾌하게 여기나, 생물학자는 울창하고 무성한 수목들과 각종 동물에게 매료됩니다. 생물학자는 인류 문명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계속 그런 장소들을 찾아다녔죠.



따라서 적막함은 이 소설을 지배하는 주된 감성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완전한 적막이 아니라 인류 문명이 사라진 적막이죠. 사람들이 떠들거나 자동차들이 달리거나 공장 기계들이 돌아가는 소리는 X 구역에서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수목들과 야생 동물들이 그런 자리를 채웁니다. 그 와중에 생물학자는 뭔가 비인간적이거나 야생적인 요소를 한껏 만끽합니다. 어떤 평론가나 독자는 이를 <물에 잠긴 세계>에 비교할지 모르겠습니다. 제임스 발라드 역시 압도적인 자연 환경에 매료되는 인간을 그렸죠.


하지만 <물에 잠긴 세계>와 <소멸의 땅>은 다소 다릅니다. <물에 잠긴 세계>에서 소설 주인공은 전세계가 물에 잠겼기 때문에 자연에게 끌렸습니다. 만약 전세계가 물에 잠기지 않았다면, 소설 주인공은 예전처럼 평범하게 살아갔겠죠. 하지만 생물학자는 X 구역에 들어가기 전부터 야생적인 요소에 푹 빠졌습니다. <물에 잠긴 세계>에서 전세계적인 홍수는 기폭제가 되었으나, <소멸의 땅>에서 X 구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X 구역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도 생물학자는 여전히 적막한 자연 생태계를 사랑했을 테고, 계속 인적이 드문 장소들을 방문했겠죠.



이처럼 적막한 자연 생태계는 <소멸의 땅>을 지배하는 감성입니다. 따라서 독자가 이 소설을 좀 더 피부로 직접 느끼고 싶다면, 그런 장소들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 물론 독자가 문명 세계와 단절된 대자연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연 환경은 가까운 곳에도 존재합니다. 도시나 마을 부근에 산이 있다면, 그 산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겁니다. 한적한 숲 속에서 혼자 명상에 잠긴다면, 왜 생물학자가 야생적인 요소에 푹 빠졌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겠죠.


솔직히 동네 뒷산도 그렇게 명상하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입니다. 등산객들이 드문 날을 고를 수 있다면, 적막한 숲 속에서 문명 세계와 단절된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어요. 비록 그게 뇌내 망상이라고 해도 생물학자를 대충 이해할 수 있겠죠.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압주>를 비롯해 자연 환경을 탐험하는 비디오 게임들도 간접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들을 이용한다면, <소멸의 땅>을 좀 더 제대로 즐길 수 있을지 모릅니다. 비록 잠시 동안이나, 독자 역시 생물학자가 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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