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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협동 조합과 공공 육아 본문

사회주의/사회 공학

화성 협동 조합과 공공 육아

OneTiger 2018. 8. 31. 18:06

킴 스탠리 로빈슨은 <아서 스턴벡이 화성에서 변화구를 가르쳐준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 단편 소설은 어떻게 화성에서 사람들이 야구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화성과 지구는 다르고, 따라서 야구 경기 역시 바뀝니다. 킴 로빈슨은 이런 야구 경기를 이용해 얼마나 화성이라는 외계 행성이 지구와 다른지 강조할 수 있어요. 낯선 공간을 강조하기 위해 종종 SF 작가들은 이런 방법을 이용합니다. 소설 <첫숨>에서 배명훈은 인공 거주지에서 춤추는 무용수를 그립니다. 인공 거주지는 지구와 다르고, 당연히 무용수는 지구 무용수와 다른 기교들을 선보입니다.


그런 기교들은 꽤나 독특하고, 독자는 인공 거주지에서 낯선 감성을 느낄 수 있겠죠. <허공에서 춤추다>를 쓴 낸시 크레스는 SF 작가들이 발레를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운동 경기나 무용을 이용해 낯선 공간을 강조하는 방법은 드문 소재가 아닐지 모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아이들이 야구하는 장면 역시 그런 방법에 속하겠죠. 감독은 야구를 이용해 사람들이 인공 거주지에 산다는 설정을 보여주기 원했겠죠. 저는 그 장면이 나름대로 재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도 <화성에서 변화구>는 꽤나 밋밋한 소설입니다. 사람들이 대립하거나 위기에 처하는 장면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화성인이 변화구를 던지는 장면은 약간 긴장감을 내포했으나, 짜릿한 절정을 연출하기에 다소 부족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화성 협동 조합에 시선이 갔습니다. 화성인들은 협동 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그저 종업원들이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이는 새로운 사회 구조입니다. 작가는 자세히 묘사하지 않으나, 화성 협동 조합은 공공 육아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구인은 화성 협동 조합이 독특하다고 느껴요.


만약 작가가 이런 부분을 더욱 강조했다면, 이런 사회 구조를 운동 선수의 심리 상태나 슬럼프와 연결했다면, <화성에서 변화구>는 더욱 흥미로운 소설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재미있게도 사회주의 유토피아 소설들은 이런 공공 육아를 강조합니다. <화성에서 변화구>는 공공 육아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나, SF 독자들은 <에코토피아 뉴스>나 <붉은 별>, <빼앗긴 자들>에서 육아 상황을 살필 수 있어요. 이런 소설들에서 사람들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키우고 개인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진보 좌파 운동에서 육아와 아이 교육은 꽤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좌파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리 사회적인 공유를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유아나 아이 교육에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더 뛰어났으면 좋겠다는 심리는 굉장히 강합니다. 특히, 경쟁과 서열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좌파적인 사람 역시 그런 경쟁이나 서열에서 멀어지지 못해요. 어쩌면 그래서 공공 육아는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아예 부모-자식 관계를 지우는 육아 방법을 고민합니다. 자신의 자식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사람들은 모든 아이를 똑같이 대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편애는 없어지지 않겠으나, 적어도 사람들이 핏줄에 덜 집착할지 모르죠. 하지만 이는 너무 급진적인 방법입니다. 우리가 이런 방법을 당장 현대 문명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부부가 아이를 낳자마자 육아원이 아이를 데려간다면, 부부는 크게 상심하거나 분노할 겁니다. 아무리 좌파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걸 받아들이지 못할지 모르죠. 언젠가 인류 사회는 그렇게 흘러갈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당장 적용하기에 너무 급진적인 방법입니다. 이는 그저 사고 실험일 뿐입니다.



보다 현실적인 방법은 교육과 함께 사회 구조를 바꾸는 방법일 겁니다. 문제는 학교가 그걸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설사 학교가 그걸 가르친다고 해도, 교육과 현실은 너무 많은 괴리를 보여줍니다. 사회가 경쟁과 서열을 강조하기 때문에 아무리 교사들이 경쟁과 서열을 비판한다고 해도, 아이들은 계급을 차별할 겁니다. 이미 아이들은 아파트가 얼마짜리인지 묻습니다. 이미 아이들은 계급 차별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교사들이 인성 교육을 강조한다고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이미 사회에서 기득권들은 약자들을 짓밟습니다. 아이들 역시 두 눈이 있고 두 귀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교육을 바꾼다고 해도, 그건 단편적인 방법일 겁니다. 정말 중요한 변화는 사회 구조 변화입니다.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교육이 바뀐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이는 교육 변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교육과 사회 구조를 함께 바꿔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본 소득부터 생산 수단의 사회적 공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런 변화들을 계속 시도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사회를 바꿀 때, 아이들은 더 이상 아파트가 얼마짜리인지 묻지 않을 겁니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육아는 힘듭니다. 육아는 정말 힘듭니다. 아기를 키운 적이 있다면, 다들 육아가 힘들다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겠죠. 하지만 육아가 직접 수익을 창출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육아를 비웃습니다. "집에 가서 애나 봐라." 이건 욕설입니다. 육아는 욕설이 됩니다. 학교 교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각한 양극화가 사람들을 자살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당연히 아이들은 아파트가 얼마짜리인지 묻겠죠. 이런 현실을 직면할 때마다 저는 <화성에서 변화구> 같은 소설을 머릿속에 떠올립니다. 화성의 변화구 역시 중요하나, 저는 화성 협동 조합이 훨씬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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