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남자들이 사회적인 약자가 되는 이유 본문
소설 <사소한 정의>에서 앤 레키는 오직 여성 대명사만을 사용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남성 대명사가 나오지 않아요. 심지어 사람들이 욕할 때조차, 젖가슴 운운할 뿐이고 좆(자지)을 들먹이지 않죠. 어쩌면 비단 젖가슴만이 아니라 씹(보지) 구멍 운운하는 욕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앤 레키가 여성 대명사를 사용한 이유는 현대 문명 사회에서 여자들이 약자이기 때문일 겁니다. 여자가 약자이기 때문에 오직 여성 대명사만을 사용하는 사회는 이질적이겠죠. 독자들은 그런 사회가 이질적이라고 생각할 테고, 작가는 그런 감성을 노렸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설정이 잘못이라고 따질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남자들 역시 숱한 고초들을 겪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폭행을 당하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여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남자들 역시 많습니다. 어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많은 권력을 휘두릅니다. 여자 자본가 아래에서 남자 노동자들은 신음합니다. 여자 상사 아래에서 남자 부하들은 고통을 받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남자들은 남자 역시 약자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약자일까요? 남자와 여자가 대등한 약자일까요?
가령, 강간 문제가 터질 때, 숱한 남자들은 남자 역시 성 폭행을 당한다고 주장합니다. 네, 맞아요. 남자들 역시 성 폭행을 당하죠. 문제는 사회 구조입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많은 성 폭행들을 당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는 남자에게 유리한 여건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근대 식민지 수탈을 자행한 침략자들이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남자들은 권력자들이 될 수 있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숱한 독점 자본가들은 남자들입니다. 군대는 여전히 남자들을 우대하고, 사람들은 남자 탐험가들이나 남자 정복자들을 숭상합니다. 수탈과 폭력 때문에 남자 탐험가들과 남자 정복자들은 부와 명예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가부장적 구조는 폭력적인 남자를 선호합니다. 그래서 폭력적이지 않은 남자, 폭력을 휘두르지 못하는 남자는 무시를 당하고 폭행을 당합니다. 남자들 역시 성 폭행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성 폭행이라는 사회 문제에서, '성별 계급 속에서 약자는 여자'입니다. 남자들이 성 폭행을 당한다고 해도, 그건 여자들이 폭행을 당하는 경우와 많이 다릅니다. 똑같이 가부장 구조 속에서 약자가 된다고 해도, 여자와 남자는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 약자가 됩니다. 여자들이 폭행을 당하는 이유는 사회 구조적으로 남자가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이 폭행을 당한다면, 그건 가부장적인 구조가 폭력적인 남자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소설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에는 세 남자 우주인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주인공 남자 우주인은 이른바 초식남입니다. 다른 두 남자 우주인은 권위와 호색을 상징하죠. 그래서 주인공 남자 우주인은 다른 두 남자에게 밀립니다. 이게 성별 계급 때문일까요? 성별 계급 속에서 주인공 남자 우주인이 약자가 될까요? 그건 아니겠죠.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남자들이 서열을 정했기 때문에 주인공 남자는 밑바닥으로 밀려나야 했어요. 따라서 남자들이 폭행을 당한다면, 그런 남자들 역시 가부장적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폭행을 당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함께 가부장적인 구조를 뜯어고쳐야 할 겁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는 당장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남자들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반면 여자들은 아예 기회를 잡지 못합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는 폭력적인 남자가 될 수 있고, 높은 서열이 될 수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는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을 막지 않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는 그런 남자들을 육성합니다. 하지만 여자는 폭력을 휘두를 기회를 잡지 못합니다.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는 그런 여자들을 막습니다. 그래서 메갈리아는 그렇게 숱한 비난들을 받죠.
이미 근대 식민지 수탈 시대부터 여자들은 그런 기회를 붙잡지 못했습니다. 여자들은 폭력을 휘두를 기회를 잡지 못했어요. 우리가 아는 수많은 유럽 탐험가들과 정복자들은 남자들이죠. 남자들은 부와 명예를 획득했고, 그런 상황 속에서 사회 구조는 남자들을 우대했고, 그래서 성직과 철학과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역시 남자들이 되었죠. 즉, 성 폭행은 그저 현재의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여자를 성별 계급의 약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런 거시적인 흐름과 사회 구조 때문입니다. 저는 남자 역시 약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남자들은 성별 계급의 약자가 아닙니다. 여자 상사에게 폭행을 당하는 남자 부하는 자본주의 속의 약자입니다. 상사가 자본주의 강자이기 때문에 부하는 거기에 저항하지 못하죠. 임금이 걸렸기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 성 폭행을 당하는 남자는 가부장적인 구조 속의 약자입니다. 가부장적 구조가 자꾸 폭력적인 남자를 우대하기 때문에 폭력적이지 않은 남자는 뒤로 밀려납니다. 물론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여자에게 두들겨맞는 남자들 역시 있을 겁니다. 저는 개인적인 성 폭행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압도적으로 수많은 성 폭행들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소설 <빼앗긴 자들>에서 사회주의 남자는 자본주의 남자들에게 조롱을 받습니다. 주인공 남자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고 생각하나, 자본주의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남자들은 여자가 보조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사회주의 남자는 여자가 보조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그런 주장은 조롱을 받습니다. 이렇게 남자 역시 약자가 되고 조롱을 받습니다. 이건 성별 계급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가부장 구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고 싶다면, 남자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 구조를 없애야 할 겁니다. 남자들은 고작 메갈리아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진짜 적을 없애야 할 겁니다. 하지만 숱한 남자들은 오직 메갈리아만을 욕할 뿐이고, 자본주의와 가부장적인 구조에 복종하죠. 그건 노예 근성이에요. 남자들이 메갈리아를 물어뜯는다고 해도, 남는 것은 없습니다. 메갈리아는 훨씬 원대한 억압에서 비롯한 부산물입니다. 남자들은 진짜 적이 누구인지 파악해야 할 겁니다. 남자들의 진짜 적은 다른 여자들이 아니라 자본주의나 가부장 구조 같은 억압적인 사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