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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자본론>과 기계 노동자들의 대두 본문

사회주의/사회 공학

<원숭이 자본론>과 기계 노동자들의 대두

OneTiger 2018. 8. 2. 23:22

임승수가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자본론> 해설서입니다. <원숭이 자본론>은 카를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을 훨씬 쉽게 설명하는 책이죠. 이 책은 <자본론> 원본이 설명하는 여러 내용들을 담았고, 그것들 중 이윤율 저하 경향이 있습니다. 이윤율 저하 경향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전반적인 이윤율이 하강한다는 내용입니다. 전반적인 이윤율이 계속 하강한다면, 언젠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망하겠죠. 이윤율이 하강한다면, 기업들은 더 이상 활동하지 않을 테고, 기업을 운영하고 싶다고 해도 아무도 수익을 내지 못할 겁니다.


따라서 <자본론>이 설명하는 내용들 중 이윤율 저하 경향은 꽤나 많은 논란들을 부릅니다. 똑같이 마르크스 경제학자라고 해도, 누군가는 이게 맞다고 주장하고, 누군가는 이게 잘못되었다고 주장해요. 남한에서 고 김수행 교수는 가장 유명한 마르크스 경제학자일 겁니다. 하지만 김수행 교수는 카를 마르크스와 이윤율 저하 경향을 다르게 해석하고, 이것 때문에 많은 비판들을 받습니다. 사실 데이빗 하비 같은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 전문가 역시 이런 논란을 피해가지 못해요. 어쩌면 자본주의가 정말 망한다고 해도, 이 이론은 계속 논란에 부딪힐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윤율 저하 경향이 아닙니다. 이 이론을 이야기할 때, <원숭이 자본론>은 로봇 이야기를 꺼냅니다. 로봇 노동이 늘어난다면, 그게 이윤율 저하 경향을 불러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이윤이 노동자들의 초과 노동에서 나온다고 설명합니다. 이윤이 발생하는 이유는 노동자들이 (사회에 필요한 필요 노동이 아니라) 초과 노동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초과 노동은 사회에 아무 쓸모가 없고, 오직 자본가들에게만 쓸모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윤은 초과 노동이라는 착취에서 비롯합니다. 이런 초과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인간 노동자들입니다.


아무리 자본가가 열심히 기계를 돌린다고 해도, 기계는 초과 노동을 수행하지 못하고 따라서 이윤을 뽑아내지 못합니다. 아무리 자본가가 토지에 기름칠을 한다고 해도, 토지는 초과 노동을 수행하지 못하고 이윤을 뽑아내지 못합니다. 오직 노동자가 농사를 짓거나 기계를 돌릴 때, 자본가는 이윤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자본론>은 노동자들의 초과 노동이 이윤을 발생시키고, 이런 이윤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뒷받침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산업 혁명 이후, 지속적으로 첨단 장비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첨단 장비들이 늘어난다면, 노동자들의 숫자는 줄어들 테고, 당연히 이윤 역시 줄어들 겁니다. 이윤 그 자체는 늘어날지 모르나, 이윤율은 떨어지겠죠. 자본가들은 본전을 뽑지 못할 테고, 이런 상황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붕괴할지 모릅니다.



이렇게 <자본론>에서 첨단 장비는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자본론>에서 인간 노동자와 첨단 장비의 관계는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자본론>이 맞든 틀리든 그것과 상관없이 이런 발상은 꽤나 사이언스 픽션답습니다. 첨단 장비가 계속 발달한다면, 언젠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첨단 장비가 인간 노동자들을 완전히 대체한다면, 어떻게 마르크스 경제학이 이윤율을 계산할 수 있을까요? 인간 노동자들이 없다고 해도, 인간형 로봇이 초과 노동하고 이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만약 첨단 장비가 인간 노동자와 비슷해진다면? 인간형 로봇을 상상할 때, 흔히 우리는 금속 기계 로봇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생체 로봇, 인조인간, 안드로이드, 오토마톤을 만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미래의 이브>나 <로섬의 만능 로봇>처럼 미래 문명은 인조인간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죠. 만약 이런 인조인간들이 인간 노동자들을 대신한다면, 그때 이윤율 계산이 바뀔까요? 아니면 우리는 <모로 박사의 섬>이나 <쉽브레이커>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설들은 인조인간보다 반인반수 노예를 이야기하죠. 이런 노예들이 나타난다면, 이윤율 계산이 바뀔까요?



<자본론>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19세기 유럽 지식인이고, 인조인간이나 인간형 로봇을 진지하게 탐구하지 못했습니다. <모로 박사의 섬>은 하드 SF 소설이 아니고, 이 소설에서 사변적인 영역은 자연 과학적인 영역보다 훨씬 크죠. 19세기 유럽 지식인으로서 카를 마크르스는 인조인간을 자세히 고민하지 못했을 겁니다. <모로 박사의 섬>이나 <미래의 이브> 같은 소설은 진지한 인조인간 연구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겠죠. 설사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마르크스가 죽기 전에 <미래의 이브>를 읽었다고 해도, 카를 마르크스는 인조인간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겁니다.


마르크스는 현실을 분석하기 원했고, 함부로 미래를 장담하지 않았습니다. 이윤율 저하 경향과 자본주의 붕괴 이론은 꽤나 대담한 상상 같으나, 그것 역시 현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온갖 SF 소설들을 읽을 수 있다고 해도, 마르크스는 인조인간이나 인간형 로봇을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는 참고 사항으로 몇 줄을 끄적거릴 수 있겠으나, 인조인간은 마르크스에게 절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겠죠. <원숭이 자본론> 역시 인간형 로봇을 깊게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화두만 띄울 뿐입니다. 따라서 <자본론>이나 <원숭이 자본론> 자체는 사이언스 픽션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자본론>은 첨단 장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한다고 상정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SF 관점에서 우리가 <자본론>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정말 <로섬의 만능 로봇>이나 <아이 로봇>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마르크스 경제학이 이를 뭐라고 설명할까요? 정말 인간형 로봇이나 인조인간이 이윤율을 떨어뜨리고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원숭이 자본론>이 (농담으로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간형 로봇들 때문에 인류가 공산주의에 진입할까요? 이안 뱅크스나 켄 맥레오드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들의 기술적 유토피아가 여기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자본론>이 옳든 틀리든, <자본론>은 SF 팬덤에게 아주 멋진 영감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마르크스는 천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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