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화성의 왕궁>의 이질적인 생체 장비들 본문
※ 소설 <화성의 왕궁에서>의 치명적인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신체 개조는 존 발리가 쓴 소설들이 드러내는 특징들 중 하나입니다. 적어도 불새 출판사가 번역한 소설들은 그런 특징을 드러냅니다. <캔자스의 유령>, <역행하는 여름>, <노래하라, 춤추라>, <공습>, <분지 속에서> 같은 소설들은 독특한 생체 수술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노래하라, 춤추라>입니다. <캔자스의 유령>이나 <역행하는 여름>과 달리, <노래하라, 춤추라>는 아예 인간과 다른 생명체가 서로 결합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소설 주인공은 어떤 공생체와 결합했고, 덕분에 우주에서 살거나 신진대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더 이상 인간이라고 보기 어렵겠죠. 저는 소설 속의 공생체가 생체 강화복이나 생체 우주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SF 소설들에서 강화복이나 우주복은 기계입니다. <스타십 트루퍼스> 같은 소설부터 <헤일로 5: 가디언즈> 같은 비디오 게임까지, 다들 기계 강화복이나 기계 우주복을 이야기합니다. 아마 살아있는 우주복을 이야기하는 SF 소설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 같습니다. <노래하라, 춤추라>는 그런 드문 SF 소설들 중 하나입니다.
생체 우주복이 독특한 이유는 우리가 생명체를 입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생명체를 입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명체에게는 그런 용도가 없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생명체를 먹거나 다른 목적에 이용하죠. 식량과 의약은 우리가 생명체를 직접 이용하는 주된 목적입니다. 하지만 생체 개조 기술이 발달한다면, 왜 우리가 생명체를 입지 말아야 할까요. 우리는 얼마든지 우주복처럼 생명체를 개조할 수 있을 겁니다. 기계 강화복이나 기계 우주복은 그저 고정 관념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SF 작가들이 생체 우주복을 묘사하지 않는 이유는 그저 기계에 더 친숙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살아있는 우주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SF 작가들조차 차마 생체 우주복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SF 작가들은 고정 관념을 부수는 것 같으나, 어쩌면 그런 SF 작가들조차 진부한 고정 관념에 얽매일지 모르죠. 그래서 생체 우주복은 기계 우주복보다 상대적으로 적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는 미래 사람들이 정말 생체 우주복을 만들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기계 우주복이 효율적이고 편리하다면, 미래 사람들은 구태여 생체 우주복을 만들지 않을 겁니다. 아무도 미래를 알지 못하나, 생체 우주복은 그저 SF 소설이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기 위한 소품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소설 <화성의 왕궁에서>는 생체 우주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화성의 왕궁에서>는 공생체 우주복만큼 희한한 설정을 이야기합니다. 소설 속에서 화성 탐사대는 고립되었습니다. 연구 기지가 폭발했기 때문에 탐사대는 화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구에 돌아가지 못합니다. 언제 지구가 구조대를 보낼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화성 탐사대는 화성에서 자급자족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화성에서 식량과 물을 얻을 수 있을까요? <화성의 왕궁에서>는 그저 외계 행성에서 인간들이 생존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존 발리에게는 그런 소설을 쓸 마음이 있었겠으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존 발리는 독특한 생체 개조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테고, 그래서 화성 개척 사회와 생체 개조를 합쳤을 겁니다. 진짜 목적은 외계 행성 생존과 함께 생체 개조일 겁니다. 무엇이 연구 기지를 부쉈는지 살피는 동안 화성 탐사대는 이상한 생명체들을 발견합니다. 그것들은 지구 생명체와 달랐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것들이 건물처럼 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화성 식물들과 동물들은 정말 건물이 되었고, 식량과 물을 공급하는 주거 지역이 됩니다. 이걸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살아있는 주거 지역? 생체 건물?
화성 생태계는 정말 생체 건물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생체 건물에서 탐사 대원들은 아늑하게 먹고 마시고 쉴 수 있었습니다. 불새 출판사가 번역한 존 발리 소설들 중 <화성의 왕궁에서>는 유일하게 생체 건물을 묘사합니다. 존 발리는 비단 신체와 우주복만 아니라 건물조차 생명체로 만들었습니다. 미래 사람들이 이런 생체 건물을 만들 수 있을까요? 아마 기술적으로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미래 사람들은 구태여 생체 건물을 만들 것 같지 않습니다. 생체 건물은 학술적인 목적이나 호기심에 그치겠죠.
지금까지 생체 건물 따위 없이 인류는 잘 살아왔습니다. 생체 건물에게 아주 획기적인 장점이 없다면, 인류는 구태여 도시를 허물고 새롭게 생체 건물을 짓지 않을 겁니다. 생체 우주복처럼 생체 건물은 그저 독특한 설정에 불과할지 모르죠. 하지만 인류가 생체 건물에서 살지 않기 때문에,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화성의 왕궁에서>는 훨씬 독특하게 보일 겁니다. 만약 <화성의 왕궁에서>가 인공적인 생태계가 아니라 인공 지능과 로봇을 보여줬다면? 외계 식물들과 동물들이 아니라 외계 로봇들이 주거 지역을 건설했다면? 그건 별로 독특하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중장비들이 건물을 짓는 광경에 익숙합니다. 비록 건설 로봇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았으나, 온갖 중장비들은 언젠가 인공 지능으로 작동할지 모릅니다. 인공 지능이 조종하는 불도저나 포크레인은 로봇이 될 테고, 그래서 우리는 로봇들이 건물을 짓는 광경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건설 로봇이 현실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그런 광경에 익숙하죠. 만약 <화성의 왕궁에서>가 외계 건설 로봇들을 보여줬다면, 그렇게 놀라운 소설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은 설정은 좋은 SF 소재가 될지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