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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듄의 아이들>과 개조 족제비 설정 본문

SF & 판타지/개조 생명체들

<듄의 아이들>과 개조 족제비 설정

OneTiger 2018. 5. 20. 06:57

소설 <듄의 아이들>에서 사소하나 인상적인 설정들 중 하나는 독살을 막는 족제비입니다. <듄> 연대기는 은하 제국 황제와 거대 귀족들을 둘러싼 암투와 전쟁을 그립니다. 귀족들은 치열한 정치 공작들을 벌이고, 당연히 암살이나 독살은 대표적인 테러입니다. 그래서 폴 아트레이드는 사냥꾼 탐지기에게 암살 위협을 받았죠. 아트레이드 가문은 계속 암살 위협에 시달리고, 어떤 사람들은 정적들이 생물 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듄의 아이들>에서 이룰란은 독이 있는 동물들이 아트레이드 사람들을 독살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엘리야는 가문의 족제비들이 그런 동물들을 죽일 거라고 대답해요. 만약 정적들이 아트레이드 가문의 족제비를 이용하기 원해도, 족제비는 아트레이드 가문이 아닌 사람들을 공격할 겁니다. 저는 이런 생물 무기 설정을 더 읽고 싶었으나, <듄의 아이들>에는 더 이상 자세한 설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트레이드 가문의 족제비는 유전자 조작 동물이거나 초인적인 훈련을 거친 족제비일지 모르죠. 컴퓨터 인간이 돌아다니고 죽은 인간이 되살아나는 상황에서 개조 족제비는 대단한 기술이 아니겠죠.



이런 개조 족제비는 <듄의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설정일지 모릅니다. <듄의 아이들>은 사이언스 판타지입니다. 프랭크 허버트는 일부러 중세 유럽과 이슬람 제국을 조합했고, 그래서 <듄> 연대기는 우주 전쟁 소설이 아니라 중세 판타지 소설처럼 보입니다. 당연히 <듄> 연대기에는 기계 로봇들이 별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가끔 사냥꾼 탐지기 같은 로봇이 등장하나, 기계 로봇들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요. 기계 로봇들은 중세 판타지와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겁니다.


반면, 동물들은 (비록 그 동물들이 개조 생명체라고 해도) 중세 판타지 분위기를 해치지 않겠죠. 동물은 원초적이거나 야생적인 감성을 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걸 강화할 수 있어요. 고대부터 인류는 여러 동물들을 길들였습니다. 인류는 농사를 짓기 위해 소를 길들였고, 빨리 달리기 위해 말을 길들였고, 사냥감을 쫓기 위해 들개를 길들였습니다. 인류는 가축들을 꾸준히 개량했고, 가축들은 인류 문명을 지탱하는 동력이었습니다. 가축을 동물 장비라고 불러도, 그건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개조 동물이 사이버웨어를 덕지덕지 붙이지 않는다면, 개조 동물 장비는 중세 판타지 분위기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버웨어들을 장착했다고 해도, 개조 족제비는 기계 로봇보다 나을지 모릅니다. 사이버웨어들이 덕지덕지 붙어도, 동물이 기계보다 원초적이거나 야생적인 감성을 훨씬 더 많이 풍길 수 있기 때문이죠. 어쨌든 <듄> 연대기는 그저 중세 판타지를 모방할 뿐이고, 진짜 중세 판타지가 아닙니다. <듄> 연대기는 외계 행성들과 기후 위성들과 전투기들과 우주선들을 묘사합니다. 프랭크 허버트는 미래적인 시대에서 미래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기 원했고, 개조 동물은 그런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소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미래 시대와 중세 분위기의 조합. 우주 호위함과 단검을 든 전사의 조합. 외계 행성들과 귀족 가문의 조합. 이런 조합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를 뒤섞고, 독특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사이버웨어를 장착한 개조 족제비는 그런 조합을 상징하는 작은 수단이 될 수 있어요. 사이언스 판타지 소설들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런 조합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섞인다면, 물과 기름처럼 서로 갈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판타지는 물과 기름을 섞으려고 애씁니다. 게다가 그건 별로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독특한 풍미를 풍깁니다.



물과 기름이라는 비유는 사이언스 판타지에 어울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비빔밥? 예전에 비빔밥이라는 비유를 언급한 적이 있군요. 하지만 비빔밥에서 여전히 밥과 다른 재료들은 따로 놉니다. 저는 별로 적당하지 않은 비유를 골랐을지 모르겠어요. 그보다 사이언스 판타지는 칵테일에 가까울지 모르겠군요.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함께 어울리고, 색다른 풍미를 빚는…. 하지만 이것저것 함부로 뒤섞는다고 해도 그건 능사가 아닐 겁니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어울린다면, 분명히 그건 독특한 풍미를 빚을 겁니다.


하지만 작가가 주화입마에 빠지고, 이것저것 신나게 들이붓는다면…. 그건 향긋한 칵테일이 아니라 지독한 폭탄주가 될지 모르죠. 뭐, 폭탄주 역시 나름대로 매력이 있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게 너무 자극적이라고 외면할지 모르죠. 저는 사이언스 판타지 작가가 훌륭한 바텐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텐더가 훌륭한 조합 방법을 찾는 것처럼 사이언스 판타지 작가 역시 그래야 할 겁니다. 만약 그렇게 하고 싶다면, 작가는 자신이 무슨 주제로 글을 풀어나갈지 염두에 둬야 할 테고요. 저는 글이 주제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주제를 고민하는 동안 작가가 좋은 조합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이언스 판타지 작가가 욕심을 부린다면, 작가는 소설 속에 이것저것 너무 많이 들이부을지 모릅니다. 오히려 그런 과다한 조합은 단점이 될지 모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는 광범위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허용하나, 작가는 그런 상상력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우주 구축함부터 정신적인 마법까지, 작가가 신나게 이것저것 들이붓는다고 해도, 그건 능사가 아니겠죠. <듄> 연대기를 쓸 때, 프랭크 허버트는 이것저것 쏟아붓지 않았습니다. 프랭크 허버트는 중세 사라센 제국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조합들을 골랐습니다. 욕심을 부리고 싶은 사이언스 판타지 작가는 이런 전철을 참고해야 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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