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록토퍼스와 생명체 제작이라는 문제 본문
[게임 백과 사전이 설명하는 제작형 생명체 기술. 그 자체로서 이런 기술이 자연 환경을 교란할까요.]
게임 <문명: 비욘드 어스>에는 위대한 과오라는 설정이 있습니다. 뭔가 좀 어감이 이상하죠. 과오가 위대하다? 중대한 과오가 훨씬 어울리는 표현 같습니다. 아마 번역자가 실수한 것 같아요. 이 중대한 과오가 무엇인지 게임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 텍스트들을 읽어본다면, 경제 대공황이나 핵 전쟁이나 기후 변화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척 세력들은 지구를 떠나고 외계 행성에 도착합니다. 개척 세력들은 서로 다른 방법들로 문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죠. 조화 성향은 외계 생태계와 (문자 그대로)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고 믿는 사상입니다.
하지만 외계 행성이라는 환경 때문에 조화 성향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 보호와 많이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환경 보호론자들은 유전자 조작 생명체에 반대합니다. 그게 자연 생태계를 교란하거나 인체에 해를 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화 성향은 유전자 조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심지어 사람들이 거리끼지 않고 외계 유기물 찌개를 들이마십니다. 제노매스는 사람들의 유전자를 바꾸고, 사람들은 새로운 종이 됩니다.
록토퍼스는 조화 성향이 이용하는 생체 병기입니다. 부유석들을 담은 거대 해파리 같은 동물이죠. 부유석들 덕분에 록토퍼스는 대기권 밖으로 올라갈 수 있고, 인공 위성처럼 행성을 관측할 수 있어요. 일종의 살아있는 인공 위성이죠. 이 게임에서 유일무이한 살아있는 인공 위성입니다. 록토퍼스는 대기권의 미약한 영양분을 흡수하거나 태양열을 이용해 광합성할 수 있습니다. 게임 텍스트는 우주에서 하늘거리는 록토퍼스가 아주 아름답다고 설명하죠. 제노 타이탄 같은 무식한(?) 떡대 괴수보다 록토퍼스야말로 정말 신비로운 생체 장비인 것 같아요. (솔직히 무식한 떡대 괴수는 너무 진부한 설정이 아닐까요.) 만약 조화 성향이 록토퍼스를 띄우고 싶다면, 먼저 제작형 생명체 기술을 연구해야 합니다. 제작형 생명체 기술은 유전자 조작 기술입니다. 게임 텍스트는 대놓고 유전자 조작 작물들을 언급해요.
환경 보호 세력이 유전자 조작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녹색당이나 그린피스 같은 세력은 조화 성향을 강하게 비판할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저는 다른 시각에서 이런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작형 생명체 기술이 정말 문제가 될까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는 작물들과 가축들을 계속 개량했고, 자연 경관을 바꿨고, 약물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문명을 이룰 수 있었죠. 만약 인류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문명을 이루거나 번성하지 못했을 겁니다. 만약 우리가 생명체들을 훨씬 잘 개량할 수 있다면, 훨씬 진보적인 문명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왜 자꾸 생물 다양성이 줄어들고, 자연 환경이 오염될까요. 정말 유전자 조작 기술 같은 과학 기술이 문제일까요. 저는 그게 관념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류가 유전자 조작 기술을 평등하게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하나요? 누가 연구 자금을 대고, 누가 이득을 얻죠? 동남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가난한 농민들이 그럴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대답은 다국적 기업들입니다. 다국적 기업들, 거대 식량 회사들과 제약 회사들은 생체 개조 기술을 연구하고, 자금을 대고, 이득을 얻습니다. 문제는 그거죠. 누가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하는가?
따라서 유전자 조작 기술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는 소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정말 유전자 조작을 비판하고 싶다면, 우리는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고 함께 소유 문제(누가 과학 기술을 소유하는가)를 논의해야 합니다. 저는 유전자 조작 기술을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대기업들이 계속 과학 기술을 독점하는 상황을 저는 절대 바라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생체 개조 기술이 아니라 소유 문제입니다.
<비욘드 어스>에서 개척 세력들은 생태학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지구 생태계를 괴롭힌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개척 세력들은 생태학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생태학을 연구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자연 환경을 보존할 수 있을까요. 자연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생태학은 필수적인 학문일 겁니다. 하지만 생태학만으로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진짜 범인이 자본주의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생태학은 자본주의를 건드리지 못해요. 따라서 생태학만으로는 온전하게 자연 환경을 보존하지 못해요.
무엇보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계가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 구조와 삶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변화가 없다면, 아무리 우리가 생태학을 연구해도 자연 환경을 보존하지 못할 겁니다. 흔히 사람들은 환경 오염이나 기후 변화가 자연 과학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건 어느 정도 옳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자연 과학은 환경 오염을 완전히 막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를 꿰뚫어볼 수 있는 시각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