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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인조인간과 로봇, 개조 살덩이와 금속 기계의 차이 본문

SF & 판타지/개조 생명체들

인조인간과 로봇, 개조 살덩이와 금속 기계의 차이

OneTiger 2018. 7. 23. 19:17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나오는 레플리칸트를 로봇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일부 관객들은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로봇 이야기라고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인조인간들(레플리칸트들)이 무슨 존재인지 자세히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관객들은 그렇게 오해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인조인간들은 정말 로봇들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노예들입니다. 인간들은 인조인간들에게 함부로 명령할 수 있고, 인조인간들은 인간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안전 검사(기준선 검사)를 거쳐야 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정말 로봇과 닮았죠. 비록 레플리칸트들은 금속 기계보다 개조된 인간에 가깝고 그래서 로봇과 레플리칸트는 서로 완전히 다른 존재이나, 로봇처럼 인조인간들이 인간의 노예이기 때문에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로봇 이야기와 비슷하게 보이겠죠. 아니, <로섬의 만능 로봇> 같은 창작물에서 로봇은 금속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 비슷한 생명체에 가까웠죠. 따라서 레플리칸트들은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아시모프 로봇 같은 것들보다 훨씬 고전적인 로봇에 가까울 겁니다. 차페크 형제가 <로섬의 만능 로봇>을 썼을 때, 두 작가는 레플리칸트 같은 개조 인간을 상상했을지 모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드러내는 특징들 중 하나는 이런 개조 인간이 전투용이라는 사실입니다. <로섬의 만능 로봇>은 노예 노동자로서 로봇을 강조했습니다. (카렐 차페크가 쓴 <도롱뇽과의 전쟁> 역시 노예 노동자로서 양서류 종족을 강조했죠.) 로봇이라는 단어 자체가 노동자를 뜻하기 때문에 노동자 로봇은 아주 강력한 상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전투 레플리칸트는 다른 레플리칸트들보다 훨씬 중요하게 나옵니다. 대부분(?) 레플리칸트들은 노예이나, 전투 레플리칸트는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화끈하고 요란한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투 레플리칸트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전작처럼)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액션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 전투 레플리칸트가 보여주는 파괴력이나 내구력이나 사격 솜씨는 꽤나 인상적입니다. 전투 레플리칸트는 쉽게 벽을 뚫거나 고통을 참거나 상처를 치유하거나 평범한 인간을 패대기칠 수 있습니다. 사실 전투 레플리칸트가 아무렇지 않게 벽을 뚫는 장면은 다소 의심스럽습니다. 아무리 강화했다고 해도, 전투 레플리칸트는 살덩이입니다. 이들은 인조인간이고 로봇 같은 단단한 금속이 아니죠. 어떻게 이런 살덩이가 간단하게 벽을 뚫을 수 있을까요?



단단한 금속 기계들이 벽을 뚫는 장면에는 별로 위화감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금속 기계를 다루는 SF 창작물들은 그런 장면들을 자주 활용합니다. <로보캅>과 <터미네이터>는 좋은 사례가 될 겁니다. 양쪽 모두 전투 사이보그(로봇)를 다루는 아주 유명한 영화죠. <로보캅> 시리즈에서 로보캅 알렉스 머피는 툭하면 벽을 부수거나 뚫고 다닙니다. 총알조차 튕기는 단단한 금속판에게 벽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심지어 머피는 주먹으로 철판을 뚫습니다. 아예 <로보캅 2> 포스터는 알렉스 머피가 벽을 부순 장면을 보여줍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터미네이터 2>에서 T-800과 T-1000이 싸울 때, 두 로봇은 벽을 쾅쾅 부숩니다. 벽을 부수고 차에 치이고 총알에 맞는다고 해도, T-800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닙니다. 솔직히 인류 저항군이 (T-800이 아니라) 인간 전사를 과거로 보냈다면, 인간 전사가 T-1000과 제대로 싸울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뭐, T-1000을 처치하기 위해 인간 전사는 T-800과 다른 방법을 이용하겠죠. 하지만 T-800과 달리, 인간 전사는 벽을 부수고 사라 코너를 구출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못하겠죠. 인간은 살덩이입니다.



그리고 레플리칸트 역시 살덩이입니다. 개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분명히 레플리칸트는 일반적인 인간보다 강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전술적이고 똑똑합니다.) 하지만 개조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살덩이는 단단한 금속이 되지 못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총알에 맞거나 칼빵을 맞은 레플리칸트는 살지 못합니다. 살덩이는 분명히 살덩이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투 레플리칸트는 아무렇지 않게 벽을 부숩니다. 벽을 부순 직후 전투 레플리칸트는 부상이나 경직 없이 활발하게 행동합니다. 아마 감독은 이런 장면이 인상적이라고 여겼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떻게 살덩이 인조인간이 벽을 아무렇지 않게 부수고 펄펄 뛰어다닐 수 있는지 다소 의심스럽더군요.


물론 이런 영화에 엄중한 고증을 바란다면, 그건 무리한 욕심일 겁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이후,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정말 저런 개조 생명체가 가능할까? 글쎄요, 인간 같은 개조 생명체가 그렇게 대단한 내구력을 보여줄지…. 아무리 유전 공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전투 개조 생명체가 그렇게 내구력이 강해질 수 있을지…. 솔직히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전투 레플리칸트가 벽을 부수는 장면이 인상적이라고 해도, 저는 그게 영화에 별로 어울리는 장면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약 인류가 인조인간이나 다른 개조 생명체를 만든다고 해도, 그런 생명체들은 별로 튼튼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그런 생명체들은 쉽게 벽을 부수지 못하겠죠. 미래 인류가 로봇과 인조인간을 만들 수 있다면, 서로 용도가 다를 겁니다. 개조 생명체는 전투보다 다른 용도들에 어울리겠죠. SF 작가들이 레플리칸트 같은 인조인간과 터미네이터 같은 로봇을 함께 다룬다면, 그건 재미있는 대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SF 창작물은 개조 생명체와 기계가 무슨 차이를 드러내는지 고찰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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