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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협동 조합이라는 무인도 본문

사회주의/이윤 극대화 비판

협동 조합이라는 무인도

OneTiger 2017. 5. 22. 20:00

마가렛 앳우드는 자신이 SF 소설가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현실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는다고 말했죠. 저는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가렛 앳우드가 사이언스 픽션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상상력이 하드 SF 소설가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뜻인지…. 저 양반의 속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어쩌면 앳우드는 과학적 상상력보다 현실의 문제를 더 강조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홍수> 같은 소설은 분명히 사이언스 픽션이지만, 현실의 범주에서 그리 멀리 나간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현실에는 돼지와 너구리의 합성 동물이나 신종 인류나 유전자 조작 성 매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에드워드 윌슨을 말벌의 성인으로 삼거나 필립 모앗을 늑대의 성인으로 삼는 종교 단체도 없고요. 이런 것들은 그야말로 과학적 상상력이죠. 하지만 소설의 중심 주제는 생태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공동체이고, 이런 공동체 운동은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해외의 무토지 농민 운동, 생태 전환 마을, 코뮤니즘 운동, 키부츠부터 우리나라의 한살림 협동 조합 등이 그렇습니다. 어쩌면 앳우드는 신종 인류나 미생물 병기보다 이런 생태적 공동체 운동을 강조하고 싶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런 생태적 공동체는 많은 위협에 시달립니다. 거대하고 폭력적인 기득권들이 사방팔방에 설치기 때문에 생태적 공동체는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살아갑니다. 이들은 그 존재만으로 기득권들의 목표가 됩니다. 생태적 공동체는 아무도 해치지 않고, 버려진 구석에서 재활용품으로 근근이 살아가요. 그리고 버림을 받거나 따돌림을 받는 자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딱히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생태적 공동체를 찾아갑니다. 그들이 모두 생태주의에 공감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 그들은 정말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에 생태적 공동체에서 먹고 살 뿐이죠.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몰릴수록 생태적 공동체는 덩치를 키워나가고, 기득권들은 그걸 좋게 보지 않습니다. 기득권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계속 몸집을 불려야 하고, 결국 기득권들과 생태적 공동체는 충돌하고 맙니다. 문제는 생태적 공동체가 너무 힘이 없다는 점이죠. 말 그대로 근근이 먹고 살기 위한 단체이기 때문이죠. 이런 문제는 오직 소설 속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코뮨, 전환 마을, 협동 조합들은 지금도 해일처럼 밀려오는 거대 자본의 억압에 시달립니다.



이는 비단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파리 코뮨이나 러시아 소비에트나 쿠바 공산당처럼 부르주아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언제나 고립되었고 위기에 몰렸습니다. 오늘날의 생태적 공동체와 파리 코뮨은 많이 다르지만, 어쨌든 그들은 똑같이 자본주의, 부르주아, 계급 차별에 반대합니다. 덕분에 그들의 신세는 무인도와 같습니다. 주변은 온통 망망대해입니다. 거대 자본의 망망대해입니다. 거대 자본들이 그들을 둘러쌌기 때문에 생태적 공동체는 무인도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만약 거대 자본의 태풍이 휘몰아친다면, 생태적 공동체는 거기에 휘말리고 끝내 부서지고 말 겁니다.


그래서 많은 협동 조합이나 코뮨들은 자본의 침투를 이기지 못하고 굴복하고 맙니다. 종종 자유 시장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위대함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옳고 자본주의 반대 운동이 틀렸기 때문에 협동 조합과 코뮨과 생태적 공동체가 무너진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협동 조합이 무너지는 이유는 협동 조합의 내부 문제 때문만이 아닙니다. 거대 자본이 확장하고 침략하고 짓뭉개기 때문입니다.



시장 개방은 자유 무역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시장 개방이나 민영화는 자본주의의 상징도 됩니다. 하지만 이런 시장 개방이나 민영화는 언제나 폭력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겠죠. 거대한 폭력이 옳은 것인가? 협동 조합이나 코뮨이 무너지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옳기 때문이 아니라 거대 자본이 어마어마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죠. 족제비는 훌륭한 사냥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족제비가 훌륭한 사냥꾼이라고 해도 불곰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만약 불곰이 족제비들을 모조리 박멸하기로 결정했다면, 족제비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그건 족제비가 멍청한 육식동물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불곰이 너무 포악하기 때문이겠죠. 거대 자본의 압박과 생태적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 시장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이런 거대한 폭력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겠죠. 그걸 모르거나 혹은 일부러 무시하거나. 어느 쪽이든 잘못된 결론이 따라올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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