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체계의 겉모습과 내재적인 논리 본문
종종 SF 소설들은 겉모습에 속지 말라고 주장합니다. 소설 <노인의 전쟁>에서 군대 교관은 신병들에게 아주 평화로운 사슴처럼 생긴 외계인과 흉측한 갑각류 같은 외계인을 보여줍니다. 당연히 신병들은 사슴 외계인에게 호감을 느끼고 갑각류 외계인을 혐오합니다. 하지만 사실 사슴 외계인은 인류를 맛있는 간식으로 생각하는 식인종입니다. 반대로 갑각류 외계인은 평화를 바라고 상당한 지성을 보여주고 인류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죠. <노인의 전쟁>은 가벼운 소설이고 이것도 가벼운 사례일 뿐이지만, 이런 사례는 어떻게 SF 소설이 대상의 본질에 접근하는지 설명합니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관찰할 때, 그 대상의 겉모습만 아니라 그 대상의 근본, 본질, 체계, 구조까지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대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소설 <솔라리스>에서 과학자들은 얼마든지 살아있는 바다를 관찰할 수 있었으나, 그들의 추측은 그저 추측으로 끝나고 맙니다. 살아있는 바다의 본질이나 체계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솔라리스 행성은 인간에게 불친절한 행성이고, 인간은 도저히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아무리 과학자들이 겉모습을 관찰해도 그들은 행성의 근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겉모습만 보지 말고, 더 깊은 곳을 봐야 합니다.
1+1=2입니다. 100+100=200입니다. 1과 100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2와 200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두 계산의 논리가 다르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결과가 달라도 내재적인 논리와 구조는 똑같습니다. 그저 숫자가 다를 뿐입니다. 어떤 수치를 집어넣어도 계산의 내재적인 논리는 똑같습니다. 하지만 겉모습만 중시하는 사람은 두 계산의 논리가 다르다고 우길 겁니다. 겉보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1과 100은 다르고, 2와 200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1+1=2와 100+100=200이 같냐고 반박할 겁니다. 만약 강도가 사람을 권총으로 쏘고 그 피해자가 죽었다면, 그건 살인죄입니다. 만약 강도가 사람을 식칼로 찌르고 그 피해자가 죽었다면, 그것 역시 살인죄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권총과 식칼의 차이점을 강조할지 모릅니다. 네, 분명히 권총과 식칼은 다릅니다. 권총은 발사 무기이고, 식칼은 냉병기입니다. 아니, 원래 식칼은 냉병기가 아니지만, 이 경우에 식칼은 냉병기로 쓰였습니다. 권총을 쏜 강도와 식칼을 찌른 강도는 똑같이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따라서 두 강도는 모두 살인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식칼을 찌른 강도의 죄가 권총을 쏜 강도의 죄보다 가볍다고 여길지 모르죠.
저는 종종 미세 먼지와 녹조 라떼가 똑같은 환경 오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미세 먼지 때문에 중국을 욕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쳐다보지 않습니다. 강물이 오염되었고 한국의 자연 보호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음에도 사람들은 그저 중국의 미세 먼지만 욕합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미세 먼지가 건강에 아주 치명적이지만, 4대강 사업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겉보기만 보면, 미세 먼지가 4대강 사업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규모가 큽니다. 하지만 우리는 겉모습보다 내재적인 논리에 주목해야 합니다. 중국은 우리나라 시민들을 말살시키기 위해 미세 먼지를 뿜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 공장들은 그저 이윤을 축적하기 원할 뿐입니다. 이윤 축적이 자본주의 체계의 생존 법칙이기 때문에 그 법칙을 따를 뿐입니다. 중국 공장들은 악질적인 악마나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토건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토건족들이 강물을 오염시킨 까닭은 악질적인 악마나 미치광이라서가 아닙니다. 토건족들은 이윤을 축적하기 원했고, 그래서 그런 짓거리를 저질렀을 뿐입니다. 따라서 미세 먼지와 4대강 오염의 내재적인 논리는 똑같습니다.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환경을 오염시켰고, 그게 결국 사람까지 죽입니다.
우리는 마치 중국만이 미세 먼지를 뿜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중국의 미세 먼지 이전에 한국 사회에 환경 오염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환경 사회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산업 자본주의의 환경 오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한국 사회는 각종 산업 재해 노동자들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대기업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외칩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이랑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규모만 다를 뿐입니다. 1+1=2와 100+100=200처럼. 어쩌면 이건 올바른 비유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착하기 때문에 환경을 덜 오염시킨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정말 중국보다 착하다면, 왜 사람들이 4대강 오염 때문에 피해를 입고 왜 핵 발전소 때문에 감옥에 끌려가야 합니까. 감옥 속의 시골 할머니들은 한국인이 아닌가요. 왜 어떤 사람들은 한국인이 미세 먼지를 먹는다고 한탄하면서 그런 할머니들을 무시하고 욕할까요. 그 사람들이 정말 중국을 욕하고 싶다면, 그런 할머니들부터 구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사람들은 '한국인의 생존'를 외치면서 '시골 할머니들의 생존'을 모욕하고 무시하고 짓밟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많고 많습니다. 우리는 유럽을 문명국의 모범이자 선진국으로 부르지만, 영국이 산업 발전을 위해 무슨 짓을 저질렀습니까. 왜 차이나 미에빌은 <퍼디도 정거장>이나 <언런던>에서 매연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했겠습니까.
하지만 겉모습에 치중하는 사람들은 이걸 보지 못합니다. 뭐, 그 사람들은 썩은 물을 먹지 않기 때문에 4대강 오염이 하등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겠죠. 그 사람들이 중국을 욕하는 이유는 그저 자기들이 미세 먼지를 마시기 때문이겠죠. 그런 사람들은 아메리카 부족민이나 아프리카 어린이가 썩은 물을 마셔도 별반 관심이 없죠. 그저 자기 주변만을 보고, 겉모습만을 따지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