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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작고 온건한 변화의 한계 본문

사회주의/이윤 극대화 비판

작고 온건한 변화의 한계

OneTiger 2017. 5. 10. 20:00

예전에 어느 해외 SF 동호회에서 <헝거 게임>을 '좌파적인 SF 소설'로 꼽은 적이 있습니다. 그걸 보고, 좀 황당했습니다. <빼앗긴 자들>이나 <붉은 화성>이나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이라면 모를까, <헝거 게임>이 좌파적인 사이언스 픽션이라니…. 아, 물론 <헝거 게임>은 무장 투쟁과 혁명을 외칩니다. 그런 요소들을 고려한다면, 저 소설도 충분히 좌파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장 투쟁과 혁명은 좌파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우파들도 얼마든지 무장 투쟁과 혁명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실 프랑스 대혁명 같은 사례는 우파적인 무장 투쟁의 성공담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프랑스 대혁명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생각했죠. 프랑스 정부와 자본가들이 인민들을 통제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인민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계급 구조를 타파하기 바랐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프랑스 대혁명보다 파리 코뮌을 훨씬 높게 평가했죠. 여하튼 왜 저 SF 동호호가 <헝거 게임>을 좌파적이라고 분류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제 생각에 사람들은 뭔가 급진적이고 투쟁적인 요소를 좌파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사회주의자들은 급진적이고 투쟁적입니다. 자본주의 체계가 지배적인 영향을 발휘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급진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계를 결코 용인하지 못하죠. 또한 사회주의자들은 온건하고 작은 변화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자본주의 체계가 너무 단단하게 권력을 움켜줬기 때문에 가열찬 싸움만이 그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의 이런 급진적이고 투쟁적인 면모는 대중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대중들은 보다 작고 간단하고 느린 방법을 선호합니다. 사회가 급진적으로 바뀐다면, 그만큼 대중들은 그 사회 구조에 적응하기 어려울 겁니다. 아마 현실의 대중들은 <뒤 돌아보며> 같은 소설 속의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체계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사회주의 유토피아에서 적응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기후가 바뀌면 동식물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갑자기 사회 구조가 바뀐다면 사람들도 적응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투쟁은 종종 피를 부릅니다. 이건 그저 비유가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피가 터집니다. 다들 촛불 집회의 온건함을 이야기하지만, 촛불 집회 1년 전에, 불과 1년 전에 누군가는 민중 총궐기 현장에서 물대포에 맞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게다가 대기업들은 온건하고 작은 변화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 이윤을 축적할 수 있다면, 기업들은 (아무리 그게 폭력적이라고 해도) 그 방법을 선택할 겁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아무리 자연 환경이 오염된다고 해도, 대기업들은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건 자본주의 체계의 속성입니다. 더 많은 이윤. 더 치열한 경쟁. 더 거대한 합병.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땅을 파고 광고를 틀고 제품을 팔고 공장을 돌립니다. 그 과정에서 밑바닥 사람들이 떼거지로 죽거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환경이 오염된다고 해도 대기업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듣습니다.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가 심각하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자본주의 체계는 그런 과학에 하등 관심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의 자본주의 체계든 모두 비슷합니다. 우리는 유럽 국가들이 낫다고 생각하고, 사실 유럽 사회 민주주의는 (한때 공산주의와 한살림을 차렸던 만큼) 뭔가 낫게 보이지만, 유럽 사회주의나 좌파들조차 극우파의 집권을 간신히 막아내곤 합니다. 기후 변화가 이렇게 심각함에도 극우파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외칩니다. 그게 바로 온건하고 작은 변화의 한계입니다.


온건하고 착한 대통령이 당선되면, 대중은 그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겁니다. 하지만 온건한 대통령 이후 극우파 대통령이 집권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온건하고 작은 변화들은 (온건하고 작기 때문에) 극우적인 폭풍 속에 휩쓸리곤 합니다. 역사 속에는 그런 사례들이 많고 많습니다. 작금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촛불 집회를 칭송하지만, 결국 촛불 집회 역시 작고 온건한 변화에 속합니다. 그리고 극우파 세력들은 작고 온건한 변화 속에서 폭력적으로 힘을 키울 겁니다. 대중이 온건함을 추구하는 동안 극우파 세력들은 폭력적으로 힘을 키울 겁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런 극우파들이 아예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사회 구조가 완전히, 급진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득권이 순순히 항복할 리 없기 때문에 저는 무장 투쟁이 필연적으로 터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폭력만이 해답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 사회 전체가 급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쇠파이프와 죽창만이 급진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좌파 정당들에게 후원금 500원이라도 지원한다면, 저는 그것도 급진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녹색당이나 노동당이나 정의당에 가입하라고 권유한다면, 그것도 급진적인 방법입니다.


그런 정당들의 정책이 사회를 관통한다면, 비로소 극우파들도 발을 붙이지 못할 겁니다. 물론 그런 정책이 사회를 관통하기까지 엄청난 반발이 생길 겁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작고 온건한 방법들은 작고 온건하기 때문에 쉽게 휘쓸릴 겁니다. 오히려 대기업들은 그런 작고 온건한 방법들을 좋아할 겁니다. 자기네들은 얼마든지 폭력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세상이 둥글고 공정하다면, 저런 작고 온건한 방법들도 잘 통하겠죠. 하지만 세상은 전혀 둥글거나 공정하지 않아요. 그래서 좌파 정당들이 힘을 얻고, 인민들은 좌파 정당들을 급진적으로 밀어줘야 할 겁니다. (나중에 이런 이야기를 더 길게 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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