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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공동체의 타워 디펜스 본문

사회주의/이윤 극대화 비판

사회주의 공동체의 타워 디펜스

OneTiger 2017. 4. 21. 20:00

<나는 전설이다> 같은 좀비 아포칼립스는 생존자들의 고립을 자주 보여줍니다. (사실 이 소설은 좀비 소설이 아니라 흡혈귀 소설이지만, 그 점이야 그냥 넘어가죠.) 세상 천지가 좀비들로 들끓고, 일련의 생존자들은 안전 가옥으로 대피합니다. 다행히 그 안전 가옥에는 여러 물품들이 있습니다. 생존자들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가옥 안에서 물품들로 근근이 버팁니다. 가령, 대형 매장은 이런 안전 가옥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생존자들은 대형 매장 안으로 도피합니다. 그리고 좀비들이 매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단단하게 지킵니다. 매장에는 먹거리, 약품, 옷가지 등이 널렸기 때문에 생존자들은 굶주리거나 병들지 않습니다. 총기가 있거나 없을 수 있지만, 옷장이나 책상이나 쇠붙이 등은 많습니다. 공구도 많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부수고 가공하면, 쇠뇌나 새총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새총은 어린애 장난감으로 알려졌지만, 탄력이 강한 새총이 쇠구슬을 쏜다면 가히 살상 병기가 될 수 있죠. 생존자들은 그렇게 대형 매장 안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비단 좀비 아포칼립스만 아니라 뭔가가 침략하는 아포칼립스는 대부분 이런 상황을 묘사합니다. 고전적인 <우주 전쟁>도 그렇고, 스티븐 킹의 <안개> 같은 소설도 그렇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상황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적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좀비 떼는 대형 매장 안으로 쳐들어오고, 결국 생존자들은 좀비 떼의 인해전술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합니다. 종종 생존자들의 분열이나 내부 갈등, 실수 때문에 좀비 떼들이 침입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아무리 생존자들이 안전 가옥 안에서 버티고 싶어도 좀비 떼들은 너무 많습니다. 사실 대형 매장을 제외한 모든 곳들은 좀비들의 차지입니다. 고립은 아슬아슬하고 힘겨운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자들이 지속적으로 버틴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생존자들이 정말 지속적으로 살기 원한다면, 좀비들을 몰아내고 세력을 키워야 합니다. 하지만 생존자들의 수는 적고, 좀비들은 많습니다. 너무 많습니다. 새로운 생존자들이 안전 가옥을 찾아온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존자들은 모든 것을 자기들끼리 처리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언젠가 구조대가 그들을 도와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만 매달릴 수 없습니다. 생존자들은 모든 것들은 오롯이 자신들의 손에 맡겨야 하지만, 좀비 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좀비들은 다른 곳에서 몰려오고, 숫자는 갈수록 불어납니다.


저는 저런 상황을 보면, 사회주의 공동체들이 떠오릅니다. 과거의 파리 코뮨부터 러시아 소비에트를 거쳐 남아메리카의 생태 공동체들까지 떠오릅니다. 사회주의 공동체들은 사실 생존자 무리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사방에서 고립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일련의 인민들이 코뮨을 만들었더라도 그게 세계적 혁명이 되지 않는다면, 그 코뮨은 고립되기 마련입니다. 그 코뮨은 자기들끼리 잘 살기 바라겠으나, 세상 천지에 거대 자본들이 득실거립니다. 세상 전부가 거대 자본의 천국입니다. 블라디미르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지적처럼 거대 자본은 끊임없이 세력을 확장하고, 결국 코뮨까지 침범하려고 할 겁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그렇게 세계 혁명론에 매달렸죠.) 지금도 거대 자본들은 걸핏하면 시장을 개방하라고 요구하죠. 만약 코뮨이 그걸 거부하면, 무력 응징부터 쿠데타 사주까지 별별 수단을 동원합니다. 도대체 작은 코뮨 하나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거대 자본이 좀비 떼처럼 밀고 들어오면, 고작 코뮨 하나가 그걸 막을 수 있을까요. 사회주의 공동체는 아주 아주 어려운 타워 디펜스 게임입니다. 생태 마을이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도 거대 자본들이 미세 먼지를 뿜거나 기후를 바꾸면, 그 생태 마을이 얼마나 잘 살아갈 수 있겠어요.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회주의 공동체는 정말 타워 디펜스 게임 같습니다. 작은 세력이 거대한 공세를 방어하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좀비 떼 같은 거대 자본에 맞서는, 난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타워 디펜스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크리스 하먼 같은 양반이 왜 '좀비 자본주의'라고 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크리스 하먼은 그런 의미로 말하지 않았지만, 딱 어울리는 별명이죠. 아,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자본주의를 흡혈귀라고 불렀군요.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언데드 같다고 생각하는 듯. 안토니오 그람시는 사회주의 전술을 참호전에 비유했는데, 저는 이게 타워 디펜스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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