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오멜라스의 보이지 않는 밑바닥 사람 본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어슐라 르 귄이 쓴 단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딱히 SF 냄새를 풍기지 않습니다. 원래 르 귄이 하드 SF 장르를 별로 쓰지 않지만, 이 소설은 그저 가상의 사회를 이야기할 뿐이죠. (물론 그런 상상력 자체가 바로 사이언스 픽션이죠.) 이 가상의 사회는 축복 받은 유토피아입니다. 유토피아의 모든 이상들이 이 안에 담겼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풍요롭고 즐겁습니다. 유토피아에 존재할만한 그 어떤 모순이나 괴리도 없을 것 같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죠. 그래서 이 소설은 의미 심장하고 서글픕니다. 아무리 평화롭고 진보적인 유토피아에서도 누군가는 착취를 당하고 학대를 당하니까요. 어쩌면 그 누군가는 극히 일부이거나 소수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압도적인 다수를 위해 극소수의 불행은 필연적일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저울은 어디로 기울어야 할까요. 압도적인 다수? 즐겁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압도적인 다수? 아니면 굉장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전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사회적으로 별로 의미도 없는 극소수?
우리 현실 세계도 오멜라스와 비슷한 구석이 있죠. 세상은 분명히 발전했습니다. 질병도 많이 사라졌고, 생산량도 엄청나게 늘어났고, 각종 계몽적인 사상이 어둠을 밝혔습니다. 아마 세상은 앞으로 계속 진보할 테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행복을 누리겠죠. 수치를 따진다면, 분명히 과거보다 현재에 더 많은 사람들이 진보의 이득을 누립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이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는 어디에선가 구석진 장소에서 고통과 아픔을 감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고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행복에 겨운 사람들은 그들을 잘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자기를 강조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현대 사회의 진보가 그런 사람들을 양산한다는 점입니다. 현대 사회의 진보는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거나 온건하고 평안한 길만 걷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습니다.
저울은 기울어져야 합니다. 저울은 그런 밑바닥 사람들에게 기울어져야 할 겁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착취와 오염이 존재하는 이상, 오멜라스에 그냥 머물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오멜라스를 떠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