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혁명은 순간이 아니라 지루하고 끈질긴 농성 본문
예전에 말한 것처럼, SF 장르에서 혁명은 커다란 인기를 끕니다. 소설 <헝거 게임>과 영화 <스타 워즈> 시리즈와 기타 숱한 창작물들에서 사람들은 세상을 뒤집는 혁명군을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SF 장르는 세상을 뒤집는 이야기이고, 혁명은 세상을 뒤집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SF 장르와 혁명은 서로 쉽게 만날 수 있겠죠. 하지만 소설 <헝거 게임>과 영화 <스타 워즈>를 비롯해 대중적인 SF 창작물들이 혁명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게 거대한 전투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SF 창작물들은 억압적인 사회를 보여주기 원합니다. 사회가 억압적일 때, 그 사회를 깨부수는 전투는 훨씬 통쾌해질 겁니다. 사회가 억압적일 때, 혁명군은 더욱 비장미를 풍길 수 있겠죠. 만약 <스타 워즈> 시리즈에서 제국군과 저항군이 대등하게 싸웠다면, 그건 별로 재미가 없었을 겁니다. <로그 원>을 보세요. 제국군은 정말 압도적입니다. 다스 베이더가 손수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제국군은 압도적입니다. 어둠 속에서 다스 베이더가 붉은 광검을 뽑았을 때, 그런 압도적인 분위기는 훨씬 더 높은 전율로 승화했고요. 그래서 저항군은 공화국군이 아니라 저항군이 되어야 했습니다.
공화국군 대 제국군 구도는 서로 대등한 것 같습니다. 이런 구도는 별로 로망을 풍기지 않아요. 하지만 제국군 대 저항군은 비장미를 풍길 수 있습니다. 제국군에 비해 저항군이 아주 왜소하기 때문이죠. 이른바 혁명을 이야기하는 SF 창작물들은 이런 대결 구도를 조성하고, 여기에서 비장미와 로망을 이끌어냅니다. 혁명은 적대적인 두 진영이 서로 대등하게 싸우는 구도가 아닙니다. 혁명은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약소한 세력이 지배 세력을 깨뜨리는 구도입니다. 그래서 혁명은 일반적인 전쟁보다 가슴이 뭉클한 감성을 퍼뜨릴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숱한 SF 창작물들이 혁명을 외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중세 판타지 창작물들 역시 혁명을 외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혁명이라는 어감이 중세 판타지 장르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중세 판타지는 중세 유럽에 기반합니다. 중세 판타지는 진짜 중세가 아니라 중세 같은 현대입니다. 어쨌든 중세 판타지의 겉모습은 중세이고, 중세 판타지는 중세 유럽을 모방하느라 애쓰죠. 하지만 중세와 혁명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한쌍입니다. 혁명은 계몽주의의 결과물입니다. 혁명은 중세가 아니라 근대와 잘 어울립니다. 근대 이후를 논하기 때문에 SF 장르는 혁명을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중세 판타지는 그렇지 못합니다. 중세 판타지는 근대를 넘어서지 못하죠.
물론 아무리 독실한 중세 판타지 독자조차 진짜 중세를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중세는 이른바 현대 문명인에게 갑갑하고 고리타분한 시대입니다. 중세 판타지 독자가 바라는 요소는 진짜 중세가 아니라 중세의 낭만적인 부분들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중세의 낭만적인 부분들은 혁명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중세의 낭만적인 부분들조차 근대 계몽주의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합리적이고 세련된 근대적인 감수성을 중세 판타지에 집어넣습니다. 하지만 근대적인 감수성을 느끼기 원한다면, 왜 우리가 구태여 가상의 중세로 되돌아가야 할까요? 중세 판타지는 명예로운 왕들과 귀족들을 숭상합니다.
하지만 혁명은 왕들의 모가지를 뎅겅뎅겅 자르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저는 혁명이라는 어감이 중세 판타지 장르보다 SF 장르에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헝거 게임>을 비롯해 여러 대중적인 SF 창작물들은 혁명을 외치고요. 그렇다고 해도 이런 창작물들이 외치는 혁명은 비장미가 넘치는 전투입니다. SF 창작물들은 억압적인 지배 계급을 때려부수기 원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우리는 낡은 세계를 깨부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낡은 세계를 깨부순다고 해도, 새로운 세계가 저절로 찾아올까요? 오직 낡은 세계를 깨부수는 행위만이 혁명일까요?
흔히 우리는 혁명이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느 날, 마침내 저항군이 제국 황제를 때려잡았다면, 다들 혁명이 성공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우리는 저항군이 제국 황제를 때려잡는 그 순간이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여러 혁명들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게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겁니다. 혁명은 순간이 아닙니다. 예브게니 자마친이 소설 <우리들>에서 말한 것처럼, 혁명은 지속적입니다. 혁명은 지속이죠. 다수 무산자 민중이 혁명에 동의할 때, 마침내 혁명은 성공할 수 있어요.
지난 20세기에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은 가장 유명한 혁명일 겁니다.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차르를 몰아냈을 때, 아무도 혁명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혁명이 시작했다고 생각했죠. 러시아 인민들이 정말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일 때, 마침내 혁명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차르는 인민들을 억압했고 인민들은 주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인민들은 노예 근성을 쉽게 버리지 못했어요. 그렇게 지배 계급(차르)이 인민들을 억압하고 세뇌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은 그걸 깨뜨리기 원했으나, 그 속도는 빠르지 않았습니다. 억압적인 지배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러시아 인민들은 당장 세뇌를 깨뜨리지 못했죠.
따라서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는 충분한 여유를 주지 않았어요. 20세기 초반은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적백 내전, 파쇼주의 확산, 2차 세계 대전…. 결국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은 실패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훌륭한 복지 국가였으나, 복지 국가는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죠. 이렇게 혁명은 순간이 아닙니다. 혁명은 끈질긴 농성과 비슷합니다. 혁명 세력이 왕의 모가지를 뎅겅 자른다고 해도, 세상이 당장 바뀔까요? 그건 피상적인 낙관론입니다. 혁명은 피지배 무산자 민중이 세뇌를 깨뜨리고 깨뜨리고 깨뜨리고 깨뜨리고 다시 깨뜨리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다이버전트> 같은 대중적인 디스토피아 소설들은 이런 점을 간과하는 것 같아요. 저항군은 비단 지배 계급만이 아니라 지배적인 고정 관념을 없앨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건 비장미가 넘치는 화끈한 전투가 아니라 끈질지고 지루한 농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