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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강철 군화>가 사람들을 쉽게 설득할 수 있을까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강철 군화>가 사람들을 쉽게 설득할 수 있을까

OneTiger 2018. 9. 8. 11:18

소설 <강철 군화>가 유토피아일까요, 아니면 디스토피아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강철 군화>가 SF 울타리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우주선이나 외계인이나 인공 지능이나 개조 생명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나오지 않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강철 군화>가 SF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이 수많은 디스토피아 소설들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겁니다. 흔히 SF 평론가들은 예브게니 자마친이 쓴 <우리들>과 올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이 쓴 <1984>가 3대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운운합니다.


하지만 이 세 소설들이 나오기 전에 잭 런던은 이미 <강철 군화>를 썼고 어떻게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사람들을 억압하는지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따라서 디스토피아 세상을 묘사하고 싶다면, 미래 첨단 도시에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그리고 싶다면, SF 작가들은 <강철 군화>를 참고해야 할 겁니다. 설사 작가들이 참고하지 않는다고 해도, 독자들은 <강철 군화>와 미래 자본주의 디스토피아 사이에서 쉽게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죠. 따라서 <강철 군화>는 선구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고, 관습적으로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SF 울타리 안에 들어가는 것처럼, <강철 군화> 역시 그럴 수 있겠죠.



수많은 사람들은 <헝거 게임> 같은 소설이 당연히 SF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디스토피아를 보고 싶다면, 독자들은 <헝거 게임>보다 <강철 군화>를 골라야 할 겁니다. <헝거 게임>은 재미있고 아슬아슬한 소설이나, 적어도 디스토피아 관점에서 <헝거 게임>은 <강철 군화>를 따라오지 못하겠죠. 하지만 디스토피아 소설인 동시에 <강철 군화>는 유토피아 소설입니다. 결국 머나먼 미래에 인류애 사회당은 혁명에 성공하고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유토피아 소설이에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토피아 소설임에도, <강철 군화>에서 대부분 내용은 디스토피아입니다. 본론 부분에서 두 사회주의 혁명가는 도망치고, 여러 국가들의 사회주의 혁명은 실패합니다. 대략 2240년에 마침내 전세계적인 사회주의 혁명은 성공했으나, <강철 군화>는 어떻게 유토피아 사회가 등장하는지 그리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어떻게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억압하는지 그립니다. 따라서 <강철 군화>는 <뒤돌아보며> 같은 소설과 정반대입니다. 양쪽 모두 사회주의 소설의 원조이나, 한쪽은 디스토피아이고 다른 한쪽은 유토피아죠. 어쩌면 잭 런던에게는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 소설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습니다. 이 작가는 치열한 사투를 정말 처절하게 그리죠.



문제는 <강철 군화>가 1908년 소설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세계적인 사회당은 2240년에 등장하고요. 2240년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입니다. 1908년 사람들에게 2240년을 훨씬 아득한 미래였을 겁니다. 왜 잭 런던이 2240년이라는 숫자를 설정했을까요? 여기에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인 전망이 있을까요? 아니면 잭 런던이 그저 아득한 미래를 추상적으로 설정하기 원했을까요? 잭 런던이 뭐라고 생각했든, 2240년은 적절한 숫자 같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절대 빠르게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체계는 전세계적으로 지배적인 관념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감에도 자본주의가 뭔지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보장한다고 착각하고, 자본주의가 유일하고 절대적인 방법이라고 오해합니다. 학교 교육은 아이들에게 그런 관념을 세뇌시키고, 그래서 몇 십 년 동안 그런 세뇌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세뇌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너무 오랜 동안 세뇌에 찌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쉽게 바꾸지 못합니다. 만약 생각을 바꾼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몇 십 년 인생을 부정해야 할 겁니다. 이게 쉬운 방법일까요?



이른바 운동권 사람들은 무산자 민중이 계급 의식을 각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운동권 사람들은 얼마나 자본주의가 나쁜지 열심히 떠듭니다. 운동권 사람들에게는 지식이 많고, 어떤 운동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쉽게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자본주의가 너무 지배적인 관념이기 때문에, 너무 오랜 동안 사람들이 그런 세뇌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생각을 바꾸지 못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은 학교 교육을 받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몇 십 년 동안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옳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운동권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해도, 고작 몇몇 설득으로 몇 십 년을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인간은 감정적입니다. 심지어 가장 논리적인 설득조차 감정의 장벽을 쉽게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쉽게 생각을 바꾸지 못합니다. 운동권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나쁘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고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그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설사 슬라보예 지젝처럼 세계적인 석학이 설득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아요. 그래서 세상은 느리게 바뀝니다. 어쩌면 2240년이 지난다고 해도, 사회주의 혁명은 성공하지 못할지 모르죠.



이 블로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저는 자본주의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열심히 떠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제가 열심히 논리적으로 떠든다고 해도, 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쉽게 생각을 바꿀까요? 사람들이 정말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생태적인 대안을 고민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하고, 저는 그걸 바라지 않아요. 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 오직 소수만 자본주의와 기후 변화를 고민한다고 해도, 저는 그게 커다란 전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생각을 쉽게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은 너무 느리게 바뀌죠. 그렇다고 해도 언젠가 세상은 바뀔 테고, 생태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계속 떠들고 이야기하고 설득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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