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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프로메테우스>, 가부장 제도 사회에서 본문

SF & 판타지/개조 생명체들

<프로메테우스>, 가부장 제도 사회에서

OneTiger 2022. 7. 8. 17:31

※ 이 게시글은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치명적인 내용 누설을 포함합니다.



[자본주의, 가부장 제도 사회에서 극장 관객들은 이 영화를 해석합니다.]



아담은 인간입니다. 이브는 인간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똑같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이브보다 아담은 우선합니다. 야훼가 이브를 창조하기 전에, 야훼는 아담을 창조했습니다. 야훼가 아담을 창조한 이후, 야훼는 아담의 갈비를 사용했고 이브를 창조했습니다. 아담이 나타나기 전에, 이브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나타난 이후, 이브는 나타났습니다. 아담은 첫째 인간입니다. 이브는 둘째 인간입니다. 둘째보다 첫째가 우선하는 것처럼, 이브보다 아담은 우선합니다. 아담은 남자입니다. 이브는 여자입니다. 남자는 첫째 인간이고, 여자는 둘째 인간입니다. 여자보다 남자는 우선합니다.

 

기독교 <성경>에서 여자보다 남자는 우선합니다. 야훼가 이것을 의도했나요? 야훼가 첫째 인간-남자, 둘째 인간-여자를 의도했나요? 왜 야훼가 아담보다 이브를 창조하지 않았나요? 왜 야훼가 남자보다 여자를 창조하지 않았나요? 왜 에덴 동산에서 첫째 인간이 여자가 아니고 둘째 인간이 남자가 아닌가요? 이게 그저 우연에 불과한가요? 아무 의도 없이, 야훼가 이브보다 아담을 창조했나요? 비록 야훼가 여자보다 남자를 창조했다고 해도, 야훼에게 아무 의도가 없었나요? 많은 기독교인들은 야훼를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야훼는 아버지(남자)입니다. 신은 어머니(여자)가 아닙니다.



야훼가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남자이기 때문에, 야훼는 이브보다 아담을 창조했는지 모릅니다. 야훼가 남자이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여자보다 남자는 우선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왜 야훼가 아버지인가요? 야훼는 신입니다. 신에게 성별이 필요한가요? 만약 신이 전능하다면, 왜 신에게 성별이 필요한가요? 어쩌면 대답은 가부장 제도일 수 있습니다. 인류 문명에서 가부장 제도는 너무 유구합니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가부장 제도는 압도적인 역사, 지배적인 역사를 자랑합니다. 가부장 제도가 너무 지배적이기 때문에, 지배적인 사회 구조(가부장 제도)에서 벗어나기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부장 제도는 가부장 편견들을 유발합니다. 가부장 제도가 너무 지배적이기 때문에, 가부장 편견들은 기독교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지 모릅니다. 가부장 편견들은 여자가 열등하고 남자가 우월하다고 떠벌입니다. 여자는 수동적이고, 남자는 적극적입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됩니다. 가부장 편견들은 남자가 여자를 소유한다고 떠벌입니다. 남자는 주인이고, 여자는 재산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되기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는 우선합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기독교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이브(여자)보다 아담(남자)은 우선하는지 모릅니다.



기독교 <성경>은 아담과 이브가 원죄를 저질렀다고 이야기합니다. 원죄 때문에, 이브는 아기를 돌봐야 하고, 아담은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인간입니다. 인간은 어떤 것을 먹어야 합니다. 만약 인간이 먹지 않는다면, 인간은 살아가지 못할 겁니다. 인간은 음식을 먹고 영양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살아가기 위해 인간은 먹어야 합니다. 먹기 위해 인간은 농사를 짓습니다. 기독교 <성경>은 이브보다 아담이 농사를 짓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담이 농사를 짓기 때문에, 아담은 먹거리를 얻습니다. 아담(남자)과 달리, 이브가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이브(여자)는 먹거리를 얻지 못합니다.

 

이브가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아담이 농사를 짓기 때문에, 살아가기 위해 이브는 아담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기독교 <성경>은 여자(이브)가 남자(아담)에게 의지하고 남자가 여자를 소유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의지하기 때문에, 여자에게는 남자가 필요합니다. 남자 없이, 여자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기독교 <성경>은 여자가 남자를 떠받든다고 이야기하는지 모릅니다. 이브가 출산하는 것처럼, 가부장 편견들은 여자와 육아를 연결합니다. 가부장 편견들은 오직 여자만 육아를 담당한다고 떠벌입니다. 육아는 개인적인 여자 노동입니다.



심지어 가부장 편견들은 육아가 여자의 자연적인 사명이라고조차 떠벌입니다. 여자에게 자궁, 젖가슴이 있기 때문에, 육아는 여자의 사명입니다. 남자보다 여자가 월경을 겪는 것처럼, 여자와 육아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육아가 여자의 사명이기 때문에, 임신, 출산, 수유 역시 여자의 자연적인 사명입니다. 비록 월경, 출산이 고통스럽다고 해도, 가부장 편견들은 이 고통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여자가 둘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인간, 진짜 인간, 주인이 남자이기 때문에, 비록 여자가 커다란 고통에 빠진다고 해도, 이 고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출산, 육아를 여자의 자연적인 사명이라고 떠벌이기 때문에, 기독교 <성경>에서 이브는 아기를 돌보는지 모릅니다. 여자와 육아가 이어지는 것처럼, 여자와 가정은 이어집니다. 여자는 가정을 담당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여자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정에서 여자가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여자는 야외로 향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내부에서만 여자는 머물러야 합니다. 오직 내부에서만 여자가 머무르기 때문에, 여자와 모험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자는 거칠어서는 안 됩니다. 여자는 적극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여자와 도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신하고 순종적입니다.



여자는 얌전하고 감정적입니다. 여자와 육아가 이어지기 때문에, 가부장 편견들은 여자가 조신하다고 떠벌입니다. 신도들이 <성경>을 읽는 동안, 그들은 가부장 편견들(여자는 조신하다)을 받아들이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가부장 편견들이 <성경>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해도, 분명히 가부장 편견들과 이브 역할, 아담 역할은 비슷합니다. 아무리 가부장 편견들이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해도, 가부장 편견들은 여자보다 남자가 우선한다고 떠벌이고, 이브(여자)는 아담(남자)을 떠받듭니다. 가부장 편견들과 이브 역할, 아담 역할이 비슷하기 때문에, <성경>은 문제가 됩니다.

 

만약 기독교 <성경>이 문제라면, <프랑켄슈타인>은 어떤가요?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썼습니다. 기독교 <성경>에서 야훼가 인간을 창조하는 것처럼, <프랑켄슈타인>에서 과학자는 인조인간을 창조합니다. 야훼는 여자(이브)보다 남자(아담)를 창조했습니다. 과학자 역시 똑같습니다. 과학자는 여자 인조인간보다 남자 인조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첫째 인간이 남자인 것처럼, 첫째 인조인간은 남자입니다. 기독교 <성경>에서 여자보다 남자가 우선하는 것처럼, <프랑켄슈타인>에서 여자(인조인간)보다 남자(인조인간)는 우선합니다. <성경>과 <프랑켄슈타인>은 비슷합니다.


기독교 <성경>은 이브와 출산을 연결합니다. 여자는 임신, 출산, 육아를 담당합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여자와 출산을 연결하는 것처럼, 기독교 <성경>에서 여자는 출산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프랑켄슈타인> 역시 비슷합니다. 남자 인조인간은 여자 인조인간을 원합니다. 남자가 출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조인간 아기를 출산하기 위해 남자 인조인간에게는 여자 인조인간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성경>처럼, <프랑켄슈타인>에서 여자(인조인간)보다 남자(인조인간)는 우선하고, 기독교 <성경>처럼, <프랑켄슈타인>에서 여자는 출산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왜 <성경>과 <프랑켄슈타인>이 비슷한가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메리 셸리가 첫째 인조인간을 남자라고 설정했나요? 메리 셸리는 서구 문화(19세기 서구 산업 사회)에 속합니다. 서구 문화에서 기독교는 아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기독교 <성경>이 여자보다 남자가 우선한다고 이야기하고, 서구 문화에서 기독교가 아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메리 셸리가 서구 문화에 속하기 때문에, 메리 셸리가 첫째 인조인간을 남자라고 설정했나요?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는 동안, 메리 셸리가 <성경>, 야훼, 아담을 인식했나요? 아니, 어쩌면 메리 셸리는 에덴 동산보다 가부장 편견들을 인식했는지 모릅니다. 가부장 제도는 유구합니다. 19세기 서구 사회 역시 가부장 제도였습니다.



19세기 서구 사회, 가부장 제도 사회에서 메리 셸리는 살아갔습니다. 가부장 제도가 가부장 편견들을 유발하기 때문에, 가부장 편견들은 메리 셸리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지 모릅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과학자는 여자(인조인간)보다 남자(인조인간)를 창조했는지 모릅니다. 메리 셸리는 여자입니다. 아무리 메리 셸리가 여자라고 해도, 가부장 제도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가부장 편견들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부장 편견들에서 메리 셸리가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가 우선하기 때문에, 첫째 인조인간 역시 남자인지 모릅니다. (과학자 역시 남자입니다.)

 

야훼와 달리, <프랑켄슈타인>에서 과학자는 여자 인조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과학자가 여자 인조인간을 창조했다면, 남자 인조인간은 여자 인조인간을 재산이라고 판단했을지 모릅니다. <프랑켄슈타인> 세계에서도 가부장 제도는 지배적입니다. 가부장 편견들에서 벗어나기가 절대 쉽지 않기 때문에, 가부장 편견들에서 남자 인조인간 역시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남자 인조인간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남자 인조인간은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된다고 착각했을지 모릅니다.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는 것처럼, 어쩌면 남자 인조인간은 여자 인조인간을 구타했을지 모릅니다.



아니, 아무리 가부장 편견들에서 메리 셸리가 벗어났다고 해도, 메리 셸리는 여자 인조인간이 첫째라고 쓰지 못했을 겁니다. 가부장 제도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19세기 서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여자보다 남자가 우선한다고 착각했습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여자가 우선한다고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2022년 오늘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여자보다 남자가 우선한다고 착각합니다. 2022년 오늘날, 여전히 가부장 제도는 지배적입니다. 특히, 자본주의는 가부장 제도를 강화합니다. 아니, 그 자체로서 자본주의는 가부장 제도입니다. 어라, 왜 자본주의가 가부장 제도인가요?

 

자본주의는 공공 육아를 부정합니다. 공공 육아는 공공화, 공유화에 속합니다. 자본주의가 사유화(민영화)를 추구하고, 사유화(민영화)와 공유화가 대립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공공 육아를 싫어합니다. 자본주의가 공공 육아를 싫어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육아는 사회적인 노동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 평등 지수가 높다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육아는 개인적인 여자 노동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훨씬 많은 이윤입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축적하고, 축적하고, 축적하고, 축적하기 원합니다. 언제나 필연적으로 시장 경제는 훨씬 많은 이윤을 축적하기 원합니다.



시장 경제가 훨씬 많은 이윤을 축적하기 원하기 때문에, 언제나 필연적으로 시장 경제는 훨씬 많은 상품들을 만듭니다. 필연적으로 시장 경제가 훨씬 많은 상품들을 만들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시장 경제는 훨씬 많은 자원들, 에너지들을 소비합니다. 필연적으로 시장 경제가 훨씬 많은 자원들, 에너지들을 소비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시장 경제는 환경 오염을 유발합니다. 세계적으로 시장 경제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시장 경제는 환경 오염을 유발합니다. 그래서 기후 변화는 너무 심각합니다. 기후 변화는 행성급 오염입니다. 행성급 오염은 지질학적인 비극, 전대미문의 생태학 재앙입니다.

 

기후 변화, 전대미문의 생태학 재앙은 대규모 멸종을 유발할 겁니다. 과학자들은 대규모 멸종을 걱정합니다. 우파 언론 매체들은 경제 성장 비율에 집착하나, 세계 시장 경제는 대규모 멸종입니다. 경제 성장 비율은 그저 엉터리 헛소리, 황당무계한 망상에 불과합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대규모 멸종에 대처하기 원한다면, 인류 문명은 세계 시장 경제를 분쇄해야 합니다. 적어도 인류 문명은 세계 시장 경제를 통제해야 합니다. 무산자 민중들은 세계 시장 경제를 압박해야 합니다. 시장 경제가 심각한 오염인 것처럼, 자본주의에게 이윤 축적은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육아, 가사가 이윤을 축적하나요?



아니, 육아, 가사는 이윤을 축적하지 않습니다. 육아는 개인적인 여자 노동이나, 여자 노동은 이윤을 축적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에게 이윤 축적이 가장 중요하고, 여자가 이윤을 축적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자보다 남자는 중요합니다. 여자보다 남자가 중요하기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는 우선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됩니다. 비록 육아, 가사가 이윤을 축적하지 않는다고 해도, 육아, 가사 없이, 인류 문명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만약 아무도 아기들을 돌봐주지 않는다면, 200년 이내에, 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멸종할 겁니다. 육아는 원초적인 노동입니다.

 

이윤 축적과 상관없이, 육아는 원초적인 노동입니다. 오직 자본주의에게만 이윤은 중요합니다. 인류에게 이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육아가 원초적인 노동이기 때문에,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육아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댓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육아 노동들은 무급 노동입니다. 육아가 여자 노동이기 때문에, 많은 여자 노동들은 무급 노동입니다. 이건 자본주의가 여자들을 착취한다는 뜻입니다. 노예 제도가 흑인들을 착취하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여자들을 착취합니다. 노예 제도에서 흑인이 열등한 것처럼, 자본주의에서 여자는 열등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자들이 열등한 인간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여자보다 남자가 우선한다고 착각합니다. 기독교 <성경>처럼,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부장 편견들은 지배적입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끔찍한 성 차별들, 성 폭력들을 유발합니다. 19세기 서구 산업 사회는 자본주의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19세기 수구 보수 사회에서 남자보다 여자가 우선한다고 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아무리 가부장 편견들에서 메리 셸리가 벗어났다고 해도, 자본주의가 가부장적이기 때문에, 여자 인조인간을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가부장 편견들은 <프랑켄슈타인>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가부장 제도와 <프랑켄슈타인>은 아무 관계를 맺지 않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2022년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을 읽습니다. 이 독서에게 아무 문제가 없나요? 비단 <프랑켄슈타인>만 아니라 다른 것들 역시 비슷합니다. <프랑켄슈타인>이 인조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영화 <프로메테우스>는 인조인간, 데이빗 8을 이야기합니다. <프랑켄슈타인>에서 인조인간이 출산하기 위한 여자를 원하는 것처럼, <프로메테우스>에서 여자(엘리자베스 쇼)는 출산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데이빗 8은 엘리자베스 쇼의 육체를 조작합니다. 비록 엘리자베스 쇼가 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데이빗 8이 조작하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쇼는 임신합니다. 비록 엘리자베스 쇼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데이빗 8에게 엘리자베스 쇼는 생체 인큐베이터입니다. 임신을 중지하기 위해 엘리자베스 쇼는 어려운 수술을 거칩니다. 여자가 출산할 수 있기 때문에, 여자는 임신하기 위한 도구가 되고 너무 커다란 고통에 빠집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사이언스 픽션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핵심 주제는 인조인간일 수 있으나, 한편으로 <프로메테우스>는 여자, 폭력, 임신, 출산을 과장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성경>에서 여자와 출산이 이어지고, <프랑켄슈타인>에서 여자와 출산이 이어지는 것처럼, 비록 엘리자베스 쇼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프로메테우스>에서 여자와 출산은 이어집니다. 여자 의도와 상관없이, 여자는 출산하기 위한 수단, 도구입니다. 임신을 중단하기 위해 여자는 커다란 고통에 빠집니다. 영화 제작자들이 가부장 편견들을 의도했나요? 리들리 스콧이 여자, 폭력, 임신, 출산을 비유하기 원했나요? 배우들이 가부장 편견들을 인식했나요? 누미 라파스, 마이클 패스밴더가 여자-출산 관계를 인식했나요? 어쩌면 영화 제작자들은 이것들을 의도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비록 영화 제작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분명히 <프로메테우스>에서 여자는 출산하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자본주의, 가부장 제도 사회에서 극장 관객들이 살아가기 때문에, 관객들은 <프로메테우스>가 여자, 폭력, 임신, 출산을 이야기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건 <프로메테우스>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프로메테우스>는 SF, 영화, 허구입니다. SF, 영화, 허구는 문화, 예술입니다. <프로메테우스>에게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문제는 SF, 영화, 허구보다 자본주의, 가부장 제도입니다. 가부장적인 자본주의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에, 여자-출산은 문제가 됩니다.

 

한반도 신화에서 웅녀는 대지 모신에 가깝습니다. 야생 동물이 여자가 되고, 여자가 번성을 담당하기 때문에, 웅녀는 대지 모신입니다. 웅녀는 여자와 출산을 결합합니다. 비단 웅녀만 아니라 다른 여러 대지 모신들 역시 여자와 출산을 결합합니다. 여자가 아기를 낳고 아기를 먹이기 때문에, 고대 신화들은 자연과 여자를 결합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웅녀를 인식할 때, 이 인식에게 아무 문제가 없나요? 그저께 7월 6일 게시글(링크)이 언급했던 것처럼, 목영롱 저자는 <굴욕 없는 출산: 우리는 출산을 모른다>를 썼습니다. 가부장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산은 끔찍한 전투입니다.



<굴욕 없는 출산: 우리는 출산을 모른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신, 출산이 축복, 행복이 절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굴욕 없는 출산>이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가 웅녀를 인식할 때, 우리는 악랄한 가부장 제도, 자본주의를 함께 인식해야 합니다. 비단 웅녀만 아니라 다른 대지 모신들 역시 똑같습니다. 비단 고대 신화들만 아니라 SF/판타지 역시 똑같습니다. SF/판타지는 어머니 자연, 대지 모신, 자연의 여신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SF 생태학, 판타지 자연 신성에서 대지 모신은 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SF 생태학, 판타지 자연 신성에게 <굴욕 없는 출산>은 중요한 서적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게시글은 독단적인지 모릅니다. 독단적으로, 이 게시글은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를 해석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에노 치즈코가 지적하는 것처럼, 가부장 편견들은 많은 것들을 대상화합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많은 것들을 대상화하기 때문에, 가부장 편견들은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를 왜곡할지 모릅니다. 비록 이 게시글 해석이 독단적이라고 해도, 자본주의는 가부장 제도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프랑켄슈타인> 부제목은 '근대 프로메테우스'입니다.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에서 두 프로메테우스는 남자를 가리킵니다.)

 

 

남한 더불어민주당을 보세요. 이른바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박지현에게 악의적인 비난들을 퍼붓습니다. 이 비난들은 너무 폭력적입니다. 스토커가 박지현의 집을 습격하는 것처럼, 심지어 어떤 비난들은 위험한 수위조차 넘어섭니다. 민주당은 남한, 자본주의, 가부장 제도가 끔찍한 폭력이라고 증명합니다. 비단 남한 사회만 아니라 다른 자본주의 사회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끔찍한 가부장 폭력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 어머니 자연, 여자, 출산을 해석합니다. 이 해석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나요? 이 게시글이 독단적인 주장인가요? 정말?



[여자와 출산은 이어집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장 관객들은 이것을 인식합니다.]


※ 영화 <프로메테우스> 스틸샷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1446714/mediaindex?page=3&ref_=tt_mv_close
https://www.imdb.com/title/tt1446714/mediaindex?page=2&ref_=tt_mv_cl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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