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풀의 죽음>과 <신비의 섬>의 여정과 탐험 본문
[게임 <메트로 2033>의 한 장면. 사실 <메트로 2033>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던전 탐험이죠.]
소설 <풀의 죽음>은 첫머리에서 지도를 보여줍니다. 주연 등장인물들이 이동하는 거리를 묘사하는 지도입니다. <풀의 죽음>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고, 주연 등장인물들은 혼란스러운 도시를 탈출하고 시골로 내려가기 원합니다. 이 소설은 어떻게 그들이 도시에서 시골까지 여정을 떠나는지 그립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동하는 동안, 주연 등장인물들은 여러 장소들을 거치고, 여러 비극들을 바라봅니다. 독자는 그들과 함께 어떻게 세상이 멸망했는지 체험할 수 있죠. <풀의 죽음>은 여행 기록입니다. 이는 끔찍하고 무서운 여행 기록이죠.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들은 어떨까요. <풀의 죽음>처럼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들 역시 끔찍하거나 무서운 여행을 기록할까요. 저는 수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이 여행 기록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멸망했기 때문에 안전한 피난처를 찾기 위해 소설 주인공은 낯선 지역을 방황하고, 탐험하고, 여행합니다. 전염병이 세상을 덮친 <최후의 인간>, 사람들이 장님이 되는 <트리피드의 날>, 남자와 소년이 먹거리를 찾아가는 <로드> 등등.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사람들이 멀리 떠나는 과정을 자주 이야기해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사람들이 피난처를 찾지 않는다고 해도, 종종 사람들은 여정을 떠날 필요를 느낍니다. 세상이 멸망했기 때문에 사방은 낯선 곳이 되었고, 사람들은 낯선 곳을 확인하거나 조사해야 합니다. 중요 물품을 배달하는 <지옥의 질주>, 필수품을 확보하는 <노래하는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대도시를 찾아가는 <메트로 2033>은 그런 소설들입니다. 구태여 소설들만 언급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멸망한 세상은 짜릿한 모험 무대가 되고, 그래서 모험가들은 위험하고 머나먼 여정을 떠납니다.
<분노의 도로>는 각종 차량들이 주구장창 달리는 여정이고, <폴아웃>은 대피소 거주자가 물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여정이죠. SF 작가들이 각종 여정들을 그렸기 때문에 <분노의 도로> 같은 영화와 <폴아웃> 같은 게임이 위험하고 짜릿한 여정을 그릴 수 있었겠죠.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무조건 여정과 탐험과 방황으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는 전설이다>나 <최후의 Z> 같은 소설은 마지막 날까지 안전 가옥에서 소설 주인공이 버티고 버티고 버틴다고 이야기합니다. 안락한 대피소가 존재한다면, 마지막까지 소설 주인공은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소설 주인공은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머나먼 여정. 마음이 설레는 단어가 아닙니까. 다들 집을 떠나면 고생이라고 말하고, 사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머나먼 여정이나 탐험 같은 단어는 로망을 자극합니다. 여정과 탐험은 서로 다릅니다. 여정은 어느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탐험은 낯선 지역을 둘러보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똑같이 사람들이 멀리 떠나기 때문에 여정과 탐험은 서로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볼 수 있겠죠. 유토피아 소설은 어떨까요.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유토피아는 서로 극단적입니다. 한쪽은 폭싹 멸망한 세상을 그리고, 다른 한쪽은 이상적인 사회를 노래합니다. SF 울타리 안에서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두 장르를 찾는다면, 독자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유토피아를 찾을 수 있겠죠.
어쩌면 하드 SF 소설과 스페이스 오페라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유토피아가 더 많이 다를지 모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머나먼 여정을 그리는 것처럼 유토피아 소설은 낯선 탐험을 노래할까요. 어떤 소설은 그렇겠고, 어떤 소설은 그렇지 않겠죠. 유토피아 소설들 속에서 소설 주인공은 이미 존재하는 이상 사회에 참여합니다. <뒤 돌아보며>나 <붉은 별>이나 <에코토피아 비긴스>는 이미 이상 사회가 존재한다고 상정하고, 거기에 소설 주인공을 집어넣습니다. 하지만 어떤 소설들에서 주인공은 직접 이상 사회를 건설합니다. <신비의 섬>이나 <붉은 화성>은 그런 사례죠.
이상 사회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새롭게 출발해야 하고, 그래서 새로운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신비의 섬>은 주연 등장인물들이 무인도를 찾아가고 낯선 식생들을 탐사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머나먼 오지에 그들이 도착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상적인 문명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주연 등장인물들이 문명을 이룩하는 과정만큼 낯선 지역을 탐험하는 과정은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붉은 화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우주선 아레스가 아득하고 낯선 우주를 항해하거나 탐사 차량이 적막한 붉은 대지를 돌아다니는 장면은 비경 탐험의 로망과 멋지게 맞물립니다. <붉은 화성>은 사람들이 문명을 이룩하는 과정을 묘사하나, 비경 탐험이라는 로망을 잊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로라> 같은 소설 역시 그럴지 몰라요. <오로라>가 유토피아 소설이 아니라고 해도, <오로라>는 어떻게 사람들이 우주선 사회를 이룩하는지 묘사하고, 동시에 어떻게 우주선이 머나먼 우주를 항해하는지 묘사합니다. 이렇게 유토피아 소설은 비경 탐험과 어울릴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가 무조건 비경 탐험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두 장르는 서로 멋지게 어울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유토피아 소설은 여정과 탐험을 이야기합니다. 문명이 멸망했기 때문에. 새로운 문명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똑같이 머나먼 곳을 향해 떠나나, 이유는 서로 극단적으로 다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