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성스러운 장소>와 비경 탐험의 감성 본문
소설 <성스러운 장소>는 등산객들이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여행하는 이야기입니다. 등산객들이 산맥을 오르고 내려가고 다시 오르는 동안 킴 스탠리 로빈슨은 다양한 장소들을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성스러운 장소>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안내하는 관광 소설 같아요. 하지만 작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현대 문명이 어떻게 자연 환경을 바꾸는지 경고합니다. 등산객들은 개인적인 불안들을 품었어요. 자연 환경이 바뀌고 오염되는 광경을 보는 동안 개인적인 불안들은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불안들로 이어집니다.
당연히 독자는 개인적인 시점에서 미래적인 시점을 바라볼 수 있겠죠. 어떻게 미래가 바뀔까요. 이런 상황에서 현대 문명이 계속 굴러가도 좋을까요. 자연 환경이 계속 오염된다면, 그게 사람들에게 무슨 피해를 줄까요. <성스러운 장소>는 짤막한 소설이고, 많은 것들을 담지 않았습니다. 특히, 킴 로빈슨은 좌파적이고 거시적인 하드 SF 작가로서 유명하나, <성스러운 장소>는 그런 특징을 선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기에 이 소설은 너무 짧아요. 게다가 아쉽게도 <성스러운 장소>는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죠.
하지만 독자는 이 소설을 통해 미래의 자연 환경과 인류 문명을 전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전망은 SF 소설로 이어질 수 있겠죠. 아울러 <성스러운 장소>는 일상(도시)에서 멀리 떨어지고 적막하고 웅장한 자연 환경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독자는 등산객들을 따라 거대하고 비일상적인 산맥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등산객들은 다채로운 장소들을 돌아다니고 구경합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못합니다. 인적 역시 드뭅니다. 현대 문명은 자연 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나,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 들락거리지 않아요.
심지어 등산객들은 지리 안내서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등산 경로를 발견합니다. 등산객들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사람들이 별로 들락거리지 않는 적막한 장소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무 소음이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등산객들은 한때 북미 원주민들이 살았던 장소를 바라봅니다. 이런 감성은 비경 탐험 소설과 비슷합니다. 비경 탐험 소설에서 인류 탐사대는 인적이 닿지 않는 장소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그들은 적막함과 비일상적인 자연 생태계를 느끼죠.
<성스러운 장소>는 비경 탐험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비경 탐험 소설은 공룡 시대나 외계 유적이나 심해 생태계나 깊은 동굴이나 혹독한 극지를 이야기합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은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장소이고, 이런 장소를 비경이라고 부르지 못하겠죠. <성스러운 장소>는 <지구 속 여행>이나 <콩고>나 <소멸의 땅>이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성스러운 장소>가 비경 탐험이 선사하는 감성들과 맞닿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소설에서 독자는 적막하고 웅장한 자연 환경과 비일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탐험가들처럼 등산객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찾습니다.
이건 정말 비경 탐험이 아닐까요. 비록 <지구 속 여행>이나 <콩고>나 <소멸의 땅>과 달리 <성스러운 장소>는 아예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일상적인 적막이 둘러싼다고 해도 <성스러운 장소>는 그저 일상에 머물죠. 저는 <성스러운 장소>가 SF 비경 탐험이라고 우기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SF 소설이 아니라고 해도, 분명히 이 소설은 뭔가 야생적인 감성을 풍깁니다.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자연 환경을 걱정하는 소설이 비경 탐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환경 오염을 걱정한다면, 오염된 자연 생태계를 보여줘야 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자연 생태계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직접 오염된 자연 생태계를 둘러봐야 합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다른 야생 동물들과 만나거나 교류한다면, 작가는 환경 보존이라는 주제를 훨씬 부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환경 오염을 걱정하는 소설이 반드시 자연 환경을 탐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와인드업 걸>이나 <언런던>이나 <인간 종말 리포트>는 자연 환경을 탐험하지 않아요. <에코토피아 뉴스>나 <에코토피아 비긴즈> 역시 자연 생태계를 아주 살짝 언급할 뿐이죠. 저는 자연과 문명, 생태계와 도시를 단적으로 가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언런던>이나 <인간 종말 리포트>보다 <성스러운 장소>가 더 마음에 듭니다. 저는 소설이 직접 자연 환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자연과 문명을 단적으로 가르지 못한다고 해도, 커다란 야생 동물들은 문명 안에서 살지 못해요. 그런 동물을 만나고 싶다면, 인간이 직접 야생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